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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세대의 놀이 풍경: 우주로 1216

서민우, 지정우 (이유에스플러스건축 공동대표) × 김예람 기자
사진
박영채
자료제공
이유에스플러스건축
진행
김예람 기자
background

최근 몇 년 사이에 청소년보다 어린 연령대를 주 사용자로 설정한 공간이 늘어나고 있다. 미술관과 박물관을 중심으로 생겨나던 어린이 공간은 2000년대 후반부터 그 수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어린이 공간 환경을 개선하자는 흐름으로 발전되어 2017년 서울시의 ‘꿈을 담은 교실’ 사업으로 이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민간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도시 놀이터 개선 사업을 추진하여 중랑구 상봉어린이공원과 세화어린이공원을 아동친화적 놀이 공간으로 개보수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도서관과 북카페에서 지역 내 아동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어린 세대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건축가도 설계 및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리포트는 이런 배경 속에서 건축가 서민우와 지정우가 설계한 트윈세대 도서관 ‘우주로 1216’을 다룬다. 여기서 ‘트윈(tween)’은 10대(teenager)와 사이(between)를 결합한 합성어로,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 아이들을 의미한다. 우주로 1216은 입찰 방식이 아닌 민관협력 방식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전주시가 제공하는 공간에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기금, 벤처 기부 펀드인 씨 프로그램의 기획이 더해졌다. 기획을 맡은 씨 프로그램은 각 분야 전문가를 초빙했고 서민우와 지정우에게 공간설계를 의뢰했다. 이들은 놀이체험 설치 작품 ‘구름 속의 산책’, 전쟁기념관 어린이 박물관 전시시설,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등 다양한 규모의 어린이 공간을 설계해온 건축가다. 이들은 어떻게 우주로 1216을 설계했을까?

 

 

아이들의 설계 참여로 만들어진 도서관

 

김예람(김) 미국, 유럽은 트윈과 청소년을 구분할 정도로 연령대 개념을 세분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이 개념을 어떻게 적용하고 있나?

지정우(지) 나라마다 사회 시스템과 교육체계가 달라서 트윈세대의 연령대가 조금씩 다르다. 미국은 이 세대를 9~13세로 간주하는데, 우리는 트윈세대를 12~16세로 설정했다.

서민우(서) 영어 문화권에는 10대를 의미하는 단어 ‘틴(teen)’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청소년으로 뭉뚱그린다. 우주로 1216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교육과정이 바뀌는 시기에 있는 12~16세를 트윈세대로 규정했고 그들에게 맞는 공간을 구축하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디아이디어그룹은 설문조사를 통해 필요한 공간의 성격을 분석했고, 진저티프로젝트와 전주시립도서관은 운영 방식 및 인력에 관한 원칙을 만들었다. 트윈세대 초입에 해당하는 초등학교 고학년은 어느 정도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나이고, 진학과 공부에 대한 압박감을 가지고 있다. 그 아이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교와 집이 결코 공간적으로 풍요롭지 않음을 느낀다. 잠재력을 발현할 수 있는 방법과 환경이 제한적인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적어도 도서관과 놀이터 같은 제3의 공간에서만큼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공간 디자인 워크숍을 할 때도 “너희가 원하는 게 뭐니?”라고 아이들에게 질문하고, 우리가 답을 찾기보다 “모르는 게 있으면 같이 해답을 찾아보자!”하고 말한다.

 

전주시립도서관 인근 학교에 재학 중인 아이들도 설계에 참여했다. 아이들과의 소통이 잘 이루어졌나?

참여설계가 새로운 개념 같지만 어느 건축가든 클라이언트와 대화하며 설계한다. 그 과정이 참여설계의 일부다. 우리는 설계과정에서 클라이언트가 무언가를 만들어볼 수 있게끔 유도하고 글을 써보게 한다. 사용자가 아이디어를 단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설계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놀고 싶은 공간을 만들 것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오히려 건설적 방향으로 설계를 하고자 하는 전문가 같은 마음가짐으로 워크숍에 임한다. 이런 걸 보면 참여설계는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학교나 학원에서 이뤄지는 수업보다 아이들의 잠재력을 깨울 수 있는 활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참여설계에서 나온 아이들의 의견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나?

“여기에 이런 게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면 “알았어” 또는 “그렇게 만들어 줄게”라고 답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경험과 배움의 스케일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굉장히 직관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말의 의미를 해석한 다음에 필요한 요소를 만들어줘야 한다.​

 

 

 

 

우주로 1216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콘셉트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DVD방, 노래방처럼 칸칸이 나눠진 공간을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서관을 각각의 독립된 실이 아닌 영역으로 구획하기 위해 길을 설계 모티프로 삼았다. 박공형 구조물이 설치된 길을 만들어 공간을 네 영역으로 구분했고, 길을 따라 갈수록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활동이 늘어나는 구성을 고안했다. 이 디자인 때문에 아이들 나름대로 도서관 안에서 동선을 짜는 게 가능해지고, 그 동선이 중첩되는 곳이 하나의 영역으로 인식된다고 생각한다.

 

관리자와 사서는 아이들의 활동과 교류를 위해 조력자 역할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모습을 간섭으로 느낄 수도 있다. 아이들과 어른의 공간을 어떻게 분리했나?

조력자 모드로 공간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상주하는 어른의 수가 적어야 한다. 어른들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쉽게 발견하고 활동을 도와줄 수 있도록 도서관 양쪽에 각각 안내 데스크와 업무 공간을 만들었다.

 

평면도와 사진을 보면 가구, 시설물이 많이 배치되어 공간의 밀도가 높아 보인다. 

개인적으로 밀도보다는 ‘에너지 레벨’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 연령대 아이들의 에너지 레벨이 남다르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공간에서 흡수시킬지 많이 고민했다. 여럿이 모이는 활동은 경사 지형, 다목적 계단, 중앙 복도에서 이뤄지도록 유도했고 개인적인 활동은 다락이나 그 하부 공간에서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우주로 1216은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설계과정에서 에너지 레벨을 중요한 가치로 설정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아이들의 활동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고 반드시 그 이상의 활동이 일어난다. 예를 들면 어떤 아이는 천장에 설치된 철봉에 원숭이처럼 매달려 책을 본다.

 

아이들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은 공간의 또 다른 쓰임새를 발견하는 순간을 만들어내지만 안전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우주로 1216에도 그런 공간이 있나? 

사서가 상주하는 공간 옆에 책장을 열고 들어가는 비밀 공간이 있다. 참여설계 당시에 다목적 계단 아래에 이 비밀 공간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봉을 매립해서 회전이 가능한 책장을 제작했다. 결과적으로 육중한 책장 안에 재미있는 공간이 완성됐다.

저런 가구를 초등학교 교실에 설치하려고 하면 선생님은 “책장이 회전하면서 아이들이 다칠 수 있다”면서 책장을 도면에서 빼달라고 할 것이다.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이 공간을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안전 규정이 유연하지 않은 것도 제약이다.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고무, 플라스틱, 합성 나무 데크 정도로 한정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공간의 크기와 질이 비슷하다.

 

그럼에도 꾸준히 놀이 공간을 설계하고 있다. 이유에스플러스건축이 놀이 공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다목적성이다. 우리는 이용자가 직접 만든 결과물을 삽입할 수 있는 프레임 형태의 다목적 구조물을 자주 설계한다. 다양한 프로그램에 따라 이용자가 공간을 채워나갈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이들을 위한 장소가 기성제품의 집합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그곳이 다양한 행동을 담을 수 있는 ‘놀이 풍경’으로 불려지길 바란다.

 

이 프로젝트 이후에 기획된 트윈세대를 위한 놀이 풍경이 있는지 궁금하다.

우주로 1216을 함께 작업한 책읽는사회문화재단과 도서문화재단씨앗은 MBC에서 방영된 ‘느낌표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를 통해 어린이를 위한 ‘기적의 도서관’을 구축한 경험이 있다. 요즘 그들과 함께 노원구 공릉동에 우주로 1216의 다음 시리즈인 도서관을 작업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사례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공간 유형의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우주로 1216 <ㅁㅁ워크숍> ⓒ SPACE T 추진단+주현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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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우, 지정우
서민우는 홍익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서울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힌 후, 미국 코넬 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또한 퍼킨스 이스트만 뉴욕에서 대단위 주거단지 계획과 고층 주상복합시설, 업무시설 등을 설계했다. 미술관, 박물관 그리고 조각공원 등 예술문화 공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관련 분야의 저술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어린이 관련 프로젝트들을 다수 진행하고 있다.

지정우는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및 동 대학원, 미국 코넬 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중앙디자인에서 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퍼킨스 이스트만과 에렌크란츠 엑스터트 쿤 건축사무소에서 실무 경력을 쌓았다. 그는 오랜 기간 동안 놀이터 및 어린이 건축교육 관련 기획, 연구에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과 미국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공간을 화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