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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나와의 조우: 미지의

아키텍케이 건축사사무소

이기철
사진
윤준환
자료제공
아키텍케이 건축사사무소
진행
김보경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5년 2월호 (통권 687호) 

 

 

 

울산 울주군 한옥마을 지구에 위치한 대지는 오랜 시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자연에 속한 공간이었다가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한 개발의 광풍 속에서 한옥지구로 귀속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됐다. 북측 인접 대지에 한옥 건물이 지어진 이후 오랜 시간 민간에 의해 건축이 이루어지지 않자, 한옥 제한 규정이 사라졌고 개별 필지를 평탄화하며 조성한 계단식 석축으로 단절된 대지만 남았다. 이러한 인공적 난도질은 대지의 본래 자연스러운 구릉의 모습을 지웠고, 이후 사람들의 발길도 끊어졌다. 대지를 처음 방문했을 때, 토목공사로 드러난 황토빛 토양은 개발에 의한 상처만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그 뒤로 서측 저수지 골안못의 수면엔 10월의 고운산 가을 풍경이 은은히 비쳤다. 마치 주변의 숲, 바위 그리고 물과 같은 자연이 대지를 치유하려는 것 같았다.

울주군 상북면은 영남 알프스의 일곱 개 산 중 하나인 고헌산(고운산의 주산)에 자리하고 있다. 험준한 봉우리와 다양한 식생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고운산은 자연을 그리워하는 도시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장소다. 등산객들에게 산을 오르는 기쁨뿐만 아니라 자연의 시간과 흔적을 발견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도시적 맥락이 아니라 자연의 시간을 찾아가는 여정을 이 대지를 해석하는 가장 중요하고 타당한 접근법으로 판단한 이유다. 이 대지는 단순히 어떤 시설이 들어서는 장소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며 교감할 수 있는 터전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카페라는 공간이 단순히 차를 마시는 행위를 넘어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경험의 공간으로 확장되어가는 과정을 목도하고 있다. 일상에서 벗어난 근교 카페의 형식을 한 단계 넘어서기 위해 자연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이러한 공간과 프로그램적 제안은 고운산과 자연, 그리고 그에 속한 요소들의 회복에서 출발한다.

 

 

땅과 숲의 회복, 그 사이의 건축

첫 번째 회복은 계단식 석축으로 단절된 대지를 본래의 지형으로 복원하는 것이었다. 서측 골안못과 같은 높이로 대지의 서측을 낮추고, 동측 도로와는 경사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복원했다. 이는 단순히 지형을 복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숲이 존재했던 과거 시간을 다시 불러오는 작업이었다. 대지에는 고운산의 주요 수종과 암석, 물의 흐름을 흩어놓아 자연의 기억을 다시 돌려놓고자 했다. 건축은 이러한 자연 속에 스며들 듯 자리 잡았다. 사람이 숲을 걸을 때 나무와 자연물 사이를 유영하듯, 건축물과 자연을 구분 없이 섞어내는 시도를 반복하며 카페에 필요한 기능을 채워갔다. 동측에는 도로와 면한 카페의 진입 공간을, 서측에는 골안못을 바라보는 식음 공간을 배치했고, 이 둘 사이를 연결하는 동선은 자연스러운 숲길처럼 설계했다. 약 80m 길이의 ‘숲길 건축’은 그 속을 거니는 사람의 흔적처럼 유선형 형상으로 고운산의 식생들과 어우러진다.

 

Diagram of the structure and metal eaves configuration 

 

자연과의 교감 속 미지의 나를 발견하는 순간

‘자연 속의 경험’은 카페 프로그램의 주요한 구심점으로 작동한다. 세 개의 중정 공간과 외부 자연 풍경이 연속된 숲길 건축은 방문자의 내외부 시각적 인식을 혼재시킨다. 느린 걸음으로 10분 정도 계속되는 이 길의 여정은 공간의 경계 없이 지속되는 ‘늘어진 인식의 시간’ 속에서, 그리고 ‘나와 자연의 교감’이 정제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카페는 제한된 사용자만 출입할 수 있도록 운영되어 고요한 몰입의 경험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방문객은 공간 안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자신을 발견할 기회를 얻는다. 설계 이후 진행된 카페의 브랜딩 역시 ‘미지의 나와의 조우’를 핵심으로 설정했다. 방문객은 이곳에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제공되는 식음료 역시 고운산과 주변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됐다. 나무, 돌, 물과 같은 자연 요소를 테마로 한 메뉴는 단순히 미각적 즐거움에 그치지 않고, 공간에서 느껴지는 시각적·청각적 경험과 함께 작동하여 복합적인 감각 경험을 제공한다.

 

 

 

최소의 건축, 최대의 노력

자연과 교감하기 위한 건축적 접근은 모순되게도 건축의 존재를 가급적 부정하는 것이었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인식의 투명성을 얻고자 하는 비우려는 노력이었다. 원래 벽이어야 했던 바닥에서 천장에 이르는 구간을 28mm 두께의 복층유리만으로 비워놓는다. 이를 위해서는 단열 규정, 태풍에 대비한 유리 구조 강성을 확보해주는 멀리언, 유리와 유리의 접합 방식 등 비움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을 함께 해결해야 했다. 높이 4.9m의 곡면 유리 생산과 운반 과정은 비움을 위한 또 다른 장벽이었다. 차선으로 선택한 중국산 유리 패널은 현장 설치 과정에서 상당수가 파손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완벽한 투명성과 건축의 존재감 사이의 어느 지점, 그리고 현실적 한계와 극복을 위한 노력과의 타협이 이루어지는 지점이 병치되는 순간, 미지의 공간이 완성됐다.

투명성과 대비되는 햇빛을 고려해 건축물 전체에는 스테인리스 스틸 처마를 설치했다. 이는 일사량을 조절할 뿐 아니라, 건물의 곡선을 따라 흐르며 유선형 조형을 강조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옥상 조경을 위한 토심을 확보하고 방수턱의 기능을 부여하면서, 유리 위 파라펫 그리고 층간 유리 패널 사이 스팬드럴 구간의 높이가 두터워졌다. 이를 시각적으로 상쇄하기 위해 당초 한 단으로 계획했던 처마에 길이가 점차 짧아지는 처마를 더했다. 처마를 3단으로 변경하면서 곡선 건축의 선적인 흐름이 강조됐고, 처마 사이 간접 조명은 이러한 흐름을 야간까지 이어준다.

정확한 곡률 구현을 위해 처마를 포함한 파라펫 부재는 금속 공장에서 제작하여 지붕 슬래브 타설 시 거푸집 역할을 하도록 미리 조립했고, 슬래브와 일체화시켜 합판 거푸집 공정을 없앰으로써 공사비를 절감하는 동시에 완성도를 높였다.

 

 

 

 

미지의 그 새로운 가능성

‘미지의’라는 단어는 우리의 작업에서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다. 태초 자연의 모습을 상상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어렴풋한 자연 속 사이 공간을 찾아가는 시도이며, 방문객들에게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되짚어보는 과정 자체가, 인공의 영역을 명확히 만들어왔던 기존 건축적 접근에 대한 ‘미지의 한 걸음’임을 깨닫게 한다. 카페 미지의가 시간이 지나며 자연과 함께 더 깊이 조화를 이루길, 그리고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그 속에서 자연과 자신을 발견하는 특별한 경험이 지속되길 바란다.​ 

 

월간 「SPACE(공간)」 687호(2025년 02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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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아키텍케이 건축사사무소(이기철)

설계담당

최연우, 임국태, 김휘민, 박진영, 임유정

위치

울산광역시 울주군 송락골길 129

용도

근린생활시설

대지면적

2,345㎡

건축면적

459.31㎡

연면적

862.11㎡

규모

지상 2층, 지하 1층

주차

6대

높이

9.23m

건폐율

19.58%

용적률

25.07%

구조

철골조

외부마감

로이 복층유리, 스테인리스 헤어라인

내부마감

콘플로어

구조설계

SDM

기계설계

(주)민텍

전기설계

(주)광명토탈

시공

(주)도담종합건설

설계기간

2020. 4. ~ 2021. 4.

시공기간

2021. 3. ~ 2023. 10.

공사비

약 25억 7천만 원

건축주

이상국


이기철
이기철은 동아대학교 건축학과와 버클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의 환경디자인 대학원 건축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미국 프레데릭 슈왈츠 아키텍츠와 한국의 공간건축에서 실무를 한 후 2012년 아키텍케이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여 운영 중이다. 시카고 아테나움 국제 건축상, 아키텍처 마스터 프라이즈, 아천건축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