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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사선: 신사블루스

폴리머건축사사무소

김호민
사진
신경섭
자료제공
폴리머건축사사무소
진행
김정은 편집장
background
 

 

‘건축은 결국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의 관점에서 신사블루스는 구조와 공간, 기능과 장식, 동선과 표피, 부분과 전체가 통합된 외피의 패턴으로 드러난 프로젝트다. 고딕 성당은 압축력으로 지지하는 석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구조로부터 장식, 동선, 공간이 한 체계 내에 자연스럽게 일체화될 수 있었다. 한옥도 마찬가지로 목재의 결구 방식만으로 구조와 공간, 장식을 드러냈다. 반면에 근대건축은 공간과 구조, 동선을 기계의 부속품처럼 분리함으로써 평면과 입면의 자유를 얻었지만 통합된 형태와 질서의 구축이라는 오랜 전통은 간과해버렸다. 여기에 현대건축은 극도로 분업화되고 산업화된 자본주의 환경에서 에너지와 효율, 경제성, 친환경 등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들을 소화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또한 소통 수단의 발달로 개인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서도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변화들을 겪고 있다. 결국 건축은 점점 더 복잡한 정보들을 소화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설계 과정에 미디어 기술이 정착되면서 패턴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많은 정보들을 흡수하고 소화함으로써 통합된 질서와 형태를 구축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서 건축을 하며 단위와 조직, 부분과 전체, 동선과 공간, 구조와 장식이 하나로 통합된 질서를 찾으려는 노력을 지속해오고 있다.

 

 

천정 마감_벨룩스아시아 '바리솔 (BLO2011)'

 

신사블루스는 도산공원 인근 소위 로데오 길에 위치한 소규모 근린생활시설이다. 2000년대 초까지 사람들로 넘쳐났던 거리는 가로수길이 등장하면서 급격히 활기를 잃었다. 카페와 음식점이 떠나고 옷 가게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저녁 거리에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번잡함을 즐기려 모였던 사람들이 활기 잃은 길에 발길을 뚝 끊어버린 것이다. 임대료는 그대로인데 수요가 줄고 공실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1990년대 압구정이라는 새로운 상권의 등장은 무척 신기했지만 그 쇠락은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 상황에 위기감을 느낀 건물주들이 자체적으로 맛집 유치를 위한 홍보물을 제작하고 임대료를 내리는 등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조금씩 거리에 유동인구가 늘어나게 됐다. 결국 사람들은 거리의 높은 밀도를 불편해 하면서도 오히려 그 활기찬 분위기를 즐기고 소비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이렇게 사람과 차들이 뒤엉켜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활기차고 역동적인 거리를 내부로 끌어들여 최대한 외부로 열린 상업 공간을 만들고자 의도했던 것이 신사블루스다.​

 

 


창호_화인엔지니어링 '경기단열'
문_화인엔지니어링 '아키페이스'
내부바닥 마감_ 신명마루 '퀵스텝 하이브리드', 볼론
 

사이트는 1970년대 초 단독주택지로 개발된 60평(184m2)이 채 안되는 좁은 대지다. 양방향 2차선 도로가 일방통행 길로 바뀌며 갑자기 폭이 좁아지는 병목 지점에 위치해 땅도 좁지만 도로까지 좁아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무척 애를 먹었다. 건물 규모는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각각 하나씩 필요한 근린생활시설이다. 1990년대 지어진 주변의 일반 상가들은 대부분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최대한 효율적으로만 계획하여 전면과 1층을 크게 강조한다. 시공 기간을 줄이고 임대를 극대화하는 의도였겠지만 거리에 생동감 있게 대응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1층만 거리에 열려 있고 나머지 층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단점도 두드러졌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지어진 건물이 상업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건 설계에 개선할 기회가 많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무엇보다 일반적인 상업 건물은 건축적으로 아쉬운 점이 많았다. 결국 양과 질,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1층만 외부에 개방되고 2층부터 그 위로는 철저히 내부로 갇히는 전형적인 상업시설은 지양하기로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동선 체계를 개선해야 했다. 달동네의 경사지 건축에서 수직적으로 쌓여 있는 층 사이로 돌아다니는 골목길과 뒤섞인 외부 계단은 언제나 매력적이었다.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다가구주택의 외부 계단도 길과 건축, 동네를 연속적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자생적인 건축이 길과 소통하고 도시로 이어지는 방법은 결국 거리와 연결된 역동적인 길이었다.

 

신사블루스의 계단을 외부화함으로써 테라스의 역할을 겸할 수 있고 길을 건물 내부 깊숙이 끌어들이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었다. 각 층의 접근성을 높이고 상업적 가치를 올릴 수 있는 해결책이 되었다. 궁극적으로는 이렇게 건물을 한 바퀴 도는 외부 계단을 흡수해 통합된 외피의 질서를 어떻게 만드는지가 목표였다. 우선 계단 자체가 오브제로 도드라지지 않기 위해 최소 1.2m 높이의 난간을 외벽의 일부로 흡수하기로 했다. 일정한 높이마다 참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 사선과 수평선으로 이루어진 난간의 선이 생겼는데 이를 상하좌우로 반복함으로써 육각형들로 이루어진 가상의 패턴을 만들 수 있었다. 이로써 계단은 실제 하나지만 여러 계단들이 있는 것처럼 하여 패턴의 일부로 묻히도록 했다. 입면에서는 에셔의 그림처럼 계단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다. 각 모듈은 가운데 오프닝을 두고 주위를 둘러싼 띠로 구성되는데 그 두께나 크기를 각기 달리함으로써 층이나 향, 공간의 크기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창문 크기나 난간의 높이를 동일한 기하 시스템 내에 흡수할 수 있었다. 사선제한이나 옥상의 외부 난간, 실내 난간들까지 하나의 제스처로 흡수하여 마치 세포들이 모여 생물을 이루는 것처럼 외피 전체가 일관되고 엄격한 기하 체계에서 육각형들로 구성된 하나의 장(field)이 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중요한 특징은 이렇게 외부 계단으로부터 도출된 질서가 구조적으로 작동하도록 했다는 점인데 육각형 모듈의 일부가 사선 기둥이 되어 위층을 받치거나 내부의 지붕을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건축가로서 가장 즐겼던 건 패턴의 일부가 특별한 역할 없이 순수하게 장식적으로만 쓰인 지점이었다. 특히 남측 입면은 각 층의 서비스 공간 후면으로 창문이 많이 필요 없었지만 외부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여 노출콘크리트의 질감 차이로만 가상의 선들을 표현했다. 꾸밈(decoration)이 아닌 장식(ornament)은 그 건축이 위치하는 문화와 지역, 시대를 설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기 때문에 필수적이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시도였다. 결국 구조와 장식, 기능과 공간, 형태와 분위기가 통합된 하나의 일관된 체계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벽체 마감_홈테크 목모보드

옥상바닥 마감_보현석재 세라믹 데크타일​ '까르미'

외부바닥 마감_삼한씨원 보도용 점토벽돌 'SH6031(토미그레이플러스)'

 

 

인류가 처음 지었을 법한 로지에의 원시 오두막은 주변 환경과 완전히 일체화된 모습이었다. 자연의 나무들에 기대 지붕을 세우면 그 자체가 공간이었고 창문이며 동시에 장식이었다. 우리들이 건축가의 개입 없이 지어진 자생적 건축에 주목하는 이유도 더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달동네처럼 디자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풍부한, 건축적 퀄리티 때문일 것이다. 복잡하지만 여유롭고, 조잡하지만 풍부하며, 직설적이지만 명료한 건축을 꿈꿔왔다. 그렇다고 구조와 장식, 동선과 파사드, 기능과 형태의 구분이 없는 건축을 꿈꾸는 것이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지 이것이 나날이 복잡해지는 외부 조건에 건축이 휘둘리는 환경에서 양과 질, 효율과 공간, 기능과 분위기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이라 믿기 때문이다. (글 김호민 / 진행 김정은 편집장)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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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폴리머건축사사무소(김호민)

설계담당

임현주, 이재만

위치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49길 32

용도

근린생활시설

대지면적

184㎡

건축면적

105㎡

연면적

455㎡

규모

지상 5층, 지하 1층

주차

3대

높이

20m

건폐율

58%

용적률

199%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노출콘크리트(송판노출)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수성페인트

구조설계

터구조

기계,전기설계

(주)진원엔지니어링

시공

폴리머건축사사무소

설계기간

2017. 7. ~ 2019. 12.

시공기간

2020. 1. ~ 2021. 5.

공사비

13.5억 원

건축주

폴리머건축사사무소


김호민
김호민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런던 AA스쿨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졸업 후 3년간 대우건설에서 시공 경험을 쌓고, FOA(런던)에서 설계 실무를 했다. 2008년 귀국해 세운 폴리머건축사사무소를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영국 건축사협회에 등록된 영국 왕립 건축사로서 AA스쿨, 코넬대학교, 서울대학교, 경기대학교, 건국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7년에는 10년간의 활동을 정리한 단행본, 『세포적 건축』을 공간서가에서 출판했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문화체육관광부의 공공디자인 조성사업 평가위원과 공공디자인 엑스포의 자문위원으로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서울시 공공건축가로서 건축의 공공성을 위해 활동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