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라는 익명의 이미지 속에서
1970년대 지어진 화학공장이 리노베이션되어 복합문화 공간 성수연방으로 재탄생했다. 그런데 어쩐지 공장 리노베이션이라는 대목은 익숙하다 못해 이제 지겹지 않은가. 2000년대 미술계에서 폐허를 무대 삼거나 예술 작품으로 끌어들였던 흐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최근 본래 쓰레기 소각장이었던 부천아트벙커 B39나 화학공장이었던 코스모40처럼 뇌사 판정을 받은 건축물이 건축가나 예술가의 손을 거쳐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채 복합문화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된 사례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이러한 폐허의 풍경은 예술계의 영역을 넘어 일반 상업 공간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신축 건물이나 인테리어에서도 의도적으로 가공되어 소비된 지도 꽤 되었다. 페인트 껍질이 간신히 매달려 있는 벽, 오래된 콘크리트의 눅눅한 냄새, 거칠고 투박한 내장재들이 풍기는 익명의 폐허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다.
성수연방 역시 공장으로 사용되던 50년 된 건물을 수익형 임대 건물로 리노베이션 해야 하는 과제를 안은 이상, 어쩌면 뻔한 해답이 나올 가능성이 농후했을지도 모른다. 공장이나 창고가 리노베이션을 거치면서 ‘인스타 성지’로 변한 극적인 사례들이 성수동에는 이미 많다. 특히 그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대림창고를 한 블록 옆에 두고 이번 성수연방의 설계를 맡은 푸하하하프렌즈(이하 푸하하하)는 어떤 태도로 작업했을까?
한승재(푸하하하 공동대표)는 “리노베이션이라는 것은 앞으로 몇 살까지 살지 모르는 건물을 더 튼튼히 오래 살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다. 1974년에 태어난 이 건물을 익명으로 리노베이션을 해서 앞으로 누가 바꿔도 상관 없거나 누가 손대면 바로 죽는 건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존 건축물을 리노베이션 할 때 추구하는 재생의 목적과 가치는 저마다 다르지만, 공공이 운영하는 문화시설로 리노베이션되는 경우에는 애초부터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축의 일부를 보존∙전시하고 시민에게 돌려주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그 정체성이 쉽게 훼손되지 않을 가능성이 놓다. 그러나 임대 수익형 상업 건물에서는 기존 건축물이 가지고 있던 공간 요소와 시간적인 가치를 지켜나가는 것은 건축주의 사정에 따라 내일을 보장받을 수 없다. 하여 프하하하프렌즈는 시간이 흐르고, 주인이 바뀌고, 용도가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을 건축 요소에 집중한다. 바로 구조안전, 골조 디자인, 건물의 비례다.
푸하하하는 기존 건물이 가지는 적당한 높이와 수평적 안정감이 좋았다고 한다. “높이가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그 사이 공간에 있을 때 느끼는 위요감이 위압감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 건물과 그 사이 중정이 이루는 큰 비례는 최대한 유지하되 난간과 브리지로 건물의 수평성을 강조했다. 본래 60cm 정도 튀어나와 있던 발코니를 1.4m로 확장하고 두 동을 잇는 브리지를 추가해 동선을 만들었다. “건물의 수평적 요소와 기둥을 건축물의 외부로 내밀어 각 매장의 디자인이 건물 전체의 비례를 파괴하지 않도록 했다”는 것이 그들의 의도다. 특히 슬라브 두께를 220mm로 조정했는데, 보통 설계와 시공에 용이한 350mm 이상의 슬래브 두께로는 “기둥의 조형이 가뜩이나 무거운데 슬래브까지 무거워 보이면 중정이 너무 부대껴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에 난간을 슬래브에 매입하고 실링 두께를 최소화로 하는 등 그들은 “건물의 인상은 그런 작은 치수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건축물의 비례를 고민했다.
한편 1970년대 지어진 건물의 구조 성능을 신뢰할 수 없었던 푸하하하는 기존 건물의 구조 성능을 최소로 가정하고 내진성 등을 향상시키기로 했다. 구조 검토 후 진행된 구조 설계에 준하여 구조 보강을 했다. 전단벽과 보를 추가하고, 지반이 위치하는 지하 19m 깊이까지 마이크로 파일을 박아 건물의 지내력을 확보했다.
소리 없는 아우성
주목할 만한 부분은 구조 보강과 기존 건축물의 비례를 잘 살려내는 것과 함께 골조를 디자인했다는 점이다. 성수연방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건물 파사드 면을 이루는 붉은 벽돌이 아니라 수직으로 내려오는 분홍빛 기둥들이다. 건축에 대한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기둥들이 단순히 구조적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형적 요소라는 점을 금방 알아챌 것이다. 이 입면 기둥은 발코니를 지지하고 기존 구조를 보강하는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건축가의 의도가 들어간 조형적 역할을 담당한다. 이에 대해 한승재는 “미래에 대한 낙관과 경제적 번영이 한차례 휩쓸고 간 소비에트 시절의 모뉴먼트처럼 상업시설이 한번 쓸고 나간 후에 남는 조형을 상상하면서 설계했다. 유로폼을 사용하지 않고 일반 합판 거푸집과 각목을 사용해 조각을 만들 듯이 제작했다”고 말하면서, 조형적인 기둥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연희동에 위치한 연희중앙교회의 기둥에는 조각이 되어 있다. 이 앞을 여러 차례 지나다니면서 당시 건축가가 이 건물을 설계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그려졌다. 그 하나로 세상이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당찬 포부 말이다. 지금은 교회로 바뀌었지만 그 기둥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그 건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종종 들었는데,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 조각 기둥 때문일 것이다. 일종의 기억장치 같다.” 그 건물은 김인철(아르키움 대표)이 설계하고 1984년에 지어진 구 연희조형관이다.
푸하하하는 이러한 골조의 조형성이 쉽고 빠르게 모습을 바꾸는 상업 공간에서 건축물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장치라고 보고, 이 건물이 지어진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기둥을 디자인한 것이다. 현대적인 디자인보다는 마치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처럼 기단부에서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도록 새 기둥을 디자인해 뒤쪽의 기존 기둥과 명확하게 대비되도록 했다. 또한 질 높은 컬러 콘크리트가 아닌 스테인 칠을 해 사용감이 잘 드러나도록 했다. “조형 기둥을 디자인할 때 참고하거나 차용한 이미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한승재는 1971년에 종로구 운니동에 세워진 한 빌딩 사진을 보여주며, “이 빌딩의 파사드를 보라. 여기에 수많은 간판이 달리고, 주인이 바뀌고, 용도가 바뀌어도 사람들은 이 건물을 기억하고 본래 모습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고 답했다.
성수연방의 조형 기둥들을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가동의 기둥과 나동의 기둥이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단부의 높이와 넓이, 튀어나오거나 들어간 부분이 조금 다르다. 이에 대해 한승재는 “이 기둥 디자인을 통해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푸하하하는 오늘날 상업 건축물에서 간판이나 인테리어의 목소리만 너무 커지고 있는 가운데서 그 이면에 있는 건축의 묵직하고 고유한 목소리를 조형 기둥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가동의 입면 모습
나동의 입면 모습
불확실성을 대하는 건축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 푸하하하는 여러 나라들이 공존하면서 하나로 연합되어 있는 연방국처럼, 여러 소상공인들이 들어와 공장과 가게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공간을 상상하며 ‘성수연방’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들은 성수연방을 설계하면서 예쁜 것과 추한 것을 나누고 좋은 것만 드러내고 안 좋은 것은 숨기려고 하는 현대 문명사회 속 아울렛이 아닌, 춤추는 사람, 대장장이, 고기 자르는 사람, 술 먹는 사람이 한곳에 모여 있는 중세시대의 그림을 상상했다. 하지만 상업 건축물이 갖는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처음 기획했던 소규모의 공장들로 성수연방을 꽉 채우는 프로그램은 실현되지 못했고, 그들은 건축의 변하지 않는 건축의 물리적 속성, 즉 구조안전, 골조 디자인, 건물의 비례에 집중했다. 정말로 성수연방을 구석구석 둘러보다 보면, 그 세 가지 이외에는 건축가의 손길이 의외로 느껴지지 않는다. 가동 1층과 2층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인테리어 모두 제각각이며, 복도 바닥재, 관리실 등 일관되게 정리되지 않은 모습들이 혼재해 있다. 그들이 말했듯이 정체성을 훼손하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건축 어휘는 엄격하게 가져가되, 임대형 상업 건축에서 수없이 변경될 것들에 대해서는 충분한 여지를 주고, 난간의 간격이나 각도와 같은 생활과 밀접한 디테일에 대해서는 건축가로서의 고집을 내려놓았다. 1부터 100까지 건축가의 의도대로 완벽하게 구현된 건물에서는 사용자의 작은 행위도 단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푸하하하가 클라이언트에게 제공한 인테리어 가이드라인에 보면, 디자인 콘셉트 중 하나로 ‘건물과 인테리어의 디자인 분리’가 있으며, 이 항목에는 ‘변경불가 부분’을 지정해 둠과 함께 ‘건물 전체의 통일된 디자인을 위해 구조체와 슬라브 일부 지정 부분은 변경하지 않는다’, ‘변경불가 부분과 인테리어 공사 부분이 만나는 부분의 재료를 분리한다’ 등이 언급되어 있다. 한승재는 "성수연방의 경우, 여지를 남기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일종의 이미지를 부여하고자 했다. 이를테면 권위를 상징하던 조형이 폐기물처럼 서 있는 모습이나 정성껏 만든 오래된 빌딩에 간판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모습처럼, 권위를 지향하지만 조금의 권위도 없는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도 그 건축물만이 지닌 고유성이 변하지 않도록 만드는 요소에 주목했다. 상업시설에 휩쓸려 정체성이 바뀌는 건물과는 달리 상업시설과 건물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도록 성수연방을 디자인했다. 여지를 남기는 건축 행위가 상업시설에 몸을 내주는 건축 행위는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성수연방은 낡고 허름한 폐허의 이미지에 기대어 리노베이션된 일부 공장처럼 언제든 그 정체성을 바꿀 수 있는, 본래 무엇이었는지도 모를 익명의 건축물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 주인이 바뀌고 시간이 흐르고 용도가 달라지더라도 이 건물이 태어나고 자란 시절의 기억과 이 건물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가 훼손되지 못하도록 하는 데 건축의 고유한 힘을 사용했다. 구조 보강을 하고, 입면 디자인을 통해 건물과 중정이 비례를 살려내고, 조형의 요소를 가미한 새로운 기둥을 이식함으로써 다시금 과거의 기억과 분위기를 재생산해냈다. 그러면서도 그 외의 요소들은 클라이언트와 사용자들의 자율성에 의해 운영되도록 여지를 남겨둠으로써 과거와 현재,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 그리고 다양한 삶의 형태를 가진 사람들이 섞일 수 있도록 건축을 배경 삼았다.
성수연방의 완공은 어쩌면 2019년 1월이 아니라 2029년 1월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건축가가 10년 후의 모습을 상상하며 설계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미래로 던진 어떤 바람이 이루어질지는 지금은 모르니, 푸하하하가 그린 성수연방의 10년 뒤 모습을 여기에 적어둔다. “중정에 체르노빌처럼 큰 나무가 가득 찼으면 좋겠어요.”, “중정에서 사람들이 비키니를 입고 일광욕을 했으면 좋겠어요.”, “사용자들이 건물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건축물을 더욱 빛내주면 좋겠어요.”
가동의 1, 2층 인테리어는 푸하하하가 맡아 작업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