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설과 쓰레기 소각장의 동거
부천아트벙커 B39(이하 B39)는 그동안 작업했던 여러 공공 건축물 재생 사업 중에 가장 이상적으로 진행된 사업이다. 운이 좋았다. 쓰레기 소각장이 들어설 때만 해도 이곳은 열병합발전소와 공장시설이 밀집해 있던 변두리 지역이었지만, 도시가 확장되고 아파트 단지와 맞붙게 되면서 소각장은 골칫덩이가 되어버렸다. 여러 갈등의 진원지였고, 결국 2010년 문을 닫았다. 그 후 주민들은 이 시설을 철거하고 공원이나 수영장과 같은 주민 편의시설을 들이기를 요구했지만 철거 비용만 해도 70억 원이 소요되는 일이었다. 부천문화재단과 부천시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에 공모했고, 2014년 사업자로 선정됐다.
설계공모의 현장설명회 때문에 처음 이 건물에 갔을 때는 어두컴컴하고 소각장 설비들로 가득 차 있어 도무지 공간이 이해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요구되는 프로그램에 비해서 70억 원이라는 공사비는 터무니없었다. 현장설명회에 왔던 그 많은 건축가들은 결국 우리를 포함한 세 개 회사를 제외하고는 작품을 제출하지 않았다고 나중에 들었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시 나로서는 대책 없이 번지점프를 하는 기분이었다. 아마 소각장이 주는 으스스함과 거인 같은 설비의 매력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거대한 기계가 의인화된 느낌이었다. 설계의 난이도와 공사비 문제에도 불구하고, ‘망하거나 흥하거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으로 공모에 참가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 보니 발주처에서는 예산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전 준비에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었고 문체부의 사업지원 마감기한이 다가오니 어쩔 수 없이 무리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당선 이후 나는 이 모든 난관을 내가 감당해야 하나, 하는 공포감을 느끼며 발주처와 자문위원들 앞에서 착수보고를 했다. 하지만 발주처와 MP, 자문단도 상황을 숙지하고 있었고, 그 이후 과정에서도 예산은 없지만 현명하게 잘 만들어보자는 긍정적이고 상호 협력적인 자세로 관계자들이 일관하였기에, 고생은 많이 했지만 큰 짐을 덜어낸 마음으로 설계를 진행할 수 있었다. 또한 발주처는 시설을 사용하고 운영할 운영사업자를 동시에 공모했다. 운영사로 선정된 사회적 기업 노리단과 설계 과정에서 공간의 쓰임을 함께 논의할 수 있었다는 점도 무척 긍정적이었다.
©Kang Sunjun
부천아트벙커 B39_ 거대한 소각장 앞에 어색하게 위치해 있는 관리동 건물과 소각장을 열주로 엮어 진입 동선 레이어를 만들었다. 이 레이어는 대로변과 마주하며 소각장의 변신을 예고한다.
원래 소각장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기계를 위한 곳이며, 그 거대한 시설을 몇 안 되는 사람들이 관리한다. 작가 박경근의 ‘철의 꿈’이라는 울산의 조선소를 배경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 대부분의 산업 공장들이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요함 속에 기계의 굉음만이 들리는 괴물스러운 광경이다. 소각장은 공간이 복잡하고 미로 같아서 한번에 파악하기 어렵지만 새로운 프로그램과 함께 소각의 과정을 잘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각의 과정 자체가 선형적이기 때문에 가능해 보였다. 기존 서측 차량 동선과는 별도로 동측에 새로운 보행 동선을 만들어 쓰레기 반입실에서부터 벙커, 소각조, 재벙커, 유인송풍실, 굴뚝까지 이어지도록 했다. 2층에도 동일한 동선을 배치했다. 그리고 거대한 소각장 앞에 생뚱맞게 위치해 있는 관리동 건물과 소각장까지 열주로 엮어 진입 동선 레이어를 덧붙였다. 이 레이어는 대로변과 마주하며 소각장의 변신을 예고한다. 이 레이어를 제외한 모든 부분은 도색만 됐을 뿐, 예전 소각장 모습 그대로다. 사실 진입부는 열린 광장으로 조경가 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교수)이 설계했고, 동측의 주차장 공간을 포함한 녹지 영역도 그러했는데 예산의 문제 때문에 방치되고 말았다. 관리동도 진입 시 보게 되는 얼굴로서 나름 적절하게 설계를 했지만, 심각한 구조보강비 문제로 차후 사업으로 미루어지게 됐다. 벙커의 5층 공간도 차후 사업으로 미루어졌다. 기존 소각로는 설계지침에서 철거하도록 되어 있었고, 이 부분을 다양한 옥외행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중정으로 설정했다. 진입하다 보면 방풍실이 특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풍실 네 면이 문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기존의 쓰레기 반입실이었던 멀티미디어홀과 39m의 벙커를 하나의 공간으로 사용할 때를 염두에 둔 것이다. 멀티미디어홀은 벙커를 거쳐 로비로도 이어지지만 자체적인 출입구가 있어 야간에도 별도 운영될 수 있게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쓰레기 벙커는 거대하게 곧추선 벽체와 칙칙하고 거친 질감으로 방문자를 압도한다.
설계를 하며 내내 ‘디 아더스’ 라는 영화를 생각했다. 이 영화는 어느 아이의 눈에 자꾸 보이는 귀신에 관한 무서운 이야기인데, 영화의 말미에 다름 아닌 아이가 귀신이었다는 반전이 있다. B39의 공간에서는 소각의 과정을 경험하는 동시에 문화 및 교육 활동들이 일어나는데, 투어 프로그램을 하며 기존 소각시설 내부로 들어갔을 때 반전이 일어나는 모습을 상상했다. 또한 문화시설과 쓰레기 소각장이 동거하는 느낌으로 설계하고자 했다. 현대사회에서는 쓰레기와 같은 음울한 모든 것들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도록 사회 설계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실 그 쓰레기와 음울한 이면의 일상이 우리의 도시이고 우리의 현실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
벙커를 가로지르는 보행 동선이 추가됐고, 기존 소각조는 다양한 옥외 활동을 할 수 있는 중정으로 계획됐다.
기존 서측 차량 동선과는 별도로 동측에 새로운 보행 동선을 만들어 쓰레기 반입실에서부터 벙커, 소각조, 재벙커, 유인송풍실, 굴뚝까지 이어지도록 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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