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 FnC가 이태원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코오롱스포츠 한남은 의류 매장과 전시 공간을 함께 운영하여 젊은 소비자의 방문을 유도하고자 했다. 공간 설계를 맡은 서동한은 이러한 클라이언트의 의도를 ‘도심 속 트레킹’이라는 콘셉트로 풀어내고, 그것을 공간과 동선 디자인에 적용했다. 그에게 걷고, 휴식하고, 주위를 둘러보게 만드는 아웃도어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설계한 과정을 들어보았다.
인터뷰 서동한 스튜디오 프레그먼트 대표 × 김예람 기자
김예람(김): 코오롱 FnC가 이태원에 아웃도어 브랜드를 위한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클라이언트는 여러 의류 브랜드의 쇼룸이 모여있는 이 지역에서 어떠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는가?
서동한(서): 클라이언트는 이태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공간에 반영하고자 했다. 매장이 들어설 부근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과도하게 꾸미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판단하여, 불필요한 장식이나 위트를 배제하기를 원했다.
김: 플래그십 스토어의 콘셉트가 ‘도심 속 트레킹’이라고 들었다. 공간에서 이러한 콘셉트를 어떻게 구현했는지 궁금하다.
서: 코오롱스포츠는 멀리 있는 자연으로 떠나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아웃도어를 즐기자는 것을 브랜드의 테마로 삼고 있다. 사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자연을 근처에서 찾기 어려운 도심에서 어떻게 아웃도어와 공간을 연결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던 와중에 숲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자연현상을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재료로 재해석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무채색 계열의 재료를 사용해서 루버, 그레이팅 같은 요소를 만들고 마치 나뭇잎 사이로 내리는 빛과 그림자를 연출했다.
김: 이전 작업들에서 사용해오던 격자 무늬가 루버와 그레이팅에서도 보인다. 이것들은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서: 의도하지 않았는데 완성된 결과물에 격자무늬가 있는 경우가 꽤 있다. (웃음) 격자무늬는 촘촘한 듯하지만 개방성을 지닌 재미있는 모양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이 무늬로 켜켜이 자라난 나무 사이로 사람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다. 건물 외관에 설치된 루버를 보면 부재가 윗부분에서는 세로로, 아랫부분에서는 가로 방향으로 나란하다. 대로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1층에 있는 이용자를 인지하지만, 루버의 패턴 때문에 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는 알기 어렵다. 실내로 들어와야만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김: 1층을 전시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어떤 부분을 개・보수했는가?
서: 처음 현장에 방문했을 때 공간은 이미 비워져 있었고 구조 보강도 마친 상태였다. 이 공간을 전시장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조도를 어둡게 만들어야 했는데, 외부에 대한 개폐를 조절할 수 있는 전동 블라인드뿐만 아니라 빛을 공간 안쪽에 들여오는 장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창가에 벽돌을 조적하고 사이사이에 유리벽돌을 삽입했다. 빛의 투과를 돕는 이 재료를 여기저기 흩뿌릴까 생각했지만,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려는 의도가 너무 드러날 것 같아 벽돌 그리드에 맞춰서 정렬했다. 그리고 전시물을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도록 천장 레일을 설치했다. 전시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지만 전시의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는 요소를 제안하고 싶었다.

김: 지하 1층과 연결되는 계단이 두 개다. 넓지 않은 실내공간에서 수직동선을 분리한 이유가 궁금하다.
서: 계단은 플래그십 스토어의 콘셉트와 관련 있다. 뚜렷한 전시 동선을 만들어놓으면 거리에서의 흐름이 지하 매장까지 이어질 거라 생각해서 주변과 명확히 구분된 오솔길을 만들고 싶었다. 바닥에 자갈을 깔아놓고 그걸 치우면서 길을 만드는 방식으로 말이다. 숲에서는 사람들이 다니는 흔적이 길이 되지 않나. 그런 길을 만들면 안내를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아래층으로 내려갈 것 같았다. 아쉽게도 다양한 전시 기획을 위해 1층 바닥을 자갈로 가득 채운 오솔길로 만들지 못했지만, 입구에서부터 매장으로 이어지는 계단의 자연스러운 동선은 유지할 수 있었다. 다행히 계단을 나누어 설치하는 아이디어는 통과되어 공간이 의도했던 방향에 가깝게 사용되는 것 같다. 적어도 사람들이 동선을 역행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웃음) 그리고 관람객과 구매자가 부딪히는 상황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계단을 두 개 놓은 이유도 있다.
김: 계단을 내려가면 거친 표면의 바위와 야생에서 자란 듯한 식생이 심겨있다. 이런 조경을 통해 어떠한 효과를 얻고자 했는가?
서: 조경 작업을 담당한 엘트라바이가 검은 잎의 식물과 약간 불에 그을린 듯한 자갈을 사용하는 식으로 전체 공간의 어스름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조경 디자인을 완성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조경이 공간의 분위기를 전환하면서, 사람들이 전시를 다 보고 난 다음에 매장으로 자연스럽게 내려가도록 만드는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김: 지하 1층에서는 기획전시에 맞게 옷, 신발, 액세서리 등을 선별 판매한다고 들었다. 계절에 의존하던 판매전략에서 벗어나려는 패션계의 시즌리스 경향과도 맞닿아있는 것 같다.
서: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을 운영하는 글린트가 전시 콘텐츠를 맡고, 클라이언트가 그것과 어울리는 아이템을 골라서 배치하기로 했다. 우리는 전시에 맞는 옷과 신발을 잘 보여줄 수 있도록 공간을 깔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상황에 맞게 매장을 꾸밀 수 있도록 위치 조절이 가능한 옷걸이와 조합·분리가 간편한 디스플레이용 스테인리스 박스를 제작했다.
김: 차곡차곡 쌓인 스테인리스 박스와 기둥 하단을 감싸는 거울이 눈에 띈다. 이 요소들에는 어떠한 디자인 의도가 담겨있나?
서: 스테인리스 박스의 디자인은 높낮이가 다른 산세에서 착안했고, 그 모양을 픽셀화나 도식화된 덩어리로 생각하고 작업했다. 박스를 모듈로 제작했기 때문에 그것을 이어 붙여 넓고 평평하게 사용할 수도 있고 지금과는 다른 지형으로 만들 수도 있다. 아이템이 잘 어울리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거울도 설치해야 했는데, 거울이 인테리어와 별개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기둥의 네 면을 거울로 둘렀다.
김: 기둥 하단에 거울이 여러 각도로 부착됐는데, 이 거울이 외부에서 들어온 채광을 반사하면서 신발을 더욱 근사하게 만들어주는 간접 조명 역할도 하는 것 같다.
서: 사실 그건 우연의 효과다. (웃음) 너무 멋있는 장면이 만들어져서 좋았지만, 우리는 빛이 들어오는 것만 의도했고 그게 거울 하단에 반사되는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김: 테라조처럼 작은 조각이 박힌 듯한 검은색 벤치가 매장 곳곳에 놓여있다. 직접 제작했나?
서: 앉는 데 불편함만 없으면 오브제에 가까운 가구를 제작해도 괜찮다는 클라이언트의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는 제스모나이트를 가지고 가구를 만들었다. 제스모나이트는 석고와 비슷한 표면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소재와 섞어도 높은 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재료다. 우리는 재료의 리사이클링을 실험해보고 싶어서 잘게 자른 테이크아웃용 컵의 뚜껑을 섞었다. 콘크리트처럼 몰드를 만들고 용액을 붓는 방식으로 제작했는데 결과물의 표면이 너무 깔끔해서 놀랐다.
김: 최근 이태원의 상업시설들이 외부를 향해 열려있는 공간을 운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런 공간전략을 적용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서: 예전의 이태원이라면 ‘여기 들어가도 괜찮나?’라고 생각되는 곳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공터나 전시장 등을 만들어서 상업공간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 경우가 늘어난 것 같다. 보행자를 향해 공간을 여는 것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유입하려는 시도로 보이는데, 그것보다는 건물 안에서 일어나는 프로그램에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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