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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롤모델즈' 전과 후, 지속과 확장의 모색

여집합
자료제공
여집합

2018년 봄, 건축계에 종사하는 30대 여성들이 ‘여집합’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여성 건축인의 서사를 구축하고 확장하는 ‘빌딩롤모델즈’(이하 BRM) 기획을 시작했다. 1년여 만에 출간된 결과물 『빌딩롤모델즈-여성이 말하는 건축』​에는 여러 세대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건축을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막상 이를 기획하고 진행한 여집합의 목소리는 빠져있다. 프로젝트를 일단락 지은 여집합으로부터 출간 소감, 성취하고자 했던 목표와 앞으로의 계획을 직접 들어봤다. 

 

 

정유리: 한국에서 건축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희박하였기에 단순한 호기심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면, 대담과 책이 마무리되고 나서 그 호기심은 더 많은 고민과 숙제로 남았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고민이 훨씬 구체적으로 정리되었고 많은 동료, 선·후배와 나누어 가졌기에 그 무게가 전만큼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책에 담긴 스물네 명의 여성 건축인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나마 겪고 나니 나도 모르게 막연한 용기와 힘이 생긴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국외에서 활동하는 여성 건축인의 이야기도 균형 있게 담아 조금 더 넓은 시각을 소개하고, 해외의 기관이나 단체에서 체계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통계 자료를 분석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와 가까운 범위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도록 내용이 많았기에 이 책에서는 다루지 못했다. 꼭 우리가 아니더라도 이런 활동이 이어지고, 여집합의 활동이 하나의 씨앗이 되어 자기만의 판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가 많이 생겨날 수 있기를 바란다. 여성 건축인이 모여 여성의 목소리로 건축을 말하는 것이 특별한 이슈가 되기보다는 당연하게 여겨지길 희망한다. 

 

주명현: BRM 기획에 참여한 지 1년이 되었다. 기획 초기에는 이토록 긴 시간과 밀도가 필요할 줄 몰랐다. 이렇게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선뜻 나서주신 전문가들의 격려, 후원자들의 도움과 여집합 구성원들의 협업 덕택이다. 각자 본업을 마치고 BRM을 위해 모인 2018년의 매주 주말은 힘들기보다는 오히려 다음 한 주의 에너지를 얻어 가는 시간이었다. 이 책이 여성 건축인들에게 건축을 해나가는 다음 한 걸음을 위한 힘을 보태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보름: 분량이나 편집상의 한계로 책에 미처 다 담지 못한 내용이 무척 아쉽다. 한편 동영상으로 공유하기 위해 영상촬영도 진행했다. 이틀에 걸친 대담인지라 짧지 않은 영상이지만 현장의 분위기와 책에 실리지 못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영상은 BRM 홈페이지(https://www.bldgrolemodels.com/)를 통해 공유할 예정이다. 

BRM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여성 건축인의 서사를 구축하고 확대하는 것이고, 이를 위한 연구, 아카이빙의 확대와 제도의 개선 논의가 시작되는 것이다. 여성 건축인 여섯이 모여 자연스럽게 정한 주제가 건축에서 여성의 상에 관한 것이었다. 앞으로 건축계 안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계속할지 혹은 소수의 이야기를 더 구축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책이 이제 막 나왔으니 반응을 들으며 의견을 수렴하고 우리 자신의 목소리에도 다시 귀 기울여야 그다음이 정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다미: 극장의 화면이 시야를 넘어갈 만큼 커지면 영상은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느껴진다. 넘치는 분량을 줄이느라 모니터에 띄운 BRM 파일을 코 박고 읽을 때면 그런 황홀이 종종 찾아오곤 했다. 책이 나왔고 이제 현실에 놓인 B6판형의 작은 책 한 권을 두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있다. 책에 못다 한 이야기가 많지만, 그중에서 여집합의 이야기 비중이 적은 것은 자칫 우리의 시선이 해설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야기 비중이 늘수록 책을 우리에 관한 이야기로 수렴하게 할 여지가 있었다. 

한국건축의 이야기들은 누가 찾아내고 어디로 모이는 것일까? 여성의 이야기는 더 공신력 있는 기관이 더 오랜 시간을 두고 더 많은 에너지를 들여 더 촘촘히 드러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여집합이 독립집단으로서 누릴 수 있던 자율성과 별개로 지난 1년 동안 내내 머리에서 떨치지 못한 질문이다. 비단 여성의 이야기만 희박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많은 것들이 한국 건축계에 희박하다는 걸 재차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김자연: 개인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우선 시작하고 길을 찾으면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는 여성 건축인들이 걸어온 길이기도 하지 않나. 또한 서점의 작은 건축 섹션에 한 권의 책을 추가하였다는 뿌듯함은 덤이다. 

이 출판을 통해 당장 큰 변화나 각성 등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건축계에 다양한 이야기 중 하나를 만들어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비단 여성뿐만이 아니라 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이야기를 더해갔으면 한다. 

 

김그린: 출간 이후 홀가분하기보다 오히려 책임감을 느끼고 마음이 무거운 상태다. 우리가 내놓은 이야기가 잠깐의 이슈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다음 단계로 진화할지, 논의를 이어갈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지금은 일단 책이 많이 읽히고 회자되어 이 문제를 한차례 소화시켜야 하는 시점인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의견과 질문이 오갔으면 한다. ​많은 사람이 책을 읽고 다양한 건축인과 다방면의 건축 활동이 나타나서 건축계에 흥미로운 서사가 펼쳐지길 소망한다. 바라건대 BRM 이후의 이야기는 꼭 우리가 끌고 가지 않고 또 다른 목소리를 내는 집단이 이어나가 이야기를 확장했으면 한다. 

또한 기회가 생긴다면 이 책을 번역하여 해외에 소개하고 싶다. 근래 전 세계적으로 여성 건축인 이슈 관련 활동가들이 등장했고, 저널리즘, 출판, 워크숍 등의 활동도 활발히 나타나고 있다.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의 학생조직 단체 ‘우먼 인 디자인’(https://www.gsdwid.com/), 2018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여성 건축가들이 모여 플래시몹 형태로 낭독한 선언문 ‘보이스 오브 우먼’(https://vowarchitects.com/) 등이 그 사례다. BRM을 매개로 안팎으로 이야기가 확장되기를 바란다. <진행_오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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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집합
여집합은 건축을 공부하고 각자의 방향에서 실무를 쌓아나가고 있는 30대 여성 6인이 모여 만든 기획집단이다. 여성 건축인의 서사를 구축하고 확장하는 기획 ‘빌딩롤모델즈’ 대담과 출판을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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