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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실현한 사회주택: 〈르네 가유스테: 천 한 가지 삶의 방식〉

사진
필립 대일 노가레(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NVBL 아키텍츠

「SPACE(공간)」 2026년 4월호 (통권 701호) 

 

〈르네 가유스테: 천 한 가지 삶의 방식〉 전시 전경 

 

 

AA 스쿨 내 AA 프론트 멤버스룸 및 AA 바

2026. 1. 16. ~ 3. 21. 

 

 

인터뷰 니콜라 배링턴-리치 NVBL 아키텍츠 대표 × 김보경 기자 ​

 

 

오늘날 우리는 대체로 같은 아파트 평면 안에서 살아간다. 르네 가유스테(1929~2023)가 설계한 프랑스 교외의 사회주택은 다르다. 파리 교외에 2,000호 이상의 사회주택을 설계한 가유스테는 다른 이들이 반복을 선택할 때, 각 가족이 저마다 고유하듯, 각 주거 공간도 그러하다며 1,500여 종의 다른 유닛을 설계했다. 전시를 기획한 니콜라 배링턴-리치(NVBL 아키텍츠 대표)를 만나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그녀의 작업과 이를 조명한 전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보경(김): 르네 가유스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가유스테를 연구했다고 들었다.

니콜라 배링턴-리치(배링턴-리치): 영국 왕립예술아카데미(RA)의 르네 가유스테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정된 것이 출발점이었다. RA가 2022 왕립아카데미 건축상을 르네 가유스테에게 수여했고, 그녀의 이름을 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우리는 2023년, 그 프로그램에 선정됐고, 파리에서 6주 동안 그녀의 작업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다. 이전에는 가유스테의 작업을 전혀 몰랐다. 그녀는 널리 알려진 건축가가 아니었고, 특히나 영국에서는 더 그랬다. 7월과 8월, 약 한 달 반 동안 우리 사무소는 그녀의 작품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2023년 1월, RA가 가유스테에게 건축상을 수여할 당시 몸이 좋지 않아 그녀는 런던에 직접 오지 못했고, 우리가 파리에 머물기 직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끝내 그녀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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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가유스테: 천 한 가지 삶의 방식〉 전시 전경​

 

 

김: 가유스테는 1961년 에콜 데 보자르에서 건축 학위를 취득한 후, 1962년 당시 이브리쉬르센의 수석 건축가였던 롤랑 뒤브륄의 사무소에 입사했다. 그리고 졸업한 지 불과 2년 후 이브리쉬르센 지역의 마스터플랜을 맡았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사실상 도시 하나를 설계하는 책임을 맡은 것이다. 여기에서 이러한 작업을 가능하게 한 당시 프랑스의 시대적 배경도 중요할 것 같다.

배링턴-리치: 그 마스터플랜 안에서 그녀의 사무소(1964년 설립)가 9개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했고, 몇 가지 프로젝트는 다른 건축가에게 맡겼다. 그리고 이브리쉬르센에서 작업을 하는 동시에 파리 북부에서 라 말라드르리와 생드니, 두 도시의 마스터플랜을 별도로 진행하고 있었다. 

물론 가유스테는 그 시대에도 독보적이고 특별한 존재였지만, 당시에는 오늘날에는 없는 인프라가 있었다. 그녀는 공산주의자였고 해당 지역들을 위한 재정 지원이 있었다. 주민들의 열망과 신뢰에 더해, 사회적으로도 건축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과 동력이 있었다. 그녀의 작업들은 1945년부터 1975년까지의 ‘영광의 30년(Trente Glorieuses)’ 동안, 즉 전후 경제 위기와 실업, 사회적 불평등, 정치적 불균형이 팽배한 시기에 등장했다. 영광의 30년은 일반적으로 급속 성장의 시대로 기억되지만, 전후 초기에는 빈곤이 만연했고 경제 상황이 처참했다. 이 시기 극심한 주거 부족 사태에 대응한 대규모 주거 공급은 국가 근대화의 핵심 수단으로 급부상했고, 모더니스트 도시계획가 모리스 로티발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규모 공공주택 프로젝트인 그랑 앙상블(grands ensembles)을 제안했다. 그녀의 프로젝트는 자주 이 그랑 앙상블과 잘못 동일시되는데, 가유스테는 중앙정부 주도의 그랑 앙상블의 표준화와 사회적 분리에 반하여, 도시에 대한 독립적이고 인간적인 비전을 구현했다. 그녀의 자유로운 건축 정신은 파리 ‘붉은 교외(banlieue rouge)’의 ‘건설하는 시장들(maires bâtisseurs)’을 만나면서 비로소 실현될 수 있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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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가유스테: 천 한 가지 삶의 방식〉 전시 전경​

 

 

김: 이렇게 방대한 그녀의 작업을 연구하기 위해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다. 

배링턴-리치: 사실, 레지던시 기간을 활용해 가유스테의 작업을 살피고 배우면서 사무소 작업도 병행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의 작업에서 뭔가를 배우려면, 먼저 그녀의 작업을 명확하게 번역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의 작업이 외부에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프랑스에 도착해 프락(Frac, 현대미술 지역 컬렉션)에 가 보니 바닥부터 천장까지 가유스테의 A1, A0 사이즈 손그림들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그런데 정작 보존된 프로젝트는 두세 개밖에 없었다. 그녀의 작업이 어디에 있는지, 정말 가유스테의 작업인지, 다른 사람의 것인지, 그녀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부터 파악해야 했다. 

사진작가를 포함한 팀을 꾸려 그녀의 작업을 다시 도면으로 그리고, 모형을 만드는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우리는 그녀의 건물을 모두 직접 찾아가 사진으로 담고 주민들도 만났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여러 관계자를 만난 덕분에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중 가유스테와 2년간 함께 일했고, 그녀가 설계한 단지 중 한 곳에 오래 거주해온 건축가 캐서린 피우마니도 만났다. 피우마니의 이야기는 전시와 관련해 최근 출간한 『Renée Gailhoustet(르네 가유스테)』에 에세이로 실었다. 발레리 사둔의 사진도 책 속 포토에세이로 수록했는데, 사둔은 2014년에 가유스테를 만났고, 그녀가 타계한 직후 그녀의 아파트를 촬영한 사진작가다. 

나는 가유스테의 작업을 도면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녀의 건물은 규모가 워낙 커서 한 장의 도면에 담기 어렵다 보니, 대체로 도면보다는 사진을 통해 소개되어왔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도면은 모두 새로 그린 것이다. 도면을 그리면서 놀라울 만큼 다양한 형태의 주거 공간과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종의 공간적 혼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 가유스테의 작업은 고밀도 공동주택에서는 보기 힘든 계단식 테라스와, 서로 다른 다양한 유닛이 특징이다. 실제로 그녀의 건물을 직접 경험하면서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가?

배링턴-리치: 가유스테가 설계한 사회주택에 실제로 가 보면, 주민들이 정말 자신의 공간을 사랑한다는 게 느껴진다. 이브리쉬르센은 외곽에 위치해 있지만 실제로는 파리 중심부와 접근성이 매우 좋고, 도심에 비해 훨씬 넓은 면적을 누릴 수 있다. 사회주택에서 월 800유로가량을 내고 그만한 공간을 누릴 수 있다니, 당연히 사랑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큰 규모의 테라스와 정원도 있다. 가유스테 본인도 타계 전까지 르 리에가에서 살았는데, 100m2의 테라스를 포함해 네 개의 테라스가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건축은 정말 너그럽다. 1층에서는 거리가 확장되고, 육각형 그리드 시스템을 통해 위아래로, 혹은 옆으로 정원을 공유하게 한다. 정원을 공유하는 데서 오는 긴장감이나 어색함을 걱정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장려한다. 이런 장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정을 찾고, 유대를 맺고, 소통하게 만든다. 

또한 그녀는 모든 가족이 다르게 사는 만큼 아파트도 다양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1,500여 개의 완전히 서로 다른 유닛을 각각 개별적으로 설계했다. 그리드 시스템을 기반으로 우선 매스를 만들고, 거기서부터 형태와 각도를 만들어간다. 테라스 위치, 창문 위치, 방향 등에서는 열린 가능성을 둔다. 그렇게 잘라내고 당기고 밀어넣다 보면 독특한 형태가 나온다. 형태가 아닌 실제 거주자를 고려하며 내부에서 외부로 설계한 것이다. 또한 그녀가 설계한 거주 공간들은 기능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의 여지를 두었다.

주민들과 가유스테의 가족뿐 아니라, 프랑스에서 주거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건축가들도 만났다. 1960년대 가유스테의 비전이 오늘날 유럽에서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그 관계를 살펴보고 싶었다. 집합 주거를 둘러싼 문제는 매우 복잡하며, 그만큼 중요한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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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리에가 내부 모습 ©Sacha Trouiller, commissioned and directed by NVBL Architects

 

 

김: 가유스테는 유럽의 사회주택들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배링턴-리치: 영국의 경우 모두가 사회주택을 ‘저렴한 주택(affordable housing)’이라고 칭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비싸서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모두를 위한 더 나은 주거의 사례를 찾는 것이 건축계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가유스테는 그러한 좋은 사례의 출발점으로 훌륭한 일을 했다. 단순히 좋은 벽, 바닥, 천장이 아니라 이웃이 교류하고 서로 나누는 진정한 커뮤니티와 테라스 등 다양한 요소를 갖춘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책에서 마그다 마오위가 “라카통 & 바살 같은 건축가들이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에서 가유스테의 접근 방식을 참조하고 있으며, 이는 그녀의 프로젝트들이 여전히 영감을 주고 있음을 입증하며 보존과 수리의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 연구 이후 가유스테의 작업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나? 또 어떤 작업을 이어가고자 하는가?

배링턴-리치: 우선 그녀를 정말 깊이 존경하게 됐다. 또 개인적으로 어딘가 그녀와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 반은 프랑스인이지만 대학 졸업 후 프랑스를 떠났는데, 내 삶의 한 시절을 다시 발견하는 경험이기도 했다. 

건축가로서는 그녀에게 너그러운 협업의 자세를 배웠다. 그녀는 마스터플랜에 많은 건축가들을 참여시켰고,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작업을 나눠줄 만큼 너그러웠다. 7명 규모의 작은 사무소를 유지하고자 했고 성장에 집착하지 않았다. 우리 업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더 크고 더 많은 프로젝트를 원하지 않나. 나도 거대한 사무소를 운영하고 싶다는 야망이 없고, 비교적 소규모 주거 작업을 해왔다. 규모가 커지면 설계의 즐거움과 창의성을 잃게 되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의 작업이 내 미적 취향에 맞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공간이 제공하는 것들과 그녀의 인간 중심적인 건축은 내게 정말 깊이 각인됐다. 그녀가 설계하는 것은 입면이 아니라 경험인 셈이다. 이러한 그녀의 작업 방식을 정말 좋아한다.

 

​김: 이제 전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가유스테가 직접 거주했던 르 리에가의 한 유닛을 전시장에 들이고자 했다. 전시는 어떻게 구성했나? 여러 작업 중에서 특히 르 리에가를 선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배링턴-리치: 르 리에가를 선택한 이유는 르 리에가야말로 진정으로 그녀가 추구하는 건축을 선보인 첫 번째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브리쉬르센에서 르 코르뷔지에 스타일의 건물을 짓기도 했으나, 르 리에가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꽃피웠고, 이는 이후 파리 북부의 더 큰 마스터플랜으로 이어졌다.

AA 스쿨은 안뜰 광장을 둘러싸는 조지아 양식의 오래된 주택 건물을 사용한다. 런던에는 이처럼 광장이 많지만 대부분이 사유지다. 풍요로운 조지아 양식 주택에 사회주택을, 가유스테가 설계한 공간의 독특한 경험을 들여놓고자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사각형, 직사각형의 방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녀가 설계한 지역, 건물, 아파트 유닛에 들어서면 방향감각을 잃게 될 것이다. 실제로 나도 그랬다. 지도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느낌이 정말 좋았다. 그 경험을 AA 스쿨에 가져오는 동시에, 일종의 충돌을 일으키고 싶었다.

AA 바 옆 AA 프론트 멤버스룸에 평면도를 배치했다. 그곳은 AA 스쿨 건물의 심장부로, 교수, 학생, 방문객 모두가 모일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전시장에 배치한 원형 테이블은 르 리에가 유닛 안의 계단과 같은 크기다. 그 위에 모형과 도면이 놓여 있고, 걸려 있는 종이는 벽을 표현한 것이다. 테라스도 실제 크기와 똑같이 만들었는데, 이는 기존 벽난로와 충돌한다. 크고 열린 방인 멤버스룸에서 숨을 수 있는 아늑한 공간, 가유스테의 공간에서 경험했던 변화의 순간들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동시에 이 유닛이 얼마나 큰지도 보여주고 싶었다. 르 리에가의 유닛 평면도가 멤버스룸 안에 다 들어오지 않았는데, 멤버스룸은 원래 조지아 양식 주택에서 주 거실로 사용했었던 곳으로 AA 스쿨에서 가장 큰 방 중 하나다. 즉 사회주택 복층 유닛의 한 층이 조지아 주택의 웅장한 방보다 더 크다는 의미다. 게다가 그 유닛은 원래 복층으로, 실제 거주 공간은 그보다 훨씬 크다. 

 

 

 

르 리에가 외부 전경 ©Sacha Trouiller, commissioned and directed by NVBL Architects

 

 

김: 나를 포함한 한국 독자 대부분은 전시가 영국에서만 진행되어 직접 가볼 수 없었지만, 곧 출간되는 당신의 책을 통해 르네 가유스테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집필 및 편집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배링턴-리치: 전시는 그녀의 작업 중 아주 작은 부분만 다루지만, 책은 그녀가 얼마나 놀라운 유산을 남겼는지 모두 보여준다. 가유스테는 생애 말년에야 처음으로 상을 받았다. 그녀의 작업을 기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나에게는 책이 프랑스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로 쓰였다는 점도 중요했다. 그녀의 작업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그러한 혹은 더 깊은 번역의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주거에 대한 이야기이고, 질 높은 공간을 갖춘 집에 대한 이야기다. 설계자로서, 건축가로서, 혹은 시민으로서 제약에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희망으로, 연결로의 초대이며, 우리 모두가 같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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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리의 ‘붉은 교외’ 혹은 ‘붉은 지대(red belt)’는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프랑스 공산당(PCF)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지역을 말한다. 주로 파리 남동쪽의 발드마른과 북동쪽의 센생드니에 걸쳐 있었다. ‘건설하는 시장들’은 이 지역의 시장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그들은 지역 주민의 주거 환경 개선을 주요 정치적 과제로 삼아 공공주택 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브리쉬르센은 발드마른의 북단에 위치하며, 파리 13구와 외곽순환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는 대표적인 붉은 지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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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SPACE(공간)」 701호(2026년 04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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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배링턴-리치
니콜라 배링턴-리치는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사(ARB)이자 NVBL 아키텍츠의 대표다. 바틀렛 건축대학원(UCL), AA 스쿨, 웨스트민스터 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연구 기반의 건축 실무와 함께 AA 스쿨에서 강의를, 킹스턴 예술대학교와 영국왕립예술대학원(RCA)에서 멘토링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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