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12월호 (통권 697호)

슬로우 클레이 스튜디오(2024)
DIALOGUE 조윤희 구보건축 대표 × 홍지학 충남대학교 교수 × 이소진 건축사사무소 리옹 대표 × 이중원 성균관대학교 교수 × 김정은 편집장 × 방유경 기자
구보가 일하는 방식
김정은: 두 사람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2015년 함께 구보를 설립하고 꼬박 10년을 함께 달려왔다. 어떻게 협업해왔는지, 서로의 역할이 구분되어 있는지, 혹은 역할에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홍지학: 우리는 서로 의견이 잘 맞는 편이라 개소 이후 모든 결정을 함께 논의했다. 원래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독단적이기 쉬운데, 조윤희가 내 디자인에 대해 아니라고 하면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을 만큼 신뢰가 두터웠기 때문에 의견 조율도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다 내가 대학에 부임하면서 조금씩 상황이 바뀌었다. 사무소 일이 아무래도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할 때가 있다 보니 타이밍이 중요한 일을 조윤희가 주로 맡게 되고, 나는 상대적으로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계획 설계를 맡게 됐다.
조윤희: 지금은 홍지학이 설계 앞단에서 계획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나면, 나는 그것이 잘 구현될 수 있도록 실시와 감리 업무를 주로 맡아 진행한다. 현재는 업무가 분리돼 있어 서로 갈등이 덜한 편이기도 하다.
홍지학: 조윤희가 현장에서 싸워가면서 힘든 일을 많이 담당하기 때문에, 설계공모는 내가 작업하는 비율이 더 높고 민간 프로젝트의 경우 납품 이후 공정까지 조윤희가 맡아 진행하는 식이다.
이중원: 그래서인지 답사 말미에 각자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를 꼽아 달라고 했을 때 두 사람의 대답이 일치하지 않아 흥미로웠다. 홍지학은 신트리 놀이터를, 조윤희는 슬로우 클레이 스튜디오를 꼽았는데 각자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도 다를 것 같다.
조윤희: 홍지학은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한 작업 중에 연의생태학습관과 신트리 놀이터를 가장 좋아하더라. 본인이 생각하는 건축의 질서가 잘 구현됐기 때문에 고른 게 아닌가 싶다.
홍지학: 정확한 분석이다. 아무래도 개념을 잡는 추상적인 단계에 에너지를 많이 쓰는 편이라 그 부분의 완성도에 관심이 많다. 신트리 놀이터를 가장 열심히 했었는데 완공된 이후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나와는 달리 조윤희는 건축주와 대면하는 등 현장에서의 상호작용이 훨씬 많다 보니 거기에서 생겨나는 역동성이 만족스러울 때 더 애정을 갖는 것 같다.
조윤희: 모든 프로젝트가 다 의미 있지만, 아우리움은 좋은 건축주와 함께 협업하며 새로운 재료나 디테일을 실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지금도 다른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는데 건축에 관심이 많아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내도록 격려해주는 관계다.

슬로우 클레이 스튜디오(2024)
김정은: 2024년 4월호에서 구보를 프레임으로 다뤘는데, 사실 이번에 답사하면서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만큼 건물의 미감이나 마감, 이를 설명하는 논리 등이 한 단계 더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우리움 같은 근생을 보면서 설계 단가나 여건에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하기도 했다. 근작에서 공공과 민간 작업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공공과 민간 작업 비율을 조절하거나, 작품을 수주하는 기준 같은 게 있는 건가?
이소진: 나와 내 주변을 보면 공공이나 민간이나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데 구보는 비율을 잘 맞춰 운영하는 것 같다.
홍지학: 사실 이는 의도적으로 맞추려고 노력한 결과다. 민간 작업으로 사무소가 바삐 돌아갈 때도 일부러 설계공모에 참여하기도 했다. 민간에서 할 수 있는 경험과 공공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것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일이 어느 한쪽으로만 특화되면 건축가의 능력 가운데 절반을 놓친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그래서 몸은 좀 힘들더라도 고집스레 도전하게 된다.
김정은: 앞서 공공에서는 추상성, 정합성, 자율성을 발현할 수 있는 반면 민간은 클라이언트에 맞춰지는 성격이 강하다고 언급했다. 두 영역에서 얻을 수 있는 바가 어떻게 다른가?
홍지학: 만일 민간에서 이상적으로 작업하는 (건축가가 의사결정권을 가진) 경우라면 실현할 수 있는 옵션이 무척 많을 것이다. 건축가의 의지에 따라 가능성의 폭도 훨씬 넓어질 거고. 공공은 특정 기준, 조달청이라는 제도, 사업비가 정해져 있는 반면 민간은 하한선, 상한선 모두 열려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공공은 개념적인 아이디어를 테스트해보는 데는 좋지만,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맞춰야 하는 기준이 있다. 그래서 계속 공공만 하다 보면 설계 감각을 잃기 쉽다. 역으로 민간 쪽 작업만 하면 일정하게 반복되는 루틴에 갇히게 되기도 한다.
이소진: 구보의 민간 프로젝트가 주로 근생이라 그런 것 같다. (웃음) 일반화하기에는 어려운 이야기다.

슬로우 클레이 스튜디오(2024)
김정은: 공공과 민간을 비교했는데, 구보가 생각하는 공공 건축의 가치는 무엇인가?
조윤희: 좋은 공공 건축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그다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 공공 건축에 대한 책임을 건축가한테 돌리는 것은 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대 한국의 건축가들은 훈련도 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 공공성의 DNA를 장착하고 있다. 그런데 설계공모를 통해 안을 선정하고 이후 구현하는 과정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시스템 자체가 달라지지 않으면 건축가들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계란으로 바위 치는 상황의 반복일 뿐이다. 나는 직원들에게 “계속 나가서 싸우자”고 하는데, 막상 나갔다 온 사람들은 거의 피투성이 패잔병이 되어 돌아오는 걸 되풀이하고 있다. 직원들 말을 옮기자면 “소장님은 무기도 안 쥐어주고서 맨날 나가서 싸우라고만 한다”는 거다. 근데 실은 나도 그 방법밖에 모르기 때문에 현장에서 몸으로 싸우고 투쟁하고 있는 거다.
홍지학: 첨언하자면 잘 만들어진 공공 건축을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적 자금을 투입해 여러 주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행위 자체도 중요하다고 본다. 공공 건축을 만드는 일이 앞으로도 지속될 텐데, 그걸 만들어가는 과정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조윤희: 우리나라는 발주처가 공정성에 대한 강박이 너무 지나쳐 결과물의 퀄리티를 포기하고 있다. 더 좋은 공공 건축을 많은 사람들이 누리고 경험하게 하려면 프로젝트 발주부터 시스템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슬로우 클레이 스튜디오(2024)
방유경: 이소진도 공공 건축의 선배로서 느끼는 바가 있을 것 같다. 원하는 대로 구현이 되지 않은 경험도 많았을 것 같다.
이소진: 시공 결과에 대해서는 눈높이를 많이 낮추게 됐다. 그나마 서울은 괜찮은데 지방으로 갈수록 상황이 심각하다. 정교한 건 둘째고 설계도서 자체를 안 보고 시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도면도 소용이 없더라. 공공 건축은 나 혼자 당장 뭔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길게 봐야 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좋은 선례가 생기는 것이 공공에서 가장 중요하다. 좋은 업체를 만나 좋은 선례를 만들어 그걸 기반으로 누군가 조금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닦는 것. 그래서 나도 프로젝트 할 때마다 한 가지씩만 더 하자는 목표로 작업하고 있다.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공공 건축물 외에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작은 공공 건축물의 수준이 좋아져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의 자부심도 높아진다. 공공 건축은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조윤희: 민간에서 작업할 때도 도시와 시각적으로 교호하게 하거나, 땅을 내어주고 물리적으로 동선을 연결하는 등 다양한 도전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공공성을 다르게 해석하게 되는 것 같다. 민폐를 끼치지 않는, 제대로 된 건물을 하나 잘 짓는 것 또한 공공성의 실천이 아닐까. 이중원이 말한 ‘어반 앨리 에반젤리즘(urban alley evangelism)’처럼 말이다.
이중원: 일전에 내가 책에서 썼던 표현인데, 신축 건물을 하나 잘 지으면 웃음이 전염되듯 주변에 있는 건물들이 덩달아 좋게 바뀐다는 의미다. 이렇게 호명되니 감사하다.
이소진: 사실 근생이 건축적으로는 재미가 덜할 수 있지만 우리 도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건물 유형 중 하나다. 이런 근생 건축들이 모여 도시의 모습을 만들기 때문에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 같다. 민간은 민간대로, 공공은 공공대로, 좋은 샘플은 누구에게든 다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거다.

슬로우 클레이 스튜디오(2024)
느슨한 정교함
방유경: 함께 답사하고 대담을 준비하면서 구보가 말했던 ‘느슨한 정교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두 사람에게 여전히 중요한 화두인데, 당시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조윤희: 우리가 그 표현을 썼던 건 민간이나 공공 작업들을 설계대로 시공하기 위해 여러 상황을 통제하려고 노력하다가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원래 통제가 안 되는 건데 우리가 통제를 하려고 하니 괴롭고 힘든 게 아닐까? 그렇다면 모든 걸 통제하려는 욕심을 좀 버려야 되는 게 아닐까? 통제가 안 된다고 했을 때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되는가? 이런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스스로는 정교함을 추구하지만, 구현 과정에서 느슨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인식이었다.
이중원: 통제가 안 되면 정교함도 버려야 되는 게 아닌가?
조윤희: 맞다. 그래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정교하게 하되, 현장처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좀 느슨하게 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려면 건축가가 이상적인 도면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계속 굴러가도록 건축주, 시공사, 도급사 등 관계자들을 만나 조율하고 의논하면서 막힌 혈을 뚫고 나아가는 해결사이자 전체를 아우르는 지휘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A가 A’, 혹은 A”로 구현되더라도 결국 프로젝트를 끝까지 끌고 가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 아닌지 고민했던 시기에 쓴 글이었다.

신트리공원 통합 실내놀이터(2025) ©Roh Kyung
김정은: 구보의 에세이를 복기하면서 나 역시 여러 질문이 떠올랐다. 좋은 만듦새가 최상의 가치는 아닐 텐데 궁극적으로 ‘느슨한 정교함’을 통해 지향하고, 도달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건축이 만들어지는 한국적 시스템 안에서 건축가가 정밀함을 추구하면서도, 모든 걸 다 통제하지 않고 어떤 오류를 수용하는 유연함을 가지는 태도는 건축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나? 한국적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태도인 건지, 아니면 우리 건축이 추구해야 하는 어떤 가치로 상승시킬 수 있는 키워드인지 고민하게 됐다. 어쩌면 이 답은 건축가가 아니라 비평가의 몫일 수도 있겠다.
홍지학: 이 논의가 세대론하고 관련되는 것 같다. 4.3 그룹처럼 앞 세대 건축가들에게 관념으로서 건축이 가진 의미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논의가 중요했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좀 자유로워진 것 같다. 우리 건축이 생산되는 이 불완전한 시스템 그 자체가 한국성이라고 한다면, 이 조건 아래서 어떻게 건축을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우리 세대한테 주어진 공통된 과제가 아닐까.
이중원: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느끼는 고민은 이런 것이다. 현실에서 작동할 수 없는 중정임을 알면서도 마스터플랜 위에 멋지게 관념적 중정을 그려 넣는 일과, 어르신들의 안전을 위해 목욕탕에 미끄럽지 않은 타일을 정성스레 시공하고 온돌을 깔아주는 일 사이의 간극 말이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나라면 현실에서 작동하는 후자의 ‘정교함’에 가치를 두고 싶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된 건축가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저기 부딪히고 치이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견디는 의지가 필요한 시대다. 요즘 건축대학 졸업생들의 취업 궤적을 보면 대형 설계회사에서 건설사로, 다시 금융사로 이동하는 사례가 많다.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는 태도와 자세를 건축가로서 보여주는 일이 우리의 역할이란 생각이 든다.

아우리움(2025) ©Roh Kyung
10년, 그다음
김정은: 지나온 길에 대해 들었으니 향후 계획도 묻고 싶다. 조직을 키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는데, 구보가 준비하고 있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홍지학: 현재 직원이 11명인데 곧 입사할 신규 직원까지 포함하면 13명이 된다. 요즘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왜 13~15명 규모의 아틀리에가 없는지 체감하고 있다. 아틀리에 체제로 프로젝트 퀄리티를 컨트롤하려면 소장이 일일이 다 챙겨야 하는데 수행할 수 있는 작업 수에도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다. 소장과 직접 소통하려면 프로젝트별로 3~5명 정도가 한 팀을 꾸리는 게 이상적이다. 하지만 작업 수를 늘린다면 소장과 스태프 사이에 중간 관리자를 두는 식으로 체계에도 변화가 따라야 한다. 규모가 커지는 만큼 상대하는 클라이언트의 성격도 바뀌게 될 텐데, 그게 제대로 유지되려면 20~30명 규모로 가야 한다. 지금 우리는 소장의 역할이 달라지는 30명 규모로 가느냐, 축소해서 소규모로 가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한편으로 현재 규모로 어떤 프로젝트까지 가능한지 실험해보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김정은: 15명 규모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홍지학: 아틀리에 방식으로 큰 규모의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것이다. 일종의 양다리인데, 작은 프로젝트와 법인이 하는 큰 규모 프로젝트 두 개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볼까 고민 중이다.

아우리움(2025) ©Roh Kyung
김정은: 조윤희는 조직을 더 키우고 싶다고 했는데 프로젝트의 성격이나 클라이언트, 소장의 역할 변화를 다 포함한 이야기인지 궁금하다.
조윤희: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하려면 인원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들어오는 작업을 거절하지 않고 하다 보니 일이 많아졌는데, 어느 시점이 되자 퀄리티 컨트롤이 잘 안 된다고 느꼈다. 현장을 쫓아다니면서 뒷수습하다 보니 그만큼의 시간을 설계에 투자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사실 조직의 규모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건강한 설계 집단을 만들어 이끌고 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즐겁고, 좋은 건축물을 만들어내며, 적절한 보상이 뒤따르는 건축 창작 집단을 만드는 게 꿈이다. 지금도 사무소 운영에 조언을 구할 때면 이소진 소장님께 연락하곤 하는데, 일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에 두고 결정하는 모습에 깊이 감명을 받는다. 나와는 다른 그릇이라는 걸 매번 느낀다.
홍지학: 이중원은 한국에 돌아와 개소하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힘이 되어준 선배였다. 이번 대담을 통해 작업에 대해 날카롭게 질문해주어 우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감사하다.
이중원: 구보의 10주년을 축하한다. 실은 앞으로의 10년을 더 기대한다.
이소진: 분명한 소신과 방향을 갖고 작업하다 보면 건축은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더라. 그게 가장 아름다운 결과인 것 같다. 구보의 건축도 발견되고 있지 않나. 건축가는 그저 기다리면 된다. 실은 발견돼도, 안 돼도 좋다. 내가 해보니 건축이란 게 그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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