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설계라는 전통적 영역을 넘어 건축적 사고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건축가들이 늘고 있다. 책과 전시를 넘어 유튜브를 통해 자신만의 시각으로 건축을 이야기하는 건축가들. 이번 인터뷰에서는 ‘서울은 이상한 도시’, ‘오피엠’, ‘하이퍼스팬드럴’을 만난다.

‘서울은 이상한 도시’를 이끄는 이윤석의 책상. 카메라와 마이크가 눈에 띈다.
도시의 변두리를 탐험하는 시선
‘서울은 이상한 도시’는 도시의 현상을 작가적인 시선으로 탐구하고, 이를 아카이브형 콘텐츠로 기록한다. 2018년부터 건축과 도시를 주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서울을 꾸준히 기록해왔고, 2019년에는 청년 주거의 현실과 공간 점유 방식을 아카이빙한 인터뷰 시리즈 ‘월세 아니면 전세’를 선보였으며, 이는 2024년 책으로 출간됐다. 서울은 이상한 도시를 이끌어가고 있는 이윤석은 2023년 VAA(Various Artists & Architects)를 설립해 건축과 예술을 넘나드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인터뷰 이윤석 x 20기 SPACE 학생기자 조성원, 전서영

이윤석의 남영동 오피스
학생기자: 영상 주제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나요?
이윤석(이): 저는 영상을 통해 시청자와 함께 미지의 공간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그래서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거창한 주제를 정하기보다는, 일상에서 떠오르는 작고 사소한 영감에서 출발하곤 해요. 샤워하다 떠오른 생각을 기록 해두는 ‘소재 노트’도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면 곳곳의 골프장 조명을 멀리서 보면 예쁜 초록색 조명처럼 보이지 않을지, 아파트 단지 안의 정체 모를 작은 비석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같은 궁금증들을 기록 해두는 편이에요. 심지어 서울 전역에 같은 글씨체로 부착 되어있던 ‘박근혜 사기 탄핵’이라는 문구를 적은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서 ‘내가 작성자다’라고 주장하는 영상을 올리면 그분이 먼저 연락을 해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 적 있어요. 이 중 영상으로 완성된 아이디어는 아직 없지만, 아이디어들을 평소에 정리해 두었다가 적절한 때가 왔을 때 꺼내서 작업을 시작해요.
영상을 구상한 이후 촬영은 대부분 즉흥적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준비된 대본 없이 현장에서 수집한 장면들을 모아놓고, 그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고민하는 거죠. 원하는 장면을 반드시 얻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손에 쥔 재료로 새로운 구성을 시도하는 재미가 있어요. 현재는 영상 속 모델링과 이미지뿐 아니라 음악까지 직접 제작하면서 여러 재료를 조합해 보고 있어요.
학생기자: 영상은 편집 방식에 따라 결과물이 크게 달라지잖아요. 편집 과정 중 가장 고려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이: 편집은 제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에요. 먼저 인터뷰 영상에서는 화자의 이야기가 매끄럽게 전달되도록 리듬을 조정해요. 제 편집을 거치면 누구나 유창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도록요. (웃음) 또, ‘네모난 화면 밖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를 고민해요. 평면적인 이미지를 피하기 위해 화면 속에 잡다한 요소들이 뒤섞이도록 의도적으로 조합해요. 조화롭고 매끈한 장면보다는 다소 낯설고 이상하게 보이도록 구성해 충돌하는 요소들 사이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어요.

‘30일간의 철거기록 : 청파동 굴뚝건물(대산빌딩)’ 영상 중
학생기자: 채널명에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콕 집어 지칭하고 있어요.
이: 2017년에 ‘서울은 이상한 도시’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서울’을 이름에 포함한 브랜드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는데, 점차 늘어나는 걸 보면서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론 부담을 느끼게 되었어요. 채널 이름에는 여전히 애착이 크지만, 동시에 ‘서울’이라는 타이틀을 계속 걸고 가도 될까 하는 고민이 생겼죠. 서울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지방 소멸의 시대에 저까지 서울에만 집중하는 게 맞을까 하는 의문도 들어요. 요즘은 오히려 서울이라는 틀을 벗어나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다른 장소나 현상에 시선을 두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만드는 영상들은 꼭 ‘서울’에 국한되거나 ‘서울성’을 강조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학생기자: 채널의 주 타겟은 건축 전공자인가요, 혹은 비전공자인가요?
이: 사실 특별히 타겟을 설정하지는 않고 있어요. 오히려 저 자신을 위해 영상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아이디어를 완전히 정리해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 과정의 상태를 저장해두는 아카이브처럼 활용하는 거죠. 그래서 채널은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공유 창구에 가까운 것 같아요.
초기에는 건축 비전공자에게 좀 더 편안하게 건축을 전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의도가 많이 줄어들었어요. 워낙 다양한 건축 콘텐츠가 생겨나기도 했고, 저 스스로는 특정한 대상을 의식하기보다는 ‘도시의 변방에서 벌어지는 작은 현상들’을 기록하며 그것의 의미를 탐색하는 데 관심이 많거든요.
학생기자: 건축가로서의 활동과 유튜브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활동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또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시면서 생긴 개인적 변화나 인식의 전환이 있을까요?
이: 건축은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자본의 제약 속에서 진행되기에 제 아이디어를 마음껏 드러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반면 영상은 자본과 시간이 비교적 적게 들기 때문에 훨씬 자유로운 실험이 가능해요. 건축 실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설계가 시작되고 완공되는 시점까지 긴 시간을 거치지만 완성의 기쁨을 누리는 건 찰나인 점을 아쉽게 여기곤 했어요. 일상에서 빠른 피드백을 받으며 건축의 즐거움을 더 많이 느끼고 싶은 마음에 유튜브를 시작한 거죠. 그래서 유튜브를 제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자, 건축의 연장선처럼 느끼고 있어요.
동시에 플랫폼이라는 맥락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의도한 의미와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수용자의 반응과 플랫폼의 유통 구조를 고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영상을 제작하면서 배웠어요.
학생기자: 텍스트 기반 매체와 영상 기반 매체에서 건축을 다루는 방식의 큰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저는 텍스트와 영상을 막론하고 창작 과정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매체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마다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봐요. 다만 수용자가 받아들이는 방식은 분명히 달라요. 예를 들어 텍스트는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무궁무진하지만, 영상은 시각적 자료를 제공하기 때문에 상상의 폭이 제한되기도 하죠.
그렇다고 해서 두 매체가 완전히 구분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사운드북이나 인터넷 방송처럼 텍스트와 영상의 경계가 모호한 형식들도 많고요. 결국 중요한 건 매체의 특성보다도 수용자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창작자와 어떤 호흡을 만들어 내는가인 것 같아요.
저 개인적으로는 설명 위주의 영상보다는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는 영상을 지향하기 때문에, 오히려 텍스트와 영상이 닮아 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반대로 유튜브 플랫폼에 최적화된 영상을 만드는 분들은 다르게 느끼실 수도 있겠죠.
학생기자: 유튜브에서 향후 다루어 보고 싶은 주제나 실험하고 싶은 형식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지금은 ‘집의 장례식’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과거 인테리어 작업을 함께했던 친구의 부모님이 지으신 30년 된 주택이 철거되면서, 그 과정을 기록하게 된 것이죠. 보통 건축물은 ‘지어지는 순간’만 기념되지만, 이 영상에서는 ‘사라지는 순간과 그 이후’를 담아내고 있어요. 지금까지 세 차례의 촬영을 마쳤고,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낼지 시간을 두고 고민하고 있어요.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