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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UE]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

사진
재희 신 MSc Arch ETH SIA
자료제공
건축사사무소 플로라앤파우나
진행
박지윤 기자

「SPACE(공간)」 2025년 2월호 (통권 687호)​


Pillar diagram of The Pillar Suit (2021)

 


신재희 재희 신 MSc Arch ETH SIA 대표, 이다미 건축사사무소 플로라앤파우나 대표 × 송률 수파 슈바이처 송 건축사무소 공동대표 

 

 

장식

송률(송): 이다미의 기둥 옷(2021)의 기둥은 장식적이다. 건축에서 장식은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아돌프 로스는 물론이고, 피터 아이젠만 또한 장식을 문화적인 것과 실용적인 것을 구분하는 지점에서 하나의 기호처럼 사용했지 건축의 본질이라 여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다미의 글에서 장식과 퀴어니스적 사고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고, 퀴어니스는 사회학적인 성 구분을 넘어 성정체성까지 포함하는 개념이자 근대적 이분법의 개념에 저항하거나 초월하는 존재의 상태로 인간 본성을 아주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 체계가 이다미의 건축 및 장식의 개념을 아우르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다미에게 건축은 단일한 것이 아닌 복합적인 것이며 장식 또한 기존의 문법과는 다른 위계를 갖고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이다미(이): 나에게 장식을 정의하는 것은 큰 숙제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엄격하게 규정하면서 의미를 축소시키고 싶지 않기도 하다. 다만 장식의 이미지가 일으키는 반응 혹은 장식의 반응적인 이미지에 관심이 있다. 지역, 종교 기반의 이미지들로 구체적인 상징을 만들어내는 장식이 있다면, 지금 시대의 이미지들은 더욱 복합적으로 이뤄지기에 이 지점에서 가능한 장식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계속 여러 시도들을 해보고 있다. 

 

송: 이미지와 건축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 이미지들과 시대적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만한 사고를 연결 짓고, 건축에서 담아낼 수 있는 속성인지 고려하는 것 같다. 나의 장식에는 현시대에 대한 반항과 지향이 공존하는데 산업적인 선들에는 반항하면서도 개인적인 이미지가 생산되고 수집되는 측면은 지향하면서 이를 건축의 장식에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렇지만 1대 1의 비유 혹은 의미와 결과물 간의 명확한 연결 짓기는 필연적으로 오류를 동반할 수밖에 없기에 내 건축에서 장식은 뜬금없거나, 과장되거나, 때로는 상반된 의미의 것들을 섞는 방식으로 쓰이면서 명확한 규정을 피해간다. 그러면서 장식의 의미와 결과물이 모두 지저분해지기도 하기에 내 작업이 하는 이야기가 잘 전달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고 싶은 의지가 없기에 오히려 우연 혹은 불가해 보이기를 원한다. 주변에서 관찰하는 개인적인 이미지가 건축에 숨어 들어가기를 바라기도 한다. 이를 테면, 동식물로부터 온 모티프, 비생산적이고 비이성적이고 기복적인 심상들이 그 속에 들어가 작동하기를 바란다. 

 

송: 서울공예박물관 공모작인 공예와 건축(2016)에서의 돌 기둥 또한 구조적인 기둥은 아닌 것 같았다. 여기서 기둥처럼 보이는 돌은 장식으로 해석하면 되는가? 

 

이: 공예와 건축의 돌에는 여러 레퍼런스가 존재한다. 발레리오 올지아티와 리나 보 바르디의 작업은 물론 돌고래, 기존 대지에 있던 애매하게 다듬어진 나무 등이다. 구름에서 형상을 찾아내듯이 다른 건축물뿐 아니라 동식물, 사물 등의 레퍼런스들에서 착안한 선을 시공하기 너무 어렵지 않은 방식으로 갖고 왔다. 덧붙여진 것이라는 장식에 대한 통념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동시에 구조와 장식, 필요와 덧댐, 남성과 여성의 대치 구조로 장식을 보는 것과 산업적인 인테리어로써의 장식을 의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으로 외모 혹은 껍데기에 신경 쓰는 한국인의 경향과 이를 건축으로 다룬다는 차원에서의 장식 또한 염두한다. 이러한 인식이 한 작업에 모두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기둥 옷에서는 골조를 제외한 나머지를 정리하면서 새로운 것을 덧붙일 때 시공이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 어떠한 이미지를 가진 부피감을 넣었다. 기둥과 가벽은 구조의 역할을 하는지, 안 하는지로 쉽게 구분되기도 하는데, 나는 구조 기둥과 빈 기둥에 기둥도 아니고 가벽도 아닌 것 같은 애매한 볼륨, 시야를 애매하게 가리는 볼륨을 끼운다는 생각으로 기둥 옷의 형상을 결정했다. 기둥 옷은 다른 내 작업들과 비교해 선의 기원이 다층적이지는 않다. 다만, 기둥 배열이 규칙적인 학교 건물 안 끝에 위치하게 되면서 기둥 배열이 살짝 바뀌고 공간의 단위 감각이 흐뜨려진 공간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기둥을 건축물에 내재한, 공간을 단위로 구분짓는 시스템이 아닌 주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송: 결국 기둥에 옷을 입혔다. 옷 또한 신체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는데 기둥 옷에서의 옷은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신재희(신): 모더니즘 방식을 따르는, 구조의 기능을 하는 기둥과는 다른 역할을 하는 기둥들이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있어 왔다. 내부가 빈 기둥 틀 외부에 석고와 물감을 섞어 대리석처럼 보이도록 한 스터코 마블 기둥이 그 예다. 당시의 목조건축은 자연석 기둥 혹은 내부가 석고로 찬 기둥의 하중을 지지할 수 없었다. 우리가 모더니즘 이후의 건축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하중을 지지하는 기둥이 아닌 다른 역할을 하는 기둥을 이질적으로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한편, 중세 시대에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말하는 직관과 구별되는 기억을 중시했다. 칠을 하는 행위, 축하를 하는 행위 등 기억과 연관한 행위를 중요하게 여겼다. 나의 장식 또한 기억과 연관한 행위에 가깝다. 이다미가 말한 장식이 기존의 생산적인 선과 구별되고 효율적이지 않은 어떤 것과 연결된다는 측면에서 내 장식과 느슨하게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송: 모너니즘 시기에 대부분의 다른 예술은 기능을 탈피하고 있었는데 건축은 기능을 중시하며 건축 행위를 합리화시켰다. 기능이 없으면 비생산적인 것처럼 여겨졌다. 이다미와 신재희 작업을 이러한 사고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기둥 장식과 농가주택의 꽃장식처럼, 심상, 상징, 시간 등과 같은 요소들을 드러내면서 공간적인 경험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새로운 사고를 하게 만든다. 예쁘다, 예쁘지 않다 혹은 덧댄 것이다, 덧댄 것이 아니다라는 차원에서 논의되는 장식이 아닌 기존의 사고가 ‘통념’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새롭게 보게 하는 차원의 장식이다. 장식이라는 언어로 치환되고 있지만, 기존의 장식과는 더 큰 범주 혹은 다른 범주의 장식을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20세기 때부터 쓰여 그 의미가 고착된 장식이라는 언어와는 구별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곡물창고 

 

 

시간

박지윤(박): 신재희는 바닥면은 물론 공간 안쪽의 벽면이 모두 보이도록 도면을 그린다. 이것은 장식을 포함한 주변부의 것들과 공간을 연결하기 위한 의지인가? 

 

신: 중세 시대의 건축가들이 그린 도면의 방식이기도 한데, 나는 2차원적인 평면과 3차원적인 공간을 함께 그려내면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요소들이 하나의 맥락에서 조율되고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탐구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건물에 있던 각기 다른 크기의 창, 건축가의 시선에서 못생겨 보이기도 하는 요소들 속에서 원칙을 찾고 이를 모두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것들을 더해 통합적 리듬을 만든다. 곡물창고가 보이는 농가의 작업실(2024~)은 기존 농가의 키치한 색감의 내부 목재 마감을 존중하면서 공간을 기품 있게 보일 수 있는 색 팔레트를 고민했다. 어떤 건축가들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기존의 색을 배제하거나 대조되는 색을 쓰기도 한다. 반면 문화재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본래의 색 그대로 보존하는 것에 집착한다. 이 두 갈래 사이에서 목소리를 내면서도 모두를 배제하지 않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다중 저자라는 방법론이 나왔다. 

 

박: 곡물창고가 보이는 농가의 작업실은 방에서 오래된 곡물창고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감각, 그리고 『자기만의 방』(1929)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감각을 주요하게 고려한 것이라 보면 되는가? 

 

신: 맞다. 일단 3~4일 정도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작업실이 필요했다. 1층 농가의 집 거실과 방, 복도의 창을 통해 곡물창고를 볼 수 있지만 작업실로 들어가면 지붕으로 인해 그곳을 볼 수 없기에 작업실에 곡물창고의 감각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곡물창고의 외장재 나무판에 장식의 중심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어떤 각도로 배치되는지 스터디했다. 일관된 규칙을 가지고 정확하게 나눠지는 모던한 건축과 다르게 스스로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다. 스위스에서는 레퍼런스를 참조점 삼아 건축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고 그렇기에 레퍼런스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활용하는 방식에 익숙하기도 하다. 

 

송: 신재희는 한국에서 학부를 나왔지만, 유럽에서 공부를 이어갔고 실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의 작업 방식을 많이 따르고 있을 것이다. 발레리오 올지아티는 다른 작업을 참조하는 자국의 방식을 꼬집는 차원에서 『비참조적 건축』(2019)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지 않나. 

 

신: 나는 참조적 건축보다는 과거의 것에서부터 진화하는 건축에 관심이 있다. 기존의 것을 배제하는 것이 아닌 받아들이면서 지금의 시대에 맞는 이야기들로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송: 자신이 작업한 공간뿐 아니라 머무는 공간의 실측도 많이 하는 것 같다. 

 

신: 주로 기존 건물을 다루는 작업을 많이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유럽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건축을 짓는 행위 자체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최근 들어 역사 및 이론 학자들 사이에서 여성들이 여행 혹은 일상 속에서 풍경과 건축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글을 썼던 행위, 혹은 집과 정원을 가꾸고 공간을 주체적으로 사용하고 돌본 행위를 건축의 범주에 넣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시간을 보내고 관찰하는 여성적인 건축 행위를 건축 서사에 더하는 것, 그 의미를 이해하고 싶었던 행위이기도 하다. 

 

송: 나 또한 문의 돌출된 부분과 같은 디테일까지 실측하곤 하는데 이것이 여성 건축가이기 때문인지는 확신이 서질 않더라. 한편, 하이디 부허는 자신이 살던 집에 왁스를 칠하고 천을 덮은 다음 그 천을 뜯어내 다시 공간으로 완성했다. 물질보다 시간을 중시하는 작업이자 흔적들을 재구성한 작업이다. 곡물창고가 보이는 농가의 작업실 또한 물질보다 시간을 중시하고 있다. 

 

 

여성성

송: 퀴어, 장애인, 여성, 남성 등 인간은 이미 사회적으로 다양하게 정의되어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가능한 건축적 논의로는 각 존재들이 지금처럼 일률적인 방식이 아니라 어떻게 평등한 방식으로 작업에 드러나는가일 것이다. 평등한 사고, 체계, 구축 과정을 기반으로 한다면 더 다양하고 독특한 결과물이 생산될 것이다. 여성성은 단편적으로 약한 것으로 취급받기도 했고, 내 세대 때는 건축이라는 업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성 자체를 숨기다 보니 여성 감각의 특이성이 작업물에 드러나기 어려웠던 거 같다. 이다미의 사무소명인 플로라앤파우나가 동식물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처럼, 더 나아가 여성성을 작업에도 드러낸다면 건축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다. 기득권적인 힘으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이: 건축을 하면서 여성, 남성을 구분 짓지는 않지만, 사회가 그렇듯 건축과 건축계 또한 가부장주의가 기저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건축은 순수하지 않은 것인데, 기존의 건축들이 납작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기둥 옷의 장식을 통념의 장식과 차이를 둔 이유도 이러한 인식에 기반한 것이며, 이 인식에는 여성주의적인 시선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송: 가부장주의에서 나오는 문제들은 아주 복합적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양한 문제들을 일괄적으로 해결하려는 것 자체가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인데, 이를 따르다 보니 결국 정상이라는 기준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정상, 비정상과 같은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동물, 사물을 포함한 비인간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퀴어, 장애인, 여성, 남성에 대한 이해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비인간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 비인간을 말하는 것이 자칫 요즘 유행하는 사고에 편승하는 것처럼 치부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하는 말이다. 한편, 신재희가 앞서 기존 건물에서 원칙을 찾는다고 했지만 정녕 원칙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든다. 건축가의 본능으로 무언가를 찾아내 연결하고 규칙을 만들어내기 위한 행위였을 텐데, 이는 건축이 생산과 연관되기 때문에 수반된 태도였을 것이다. 현재 리사이클링(recycling), 리유즈(reuse)와 같은 말이 나오고 있지만 나는 건축가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윤리적인 태도는 리퓨즈(refuse), 즉 짓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건축가들이 만들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신: 짓는 건축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지난 10년간 지어질 건축을 위한 경험을 쌓았고, 물리적으로 실재화된 건축은 동시에 여러 켜들의 레이어로 읽힐 수 있다. 「우먼 라이팅 아키텍처」에서 에디터로 임하는 이유는 동시대 문제와 연대하는 건축을 짓고 싶기 때문이고, 그 실마리를 안테나처럼 흡수하기 위함이다. 

 

이: 나 또한 만드는 것에 의미를 갖고 있다. 대상과 물질의 관계를 연결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미 수많은 건물들이 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만들어야 하냐는 질문에는, 수적인 과잉은 있을지 몰라도 질적인 면에서는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다. 건축은 물리적으로 새로운 것이기도 하지만, 문화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이기도 하다. 미술 비평가 니콜라 브리오가 미술이 인식에 관여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 것처럼, 나는 건축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여전히,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다른 몸들의 건축’이라는 스튜디오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모듈러 맨이 아니라 다른 건축의 주인을 상상해보자는 주제를 걸었다. 백인 남성이 아닌 다른 인간, 혹은 인간이 아닌 주체를 건축의 주인으로 상정하고 설계하도록 요청했다. 학생들은 이론적으로는 낯설어도 행위로는 자연스레 받아들였는데 이러한 생각의 변화들은 스쳐가는 유행이 아니라 부드럽고 넓게 바뀌는 사회적인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는 건축가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적인 변화에 건축적으로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중성

박: 여성적 혹은 소수자적인 감각은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를 감각하고, 사고하는 것이다. 중심은 하나일 수 있지만 주변부는 하나일 수가 없고, 그런 면에서 주변부는 항상 중심보다 수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으며 사실상 무한에 가깝다. 이다미와 신재희는 이러한 주변부적 사고를 끊임없이 개진하려 노력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확장적 사고로 건축을 구축하려는 것 같다. 다층적인 사고로 구축된 결과물이기에 하나의 특성이나 언어로 규정하기 어렵다. 이다미의 심상과 연결되는 장식, 신재희의 평면에서 그려지는 벽면, 다중 저자, 진화하는 건축 등도 주변부를 건축하기 위한 의지에 속할 것이다. 

 

송: 주변부를 건축하는 것을 단편적인 예시, 그리고 단일한 건축 언어, 태도 등으로 규정짓는 것은 무리다. 여성적 사고로부터 시작되는 주변부의 특성은 복합적이고, 하나로 집약될 수 없는 다양성을 갖기 때문에 어떤 의미나 갈래로 특정지을 수 없다. 이러한 다중성을 오히려 특성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신: 원하는 것들, 하고 있는 것들, 관심사들을 늘어놓으며 이야기하는데 결론이 없는, 지금과 같은 대담이 사실 여성성과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식물의 뿌리들이 땅속에서 다른 식물의 뿌리들과 연결되는 것처럼 알 수는 없지만 여러 많은 주제들이 파생되고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큰 생각에서부터 작은 생각으로 나아가는 단계적인 사고가 아니다. 건축 교육에서 또한 이러한 단계적인 사고, 특정한 것을 맞다고 결론짓는 태도를 가르쳐 왔는데, 이로 인해 복잡다단한 감정과 생각이 억압되는 것 같다. 여성성, 여성성을 품은 건축은 화자도 단일한 언어로 설명하기를 난해해하고 청자 또한 굉장한 에너지와 호기심을 필요로 할 것 같기는 하다. 

 

이: 그럼에도 이 대담에 결론을 내야 한다면 연결의 감각을 유지하려 하는 노력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건축 작업을 작업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건축의 전후 과정과 다양한 저자 등을 이리저리 돌아보고 돌려보면서 작업에 얽힌 다중적인 측면을 고려하려 하고, 또 이를 그대로 작업 속에 남겨두는 것이다. 

 

송: 그러니까 20세기까지는 한순간을 위해 디자인했다면 이제는 시간을 디자인▼1해야 한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건물은 하나의 언어로 축약될 수 없는 다중적인 것이 될 것이다. 꼭 우리의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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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률은 「미로 1: 참조와 인용」에서 “건축은 하나의 대상이 아닌 모든 것의 관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건축은 건물디자인이 아닌 사회디자인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건축은 기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향을 미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조직화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닌 가능성을 주기 위하여 존재해야 한다. 무엇을 제공하기보다는 가능하도록 하기 위하여 존재해야 한다. 건축은 결코 하나의 결과가 아닌, 항상 진행 중인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재정의를 통해서만 우리는 건축을 단지 공간 디자인이 아닌 “시간 디자인”(Time Design)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모든 디자인은 처음부터 변화, 적응, 변형, 확장, 축소, 유지, 사라짐, 변신, 융합, 불확정성, 유연함, 유동성, 미완성, 진행 중, 지속성, 일시성, 개선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을 전제로 개념화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월간 「SPACE(공간)」 687호(2025년 02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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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률
송률은 2001년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건축가로서 학업과 실무를 했다. 2001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수파 슈바이처 송 건축사무소를 공동설립했으며, 2003년 ‘에른스트-마이-인스티튜션’과 ‘에른스트-마이-뮤지움’의 창립원으로서 활동했다. 2005년 수파 슈바이처 송 서울지부를 설립하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에서 2008년까지 설계스튜디오 튜터로 재직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건축과 겸임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주택과 공공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격월간 잡지 「SUPTEXT」의 발행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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