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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기념 인터뷰 3: 다섯 번째 커미셔너, 조성룡

진행
김정은 편집장

「SPACE(공간)」 2025년 3월호 (통권 688호) 

 

「SPACE(공간)」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가 계획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건축전 아카이브 연구’의 일환으로 『1996~2025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아카이브 북』(가제)을 준비하고 있다. 2025년 5월에 출간될 이 책에는 한국관 초창기 전시의 커미셔너 인터뷰가 수록될 예정이다. 출간에 앞서 이 인터뷰를 「SPACE」에 연속 기획으로 선공개한다. 이를 통해 베니스비엔날레를 중심으로 한국 건축 전시사의 초창기 서사를 재구성하고, 3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관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Venice Biennale Interview​]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기념 인터뷰

1 초대 커미셔너, 강석원

2 세 번째 커미셔너, 김종성

3 다섯 번째 커미셔너, 조성룡

4 여섯 번째 커미셔너, 승효상 

 

일시 2025년 1월 14일 14:00~16:00

장소 예술가의 집 라운지 

인터뷰 조성룡 조성룡도시건축 대표 × 김정은 편집장 

참석 여선희, 유지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방유경, 김보경 기자 

기록 김혜린 기자 

자료수집 김보경 기자

 

 

2025년 1월 14일 예술가의 집 라운지에서 인터뷰 중인 조성룡 

  

2006 베니스비엔날레 제10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 조성룡

한국 건축계가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이하 건축전)에 국가관으로 참여한 지 10년 되던 해인 2006년에는 조성룡이 커미셔너를 맡았다. 1996년 제6회 강석원(「SPACE(공간)」 686호 참고), 2000년 제7회 김석철, 2002년 제8회 김종성(「SPACE」 687호 참고), 2004년 제9회 정기용에 이어, 그는 다섯 번째 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다. 당시는 조성룡이 4.3그룹(1990년대 초), 서울건축학교(1996~2004), 한국예술종합학교(2005~2008) 등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했고, 아시아선수촌 및 기념공원(1983~1986), 의재미술관(2001), 선유도공원(2002), 소마미술관(2002~2004)과 파주출판도시 및 헤이리아트밸리의 작업 등 왕성하게 건축 작업을 펼치던 때다. 지난 1월,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조성룡은 기억의 오류를 걱정하면서도, 세계무대에 서게 된 한국 건축계의 정황을 1980~1990년대부터 짚어나갔다. 그렇게 도달한 2006년 한국관 전시는 한국 건축가 다섯 명이 서울로 대변되는 한국의 도시 상황을 각각 관찰하고 해석한 결과물을 선보였다. 전시 제목인 ‘퍼머앤스턴트(perma n stant)’는 퍼머넌트(permanent)와 인스턴트(instant)를 합성한 용어로, 600년 도시 서울이 쌓아온 역사적인 장소와 더불어 급격히 변하고 있는 현재 도시 속 모습들을 동시에 살핀다. 커미셔너 조성룡은 김승회, 김헌, 최욱, 신혜원과 김찬중을 참여작가로 선정하고, 이들이 워킹그룹으로 땅과 도시에 대한 가치와 질문을 공유하며 주제를 심화시켜 나가도록 했다. 참여작가들은 남산에서 시작되어 명동에 이르는 지형과 북촌, 이촌동과 반포를 중심으로 한 아파트촌, 한강과 동작동 국립묘지, 테헤란로를 논의 대상으로 선정하고 건축을 매개로 현대 세계의 이슈를 성찰했다. 

 

 

 

 

 

2006 베니스비엔날레 제10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도록 표지

2006 베니스비엔날레 제10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 포스터

 

​한국의 상황과 건축전시 경험 


김정은: 2006년 1월, 제10회 건축전(2006. 9. 12.~11. 7.) 한국관 커미셔너로 선정되셨습니다. 다섯 번째 커미셔너이자 제8회 건축전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으셨던 터라 이전 커미셔너 분들과는 상황이 좀 달랐을 것 같습니다.  

 

조성룡: 한국이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 참가한 초창기에 한국의 사정을 잘 알면서 유럽에 연결고리를 가진 사람이 프랑스에서 공부한 강석원(1938~) 선생이 유일했어요. 당시 유럽에서 벌어지는 행사들은, 세계 건축계를 대표하는 국제건축가연맹(UIA)▼1과 관련되기 마련이니, 결국 UIA와 베니스비엔날레가 관계가 있는 거죠. UIA는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르 코르뷔지에(1887~1965)와 그가 중심이 되었던 근대국제회의(CIAM)와 관련이 있어요. UIA의 본부도 프랑스 파리에 있고, 이 단체의 주 멤버들이 프랑스인이다 보니 주로 소통하는 언어도 불어고요. 여러분들이 건축 역사를 공부하면 많은 건축 선언이 불어로 돼 있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문화적으로 프랑스하고 그렇게 가깝지가 않잖아요. 우리나라는 대부분이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와서 상대적으로 유럽에 있는 건축가들이나 단체와 거리가 있죠. 그런데 UIA에 들어가게 되고, 아마 돌아가신 김석철(1943~2016) 선생의 영향이 클 거예요. 그 당시는 그런 역할을 할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강석원 선생이 베니스비엔날레의 첫 번째 커미셔너로도 선정된 거죠. 프랑스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에서 일했던 김중업(1922~1988) 선생님 다음에 강석원 선생님으로 넘어간 거죠.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건축전시는 이렇게 다른 국가관들과는 좀 다른 상황에서 시작된 거예요. 

 

김정은: 선생님은 2004년 커미셔너였던 정기용(1945~2011) 선생님과 가깝기도 하셨고요,▼2 이종호(1957~2014,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최문규(1960~, 연세대학교 교수), 안상수 등 4.3그룹, 서울건축학교(sa) 등에서 직간접적으로 함께 활동하신 분들이 2006년 전시에 여러 역할로 참여하셨어요. 그래서 당시 선생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신 활동이나 전시 경험이 베니스비엔날레 커미셔너 역할을 수행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조성룡: 요즘은 전시회가 많잖아요. 학생들도 전시회를 많이 하고. 그런데 그 무렵에는 건축전시라는 게 거의 없는 거예요. 국내에서 열렸던 건축전시는 기껏해야 협회 내부에서 여는 회원들 전시회지요. 예전에 ‘국전’이라고 있었거든요. 그게 국가 전시(national exhibition)예요.▼3 처음에는 그렇게 국가 단위에서 1년에 한 번씩 치러졌는데, 그것도 독자적인 건축전시라기보다는 건축이 전시회라는 명목을 가진 게 그거밖에 없는 거죠. 그러한 국전도 한동안 진행되다가 없어지고, 지금은 이어진 게 없죠. 그런데 1980년대에는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열리죠. (국가적 단위의 활동이) 거의 없던 상태에서 갑자기 국제적인 이벤트들이 생겼던 거죠. 

 

김정은: 1981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하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르기까지, 단순히 경기장이나 관련 시설을 건설하고 도시를 재정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건축계에서는 우리 건축을 세계에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하던 때였단 말씀이시죠.▼4 

 

조성룡: 제가 처음으로 일본에 가서 전시를 한 게 1989년이에요. 

 

김정은: 도쿄 갤러리 마에서 ‘신세대 한국건축 3인전’으로 기획된 〈김기석, 조성룡, 김인철: 마당의 사상〉(1989. 5. 8.~6. 7.)▼5 말씀하시는 거죠? 

 

 

2006 베니스비엔날레 제10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오프닝 (왼쪽부터) 김헌, 김찬중, 조성룡, 최욱, 신혜원, 김승회 

 

조성룡: 맞아요. 외국에 나가서 한 첫 번째 건축전시회예요. 근데 그 전시는 공적으로 한 게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서 한 것이죠. 토토(TOTO)라고 욕실 위생기구를 만드는 기업에서 운영하는 출판사와 갤러리에서 기획한 거죠. 그곳에서 중요한 전시를 많이 기획했지만, 비엔날레처럼 국가적인 행사와는 굉장히 다른 영역에서 출발했어요. 토토에서 운영하는 갤러리 마의 전시회가 1985년에 처음 시작했는데, 프랭크 게리(1985), 렘 콜하스(1988), 베르나르 추미(1989), 딜러+스코피디오(1992), 다니엘 리베스킨트(1994), 산티아고 칼라트라바(1994), 장 누벨(1995), 렌조 피아노(1998) 등 지금 보면 세계적인 현역들이 참여해서 국제적으로 주목받았죠. 위치는 도쿄시 중심가 빌딩 안에 있지만, 전시장은 한 요만해요. 사기업에서 운영하는 거니까. 그런데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 기획자, 광고하는 사람, 사진가들을 다 동원해요. 퀄리티를 엄청 올리는 거죠. 그래서 굉장히 소규모 전시회인데도 불구하고, 참여자들이 국제적으로 많이 알려졌어요. 

 

김정은: 『4.3그룹 구술집』(2014)에서는 이 전시에 참여하며, 건축가의 표현 방식이나 태도, 개념적 드로잉이나 모형, 비디오 같은 매체 등에 관해 학습하셨고, 그것이 간접적으로 4.3그룹에 전해졌다고도 회고하셨어요. 

 

“조성룡: 원래 건축가협회가 60센티 60센티에다 딱, 모형 일체 없고, 그런 걸 전시회라고 알고 있었는데, 모형, 비디오, 드로잉. 또 드로잉이란 말 처음 들어봤어요. […] 처음에 드로잉이 뭘 의미하나 […] 어떻게 보면 남에게 자기 걸 보여주는 건축가가 표현하는 방식, 태도 이런 것들을 학습했다고 보는 거예요. 그것이 결국 간접적으로 4.3그룹에 전해져서 정보가 나가니까 그때부터 슬슬 해보기 시작한 거예요.” 

_ 목천건축아카이브, 『4.3그룹 구술집』, 마티, 2014, 112쪽, 115쪽. 

 

조성룡: 갤러리 마에서는 동영상 비디오를 가져오라고 했어요. 당시 우리는 환등기와 필름을 쓰던 때인데, 비디오 카메라가 어디 있겠어요. 그런 시대에 일본에는 건축과 디자인을 전시하는 갤러리가 생기고, 한국 건축가가 처음으로 소규모지만 초대돼서 간 거예요. 당시 초청된 나, 김인철, 김기석 모두 젊은 건축가라 잘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김수근, 김중업 이후 세대 건축가들을 찾는 과정에서 한국 대표로 일본에 초청이 되니 일본에서 화제가 됐었죠. 이런 일들이 역사니까 잘 아카이빙되어야 할텐데…. 그 출발부터 정리를 못 해둔 게 안타까워요. 김정은: 갤러리 마 전시 이후, 4.3그룹 전시회 <이 시대 우리의 건축>(1992)의 경험도 우리의 건축전시 경향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시나요? 조성룡: 4.3그룹 전시회는 우리 내부에서 한 사적인 전시죠. 지금은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단위에서 어떤 시대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그 경험이 나중에 어떻게 연결되거나 혹은 사라졌는지 이야기하려는 거에요. 2006년 당시 나는 한국 건축가로서 ‘우리가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어렵겠지만 역할을 할 수 있는 대로 해보자.’ 마음먹었던 거죠. 

 

​한국관에 들어서면 다섯 작가들이 공동작업으로 다섯 지역에 대한 모형과 영상을 전시해 전시의 구심점을 이루며, 그 다섯 지역을 미세한 시선으로 담은 김승회의 작품 ‘도시의 성좌와 표층의 시간’과 만난다. 

 

 

2006 제10회 건축전

 

김정은: 총감독인 리처드 버뎃(Richard Burdett)은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SE) 교수로 ‘도시: 인간, 사회, 건축’이라는 주제를 내놨습니다. 건축적인 주제에서 도시ㆍ사회적인 주제로 전환된 해였는데요, 당시 총감독과 주제에 관한 소통이 있으셨나요? 

 

조성룡: 한국은 대부분 미국에서 공부하고 왔지만, 버뎃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사회에서 이론적으로 영향을 준 도시학자라서 아무래도 미국 건축계와 관계가 덜하니, 한국에서 리처드 버뎃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을 거예요. 물론 나도 잘 몰랐고. 다만 당시 도시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회자되고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우리도 관심을 가져야 된다’라고 생각했지요. 

 

김정은: 한편 선생님께서는 2002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는 참여작가로 ‘파주출판단지 상가블록’ 계획안을 전시하셨어요. 

 

조성룡: 내 작업 중에 이전에 광주의 의재미술관도 있고, 선유도공원도 있는데 왜 상가를 들고 갔겠어요? 김정은: 김종성 선생님이 10년 내에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는 전제하에 비무장지대와 가까운 파주의 여러 작업을 전시 작품으로 선정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조성룡: 그건 의미가 있는 거에요. 어떤 건축가 개인의 (우수한) 작업이라기보다 국가관이니만큼, ‘앞으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보면 맞는 생각이신 거죠. 

 

김정은: 1996년과 2002년 전시에서는 국가적으로 중요했던 프로젝트나 주목받는 건축가들의 기존 계획안을 주제에 맞춰 선별해 전시했다면, 정기용 선생님이 커미셔너를 맡으셨던 2004년에는 주제를 정하고 젊은 건축가들에게 그에 맞춰 작업을 생산하도록 했어요. 주제, 참여작가나 기획자 구성, 전시연출 등 여러모로 그 이전 한국관 전시와 성격을 달리하며 2006년 한국관 전시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짐작됩니다. 선생님께서 커미셔너로 선정되신 후 바로 이종호 교수님과 최문규 교수님을 부커미셔너(cocommissioner) 로 선정하고, 참여작가도 선정하십니다. 정기용 선생님이 커미셔너를 하실 때도 김봉렬 교수님과 김성홍 교수님이 부커미셔너(sub-commissioner)란 이름으로 참여하시기도 하셨죠. 부커미셔너란 2004년 이전에는 없던 역할이에요. 

 

조성룡: 우리가 시대적 상황에 따라 흘러온 것이니, 이런 일들을 지속적으로 해야 언젠가는 빛을 발하게 되겠죠. 결국 다음 세대로 이러한 과제가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부커미셔너 제도를 만든 거예요. 다음 세대가 본인들 문제로 끌고 가면서 그다음 세대로 연결하고. 2년마다 지속적으로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돌아가신 정기용 선생과 이종호 선생이 한국 건축계에서 존재감이 굉장히 크네요. 그분들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했던 역할들이 그냥 단발로 그친 것 같아서 안타깝네요. 커미셔너가 뭐 대단한 자리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추동을 해서 개인적이든 주변을 활용해서 하나의 큰 흐름으로 연결되도록 해야 하죠. 결국은 사람이 하는 거잖아요.

 

(하략)

 

_

1 국제건축가연맹(UIA)은 1948년 6월 28일 스위스 로잔에서 ‘Comité permanent international des Architectes’와 ‘Réunion International des Architectes’가 합병한 후 설립된다. 파리에 본부를 둔 이 조직은 UNESCO, UN-Habitat, 세계보건기구, ECOSOC, UNIDO, WTO를 포함한 대부분의 유엔 기관에서 유일한 글로벌 건축 조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은 1963년 UIA에 가입했으며, 1999년 개최된 제20차 UIA 총회까지 한국에서 UIA의 공식 상대 기관은 한국건축가협회가 유일했다. 

 

2 조성룡은 정기용을 1992년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건미준) 활동을 하면서 처음 만났다고 기억한다. 정기용은 조성룡, 민현식, 승효상, 김영섭 등과 함께 서울건축학교(sa) 활동을 했다. 목천건축아카이브, 『4.3그룹 구술집』, 마티, 2014, 139, 235~236쪽 참고. 

 

3 1949년 창설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약칭 국전(國展)에 1955년 건축부가 신설되어 작품이 전시되었다. 1982년부터 국전이 폐지되면서 ‘대한민국건축대전’이란 이름으로 한국건축가협회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대한건축학회, 대한건축사협회가 후원하고 있다. 대한민국건축대전은 건축계의 주요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으며, 벽면을 중심으로 패널과 모형이 전시되었다. 패널과 모형으로 이루어진 전시 형식은 건축을 회화와 조각과 같은 예술 영역으로 위치시키고자 했던 근대 서양의 건축전시 형식이 국내에 도입되어 국내 건축전 초창기부터 기본적인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일반 공모전과 올해의 건축가 100인 국제전(초대작가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윤중연, 「1990년대 전반 건축전을 통해 본 한국건축담론의 전환기: 4.3그룹 건축전 “이 시대 우리의 건축”(1992)과 분당 신도시 주택 설계 전시회 “한국의 주거문화 1994”(1993)를 중심으로」, 숭실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4, 12쪽 참고. 

 

4 “‘88년까지 앞으로 7년 동안, 이제는 좋아도 싫어도 한국은 세계에 노출되게 되어 있다…. 언제 어느 구석에 그러한 주시의 눈길이 닿아도 우리는 부끄럽지 않은 한국을 보일 수 있어야 될 것이다. 올림픽을 유치했다는 것은 한국이 스스로 세계의 ‘쇼윈도’ 속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1981년 10월 2일 「동아일보」의 기사대로, 서울 시민 모두가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에 맞추어 모든 것을 준비하는 것이어야 했다.” 박정현, ‘올림픽 파사드: 체면, 가면, 입면’,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 국립현대미술관, 2021, 24쪽; “강건희: 우리의 건축이 88년 올림픽에 초점을 맞춰서 당분간 좇아가겠지만, 종합적인 무언가를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우리의 건축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풍토가 되었으면 합니다.” 윤승중・강건희・김원・김홍식・이범재, ‘좌담: 70년대 한국현대건축의 상황’, 「SPACE(공간)」 174호(1981년 12월호), 23쪽. 

 

5 “한국의 현대건축은 일본에서는 의외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김중업, 김수근 없이 3세대 건축가들이 확실히 성장하고 있다. 이 전시회는 그 3세대의 리더로 보이는 3명(김기석, 조성룡, 김인철)의 합동 전시다. 한국에서도 역시 문화의 고유성과 전통적인 것을 현대의 생활공간 속에서 어떻게 표현하는지 묻고 있다. 한국 현대건축의 새로운 숨결을 느끼게 해주는 동시에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주는 건축전이다.” 갤러리 마 웹사이트(https://jp.toto.com/gallerma/hist/ ja/exhibi/kim-jo.htm))의 전시 아카이브에 소개된 당시 전시 설명 

 

월간 「SPACE(공간)」 688호(2025년 03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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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룡
조성룡은 1944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인하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우일건축연구소에 근무하다가 1975년 우원건축연구소를 설립하며 독립했고, 1983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 선수촌 및 기념공원 국제설계공모에서 당선했다. 주요 작업으로 인하대학교 학생회관, 양재 287.3, 의재미술관, 소마미술관, 한강 선유도공원, 이응노의 집-생가 기념관, 서울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등이 있다. 서울시 올해의 건축가상(2014),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2001, 2013), 서울시건축상(1986, 2003), 한국건축가협회상(1992, 2003)과 김수근문화상(2003) 등을 수상했다. 1989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마당의 사상. 신세대의 한국건축 3인전〉(갤러리 마)에 참여한 이래 4.3 그룹 건축전 〈이 시대 우리의 건축>(서울, 1991), 유럽 순회 단체전 〈S(e)oulsacpe(서울스케이프)〉,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광주 어반폴리(Urban Folly)〉, 서울건축문화제 〈2024 올해의 건축가 조성룡전〉(2015) 등 국내외 여러 건축 전시회에 참가하였다. 2002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에 작가로 참여했고 2006년에는 같은 전시회의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았다. 서울건축학교 교장(1996~2003)을 역임했으며, 성균관대학교 성균건축도시설계원 초빙 교수(2009~2020)로 강의했다. 2020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올해의 건축문화인상을 수상했고 현재 도시건축집단/조성룡도시건축(ubac)의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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