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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학생기자] No.684 2024년 11월호 리뷰

19기 SPACE 학생기자
진행
박지윤 기자



공공 건축의 무력함

서정민(이화여자대학교)

 

2024년 노들섬 공모에 당선된 헤더윅 스튜디오(대표 토마스 헤더윅)소리 풍경에는 부정적인 인식이 존재한다. 문제가 없던 기존 공공 건축물을 철거한 채 명확한 비전 없이 서울의 랜드마크를 짓고자 한 과정에 사람들은 손찌검을 날린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향한 손찌검일까.

전 노들섬 공간기획자의 강연에서 나는 뒤바뀐 노들섬 정책에 관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공간기획자는 정권이 바뀐 뒤에 노들섬 사업에 손을 떼게 되었고,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어버린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우연한 자리에서 헤더윅을 만나게 되었고, 그와 노들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공 건축의 근본적인 가치를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공공 건축은 사람을 끌어들일 힘이 필요하다.” 사람은 아름답고 새로운 공간으로 가고 싶어 하기에, 아름다운 공간으로써 사람을 끌어들일 힘이 존재한다면 공공 건축의 가치는 존재한다는 의미다. 공간기획자는소리 풍경또한 그 힘을 지녔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그것의 가치를 인정했다.

그러나 건축은 낡고 늙는다. 그 새롭고 아름다움의 가치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장소의 힘은 공간 기획과 운영으로부터 나온다. 즉 공공 건축은 물리적인 변화만으로는 유지되지 못한다. 물리적인 것 이외에도 공공 건축의 존재 유지를 위한 사회적인 노력이 요구되지만, 현실에서는 장애물이 많다. 정책의 좋고 나쁨을 떠나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는 현상과 운영 주체의 불확실성 같은 현실은 공공 건축의 장기적 가치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소리 풍경을 향한 비난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향한 것이 아닐까 싶다. 공공 위탁 운영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정권 변화에 따라 사업이 희미해질 가능성. 공공 건축은 기존 행정 시스템이 지니는 고질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이미 비슷한 사례들이 존재함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또다시 지어지는 건축은 사회적 불안감을 조성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가끔은 내 일이 아닌 데도 무력감을 느낀다.

 

‘재생된 폐허가 말해주는 것

최종인(고려대학교)

‘좋은 공공 문화 공간이란 무엇인가?’ SPACE(공간) 686호에 실린 심소미의 에세이는 이와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를 곱씹으며 글을 읽던 중, 프랑스 리옹의 옛 기메 박물관에 관한 이야기에서 잠시 생각이 멈췄다. ‘긴 시간 끝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유휴 공간이라는 내러티브는 많은 도시재생 사례에서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당장 해당 에세이 뒤에 템펠호프 공원과 대비되어 실린 송현동 부지의 경우가 그렇고, 서울에 남은 최후의, 그리고 최대의 유휴 부지인 용산공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이 오랫동안 잊힌 채 방치되어 있던폐허가 대상이라면, 그 공간에 대한 경험은 단순한 해방감 그 이상으로 치닫는다. 2022년 리옹 비엔날레에서 폐허가 돼 버린 옛 기메 박물관을 새로운 전시 공간으로 맞이했던 관람객들이 느꼈을 감정에 대해 추측해 본다. 최소한의 보수 작업만을 거쳐 개방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 공간이 폐허로써 쌓아온 시간의 결과물을 온전히 목격했을 것이다. 15년의 세월 동안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었던 그 공간이 일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위에 새로운 전시와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겹쳐지면서 일종의긍정적인 낯섦을 느끼지 않았을까? 어쩌면리미널 스페이스의 정반대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재생된 폐허가 가지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도시와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압되어 있던 것들을 다시 현실로 소환시킨다는 점이다. 모든 도시는 항상 표면적인보기 좋음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적인 개입의 영향이 크지만, ‘보기 좋음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것들을 애써 외면하려는 우리의 성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보기 좋지 않은것들은 존재함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리고, 결국 이들은 우리 인식의 바깥으로 쫓겨나 철저하게 은폐된다. 그리고 그보기 좋지 않은것들에 엮여 있던 시간과 공동의 기억도 같이 무관심의 늪으로 추락한다. ‘재생된 폐허는 그렇게 가라 앉은 것들을 다시 건져 내고, 동시에 자신의 위치를 완전히 역전시키면서 변화를 만든다. ‘재생된 폐허’, 특히 공공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폐허는보기 좋음의 영역으로 치환된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우리의 눈에 띄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폐허를 찾아와 문화를 소비한다. 그러나재생된 폐허는 덧붙여진보기 좋은것들의 틈새로보기 좋지 않았던시절의 흔적을 끊임없이 내비친다. 그렇기에 억눌려 있던 시간과 기억은 변신의 틈바구니 속에서 소외되지 않고 살아남아 온전히 존재를 인정받는다. 한편 그러한 흔적을 목격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배제해왔던 것들 또한 부정할 수 없는실재였음을 깨달으며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결과적으로 폐허는 정당하게 역사화 될 권리를 획득하면서도, 과거에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현실 위에서 미래를 꿈꾼다.

부천아트벙커B39(이하 B39)는 이러한재생된 폐허의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다. ‘재생된 폐허에 대한 나의 가치관은 B39, 그리고 이를 설계한 김광수(스튜디오 케이웍스 대표)가 의도했던 바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SPACE 610호 참고) 무엇보다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에 소재해 있다는 것의 영향 또한 부정할 수 없다. B39의 전신인 삼정동 쓰레기 소각장은 부천 북부에 위치해 있는데, 이 주변은 공장 지대가 밀집해 있는, 도시의보이기 싫은지역이다. 따라서 이 곳은 부천의 대표적인명소인 중동신도시 바로 위에 인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나를 포함한 많은 시민들의 뇌리 속에서 지워져 있었다. B39는 그렇게 은폐되어 있던 존재를 과감하게 드러내어 바로 위치시키고, 여기에 얽힌 집단 저항의 기억까지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불완전한 인식 속에서 살아왔던 나에게 B39에서의 경험은 상당한 충격이었고, 도시에서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한 가지 우려되는 부분은, ‘재생된 폐허가 품은 특유의 정서가 자칫 잘못하면 과도한 미학화로 변질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폐허가 그저 시각적인에스테틱으로만 소비될 경우, 건축가가 의도했던 것은 퇴색된 채 껍데기만 남는다. 이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재생된 폐허자체보다도 그 안에서 다뤄지는 프로그램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3 11, B39에서는 <소사공단 : 기계를 짓는 공장>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열렸다. 부천 소사본동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삼양중기공장의 철거 과정과 공장 노동자들을 기록화 한 작업들이 전시됐다. 살아남은 폐허가 개발압력에 휩쓸려 사라진 다른 폐허의 마지막 기억을 담아냈다는 사실은, 지켜내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안타까움에 숙연함을 더한다. 그와 더불어재생된 폐허가 미래에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도시의 이면들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그 속의 폐허가 갖는 이야기를 부각하여, 적어도 섣부른 철거만은 면할 수 있게 하는 것 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수많은 폐허들의 억울한 운명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다면, ‘재생된 폐허또한 유의미한본연의 존재 의미를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즈음에도 나는 옛 삼양중기 부지 앞을 지날 때마다, 마치혼령처럼 어른거리는 공장의 모습에서, 형용할 수 없는 죄책감과 함께 그러한 개인적인 희망을 되새기곤 한다.

 

 

송현동의 미래, 결정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김유신(서울과학기술대학교)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송현동 부지는 오랫동안 비워져 있다가송현 열린 공원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되며, 공공 공간의 가능성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특정 건축물의 건립 부지로 결정되면서, 공공성을 내세운 개발 논리 속에서 다시 한 번 닫힐 위기에 놓였다. 서울시는 부지를 매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화 시설 건립 부지로 지정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유치를 위해 경쟁을 벌였으며, 다른 부지가 선택될 가능성도 존재했다. 이에 따라 지역 간 균형 발전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송현동이 지닌 공간적 가치를 충분히 검토하기보다는, 빠른 결정과 상징적 효과에 더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공공성을 실현하기보다는 행정적 성과를 부각하기 위한, 이른바치적 쌓기를 위한 성급한 결정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필자는 모 설계사무소에서 이번 국제설계공모에 참여하며 가까이서 이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공모 자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존재하기에, 더욱 땅에 대한 책임 있는 해석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침서에 제안된 내용을 살펴보면, 대규모 건축이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당선작과 수상작이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한 차례 닫혔다가 열린 땅이 가진 상징성을 충분히 반영했는지, 그리고 열린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 더 유연한 대안이 검토될 여지는 없었는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모 과정에서 심사 역시 조형적 어휘와 시각적 완성도에 초점을 맞춘 경향이 두드러졌다. 땅의 맥락적 해석과 개방성을 유지하는 대안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베를린 템펠호프 공원의 사례는 도심 속 대규모 부지를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개발 압력과 공공성 간의 충돌 속에서도 열린 토론을 거쳐 공원으로 남았으며,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며 새로운 도시 문화를 이끌어냈다. 반면 송현동 부지는 이러한 사회적 합의의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못한 채, 공공 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이 다시 위협받고 있다.

이제 송현동 부지가 시민의 공간으로서 어떤 가치를 이어갈지는 불확실하다. 도심에 남은 마지막 대규모 미개발지를 어떻게 활용할지, 그리고 공공 건축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과제가 남아 있다. 이미 결정된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대신, 이 땅의 역사성과 문화적 맥락, 그리고 열린 공간으로서 시민들이 체감한 경험을 바탕으로 더 깊이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시민의 공간은 시민들이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목소리를 내느냐에 따라 지켜질 수 있다. 송현동 부지가 베를린 템펠호프 공원처럼 시민들의 공간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개발지로 남을 것인지, 그것은 이제 우리 모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익명의 도시 속 공동체의 기억을 이어가는 도시 공간

김민예(인하대학교)

목동신시가지아파트 단지는 1980년대 당시 심각한 사회 문제였던 도시 내 주택 부족에 대한 해결책으로써 개발되었다. 페리(C.A.Perry) 근린주구 개념을 도입하고, 김수근 등 당시 최고 건축가들이 참여한 개발 계획에는 5개의 공원(목마공원, 파리공원, 오목공원, 양천공원, 산트리공원)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 마스터플랜 가장 중앙에 위치하는 사방 150m 정방형 형태의 공원이 오목공원이다.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를 이야기할 때익명성을 빼놓고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익명성을 통해 자유롭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익명성이 가지는 단점 또한 존재한다. 익명성의 어두운 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도시공간은 한국의 아파트 단지로, 폐쇄적인 단지 영역을 구축하여 익명성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또한, 사람들은 비슷하게 생긴 아파트 단지에 살며 그 안에서 외부 익명의 타인에게 경계를 긋는다. 이로 인해 도시 공간의 분리와 사회적 분열, 아파트 단지 내 층간소음으로 인한 주민 간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대규모 단지 중앙에 선형으로 배치된 다섯 개 공원으로 인해 목동신시가지아파트 단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리뷰를 쓴다. 더 나아가 이용률이 저조했던 오목공원을 리노베이션 한다는 양천구의 판단이 고맙기도 하다. 가구, 건축, 조경 등을 포함하는 섬세하고 통합적인 접근을 통해 익명의 도시에서 개인 또는 공동체 형태의 이용자들이 도시의 물리적 공간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이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필자는 오목공원에 등장한 회랑과 1인용 의자는, 개인과 느슨한 공동체 사이 무수한 가능성의 상징으로 다가왔다고 표현한다.

공원을도시의 공공라운지’, 공원의 핵심 개념은어반 퍼블릭 라운지로 정의하며 오목공원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붙박이 벤치가 아니라 자유롭게 옮겨서 앉을 수 있는” 1인용 의자, “공원을 관통하는 모든 동선을 연결하고 여러 활동의 중심 공간이 되는 회랑, “언제든 프로그램과 실내 공간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실내·외 공간, “기존에 비해 바닥을 높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잔디마당은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성을 설명하고 있다.

2019년 도시건축가 김진애는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에서 익명성 속에서 도시의 무한한 자유가 커지고, 더 자유롭고 정의롭게 관계 맺기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익명성의 긍정적인 측면을질척이지 않으면서도 체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라고 전한다. “개인의 서사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중략) 개개인의 기억이 모여 공동의 기억이 되고 역사가 된다우리의 일상은 건축이 만들어내는 도시 공간에 존재한다. 대도시일수록 익명성이 커지며, 익명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도시공간이 필요하다. 익명성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강조되는 시대에서도 공동체 속의 나가 존재하는 공간 즉, 모두가 함께 사는 도시에서 공동체의 기억을 이어가는 역할이 요구되는 것이다. 새로워진 오목공원은 이런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공간이라 볼 수 있으며, 나도 필자와 함께 익명의 도시에서오목공원이 공동체의 경험을 어떻게 확장하며 이어갈지 함께 지켜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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