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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시장 아트게이트, 공공 프로젝트의 절차적 정당성을 묻다

자료제공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진행
김정은 편집장

공공 프로젝트의 수명은 누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 또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조성된 공공건축이나 공공미술의 저작권은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가질까?

 

통인시장 아트게이트는 서울시 문화와예술이 함께하는 전통시장 조성사업​의 일환에서 기존 통인시장 다섯 개 출입구를 새롭게 조성한 공공 프로젝트다. 문화예술전문단체인 aec비빗펌이 주관하고 황두진건축사사무소가 설계했으며, 종로구 예산으로 집행하여 2012년 4월 완공됐다. 특히 아트게이트 동측 구조물은 한옥의 구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시도로 그 의미를 인정받아 2012년 제1회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1 완공 후 13년 가량 경과한 이 아트게이트는 최근 서울특별시 민생노동국 상권활성화과가 발주한 ​디자인혁신 전통시장 조성 디자인 및 설계 공모 [통인시장]​가 진행되며 존치 여부가 불투명해졌다.▼2 이에 아트게이트를 존치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건축가 황두진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통인시장 아트게이트의 저작권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출발해 우리 사회에서 공공 프로젝트가 기획-생산-운영-변화되며 역사가 쌓이는 방식에 관한 논의로 확장됐다. 

 

인터뷰 황두진(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 × 김정은 편집장​​

 

김정은(김): 통인시장 아트게이트는 어떻게 설계하게 되었나?

황두진(황): 통인시장 프로젝트는 서울시에서 추진한 문화와 예술이 함께하는 전통시장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황두진건축사사무소(이하 황두진건축)가 참여하기 이전부터 aec비빗펌(대표 윤현옥)이 종로구청으로부터 이 사업의 진행을 의뢰받아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중 아케이드 동서측 단부에 주출입구 2개소, 측면의 골목길 연결부위에 부출입구 5개소를 조성하는 사업이 아트게이트 프로젝트였다. 

aec비빗펌은 사업 구상 과정 중에 시장 상인과 시민의 의견을 들었고, 그중에 지역 특성에 맞는 디자인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다만 순수한 한옥이 아닌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한옥 경험이 있으면서도 현대적 디자인이 가능한 건축가들을 만났다. 최종적으로 당시 스웨덴 스톡홀름의 동아시아 박물관에 한국실을 설계하고 있었던 황두진건축이 선정되었다. 2011년 9월 27일에 계약을 맺고 작업에 착수했다. 황두진건축에서는 차선주, 임근영, 최유일, 전소현, 데이비드 마틴 등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동측 아트게이트 (사진: 박영채)

 

서측 아트게이트 (사진: 박영채)

 

김: 아트게이트의 설계-시공-운영 단계에서 시장 상인들이나 시민들의 의견은 어떻게 반영됐고, 완공 이후 반응은 어떠했나?

황: 이미 그 전 단계에서 aec비빗펌은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장 입구 스케치를 모으고, 상인 및 시민의 의견을 취합하는 등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aec비빗펌이 작성한 통인시장 시각환경 개선사업: 통인시장의 발견(2011년 8월 22일)과 통인시장의 발견 세부실행계획서(2011년 9월 30일) 등의 자료가 황두진건축에 전달됐다. 즉 아트게이트 프로젝트는 상당한 준비 작업이 선행되어 있었다. 이후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 

2011년 11월 10일 aec비빗펌 PT
2011년 11월 11일 시장상인회 PT
2011년 11월 14일 통인시장 내에 계획안 도면 및 모형 등 전시 설치
2011년 11월 15일 종로구청 건축과, 복지환경과, 도시디자인과, 관광산업과 등 PT 
2011년 11월 21일 김봉렬(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1차 미관심의(종로구청)
2011년 11월 22일 조병수(BCHO 파트너스 대표)의 2차 미관심의(BCHO 파트너스)
2011년 11월 24일 종로구청장 PT(종로구청)  

 

완공을 전후해 황두진건축이 자체적으로 동영상을 제작했다. 당시 상인들과의 영상 인터뷰에 의하면, “와, 이런 발상이. 기와 없는 밝은 한옥, 반갑네요!”, “통인시장이 명소가 되겠네!”, “시장의 상징물이 될 것 같아요. 통인시장 파이팅!”, “동네 분위기가 살겠네요!” 등과 같은 반응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황두진건축의 제안으로 동측 아트게이트 인도 바닥에 통인시장에 대한 시민과 상인들의 염원을 담은 문구를 새겨넣는 참여 프로그램을 진행, 많은 호응이 있었다. 지금도 잘 남아 있다.   

이후 전문가 심사와 시민 투표를 병행한 심사 과정을 거쳐 2012년 11월 9일 제1회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이를 기념하는 명패가 지금도 동측 아트게이트 기둥에 붙어있다. 이후 2019년 『루이 비통 트래블 북 서울』에 그 삽화가 실리기도 했다. 

 

인근 초등학교 학생의 스케치 (제공: 황두진건축)

 

통인시장 내 계획안 전시 (제공: 황두진건축) 

 

상인들 반응 (제공: 황두진건축)

 

동측 아트게이트에 부착된 공공디자인 대상 명패 (제공: 황두진건축) 

 

김: 황두진건축은 한옥을 여러 채 설계했지만▼3 통인시장 아트게이트의 경우는 복잡한 전통시장의 출입구이자 인도에 설치된 구조물이어서 여러 도전적인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황: 기존 아케이드는 2005년에 건축사사무소 아크21이 설계한 것인데, 단면이 고딕식의 첨두아치였다. 아트게이트를 이와 조화시키기 위해 점진적으로 각도가 변하는 창살을 설계했다. 기술적으로는 화재를 대비한 소방 배관, 소방차 진입 동선 확보 등을 고려해야 했다. 인도의 기둥이 하나인 것도 소방차의 측면 진입을 가능케 하기 위한 조치였다. 또한 이 일대의 지목 중에 ‘천’이 많은 것을 보아도 짐작할 수 있듯이 지하수 문제, 각종 지장물 문제 등을 검토해서 반영해야 했다.  

지붕에 기와가 아닌 유리를 씌운 것에는, 눈과 비는 막되 햇빛은 통과시키기 위한 기능적 이유와 목구조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려는 미학적 의도가 공존하고 있었다. 이는 미스 반 데어 로에가 1921년에 제시한 ​유리 마천루 계획​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때마침 독일 슈투트가르트 대학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하고 토이펠 엔지니어링 컨설턴트(Teuffel Engineering Consultant), 크니퍼스 헬빅 어드밴스드 엔지니어링(Knippers Helbig Advanced Engineering) 등 독일의 세계적인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구조 엔지니어 황경주 박사(현 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가 귀국한 지 얼마 안 되는 상황이었다. 2011년 10월 18일 계약을 맺고 구조 설계를 의뢰했다.  

황두진건축은 목철합성 구조를 시도했다. 전통 한식 목구조를 응용하되 날렵한 시각적 비례와 공공 구조물로서의 안전 등을 고려한 의도였다. 철판으로 기본 구조를 구성하고 그 양옆에 볼록한 단면의 목재를 접합, 철판의 횡좌굴을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곡선의 부재를 이용하여 한옥을 연상케 하면서도 배의 구조를 닮은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었다. 공공 프로젝트라서 시공은 입찰에 의해 (주)테라씨엔이(대표 박창길)가 선정됐다.

 

기존 아케이드와의 연결을 보여주는 모형 (사진: 돌로레스 후안) 

 

동측 아트게이트 구조 분해도 (제공: 황두진건축) 

 

김: 2월 18일 국민신문고에 아트게이트 유지관리 촉구 민원신청을 하기도 했는데, 현재 아트게이트는 어떤 상태인가?

황: 관리 상태가 부실하다.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가 쌓였고 조명도 들어오지 않는다. 한때는 햇빛을 막는다며 유리지붕과 아케이드 수직 단면에 불투명 시트가 발라지기도 했다. 회사 차원에서 몇 차례 문제제기를 했는데, 관리의 주체가 불명확했다. 그러다가 2018년 9월 차량충돌로 기둥 하부가 파손되는 사고가 있었다. 황두진건축과 황경주 교수 등 원 설계팀이 종로구청 일자리경제과의 요청으로 현장을 조사했다. 다행히 철골 본 구조체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원상복구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종로구청에 재차 제안하여 인근 상인들을 설득, 유리지붕의 불투명시트를 벗겨내고 그 대신 투명 햇빛 차단 필름을 부착했다. 

  

차량 충돌로 인한 피해 (제공: 황두진건축) 

 

김: 지난 2월 18일 ​디자인혁신 전통시장 조성 디자인 및 설계 공모 [통인시장]​(이하 통인시장 디자인혁신 설계공모) 심사위원 제안 메일을 받으면서 공모지침에 ‘아트게이트의 존치 및 철거에 대해서 자유롭게 제안해달라’는 문구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심사위원직을 고사했다고 들었다. 어떤 이유로 거절했나?

황: 심사위원에 추천되었으니 수락 여부를 밝혀달라는 당시 공모운영 지원사 측의 이메일을 받았다. 혹시 아트게이트에 대한 내용이 있냐고 물었더니 위의 해당 문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만약 ‘아트게이트는 존치하고 이와 조화롭게 설계할 것’이라는 문구였으면 심사를 안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철거의 길을 열어둔 상태에서 원 설계자가 심사위원직을 수락하면 이는 ‘이익의 상충’에 해당하는,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곧 바로 메일을 보내 심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공모전 관련자들의 ‘공적 감수성’에 대해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김: 이후 2월 21일에는 서울시청 민생노동국과 종로구청 지역경제과를 방문하고 의견서를 발송했다. 그 요지는 무엇이었으며, 서울시와 종로구로부터 공식적인 답변을 받았는가?

황: 두 부서를 방문하고 난 이후 장기전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복귀하자마자 현재의 상황을 정리하고 요구 사항 등을 적은 문건을 작성하여 관련 부서로 보냈다. 9년 전인 2016년부터 4년 반 동안 서촌의 대표적 공원인 통의동 마을마당을 살리기 위한 노력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정리된 문건의 힘을 깨달았다. 이 문건에 대한 서면 답변은 없었다. 이후 저작권 전문가인 법률사무소 리버티의 이지은 대표 변호사에게 의뢰하여 내용증명을 보냈는데, 이에 대한 답변은 왔으나 원론적 수준이었다. 대체로 공공기관은 한 번 정한 입장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이다. 변화를 위해서는 매우 강력하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김: 법률대리인을 통해 서울시와 종로구에 발송한 내용증명을 보면, 저작권 관련 법에서 ‘동일성유지권’▼4 을 들어 ​작품의 변경은 작가만이 할 수 있으므로​ 통인시장 디자인혁신 설계공모의 공모지침에서 ​아트게이트를 존치​한다고 문구를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일각에서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공공시설물에 대해 발주처의 권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이러한 질문은 우리 사회와 건축계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이슈를 드러낸다.

황: 동의한다. 이번 아트게이트 존치 노력은 스스로의 작품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그 이상의 목표를 갖고 있다. 즉, 현재 상황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일도 물론 잘 해결되어야 하겠지만, 앞으로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관련기관들도 사실상 경험과 이해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결국 그들도 부실한 제도와 부족한 사회적 인식의 피해자일 것이다. 원칙은 간단하다. 철거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건립에 준하는 정도의 과정을 적용해야 한다. 충분한 의견수렴이나 논의를 거치지 않고 특정 부서나 이해 집단이 이런 문제를 결정할 수는 없다.  

 

김: 공공 프로젝트를 변형하거나 철거하려면 그에 따른 적절한 절차나 기준이 필요할 텐데, 우리 사회는 그에 대한 합의가 부족한 것 같다. 이번 통인시장 디자인혁신 설계공모에서는 그 변형 혹은 철거에 관한 결정 여부를 심사위원이나 참여자들에게 맡긴 셈이다. 그런데 이것을 뒤집어보면, 이번 공모의 당선작도 향후 유사한 방식으로 사라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공공 프로젝트의 주인이 누구이며,▼5 공공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주체들의 권한과 책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황: 공모전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지침에서 철거의 길을 열어주었으니 그러한 안을 제출하는 참가자도 있을 수 있고, 또 그 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심사위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결국 본인의 작품 역시 언젠가 같은 운명에 놓일 수도 있다는 것에 선제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겨누는 칼춤을 추는 것이다. 이 대목이 가장 우려스럽고 불쾌하다. 결국 민간인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 아닌가. 공모전을 준비하는 기관 측에서 마땅히 파악하고, 판단하고, 관련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민간인들끼리 마찰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문제는 공모전 기획 단계부터 논의를 거쳐 성문화되어 있어야 한다. 유지관리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하는 기관이나 단체에는 공적 자금의 지원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유지관리 상태 역시 평가 기준에 포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황두진건축은 향후 황두진건축과 종로구청, 상인회가 아트게이트 유지관리를 위한 상호협약을 맺을 의사를 공개한 상태다. 거기에 이번 공모전의 당선자도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공공 프로젝트에 필수적인 제도라고 생각하며, 이번 일이 그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 각국의 건축저작물에 관련한 법을 살펴보면, 독일의 경우 건축물의 증축은 항상 저작권자의 승낙이 있어야 하며, 미국의 경우 역사ㆍ미관적으로 가치를 가진 건축저작물은 다른 법에 의해 보호받는다.▼6 법적으로 공작물인 아트게이트처럼 일종의 공공창작품이나 공공건축물과 같은 공공 프로젝트에서 우리의 경우 어떤 기준이 필요할까?

황: 테크니컬한 법적 기준이 현 시점에서 문제의 핵심은 아닌 듯하다. 인권을 논하는 자리에서 ‘사람은 결국 탄소 덩어리 아닌가?’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당한 절차를 통해 설계를 의뢰받아 진행했고, 공공기관에서 주는 권위 있는 상까지 받았는데 여전히 저작권이 문제라면, 설계자가 에밀레종 설화에서처럼 쇳물에 몸이라도 던져야 하는가? 문제는 결국 문화의 창발과 역사의 누적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공적 절차다. 일정 기준 이상의 사회적 평가를 받는 건축 저작물은 그에 상응하는 법적 보호를 받을 필요가 분명히 있다. 그런 문화와 제도가 미리 있었으면 힐튼호텔을 비롯한 많은 건축 자산의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다.▼7

또 한 가지 고육지책은 일종의 야외 건축 박물관이다. 어쩔 수 없이 철거되는 건물들을 위한 우아한 공동묘지 같은 장소다. 일본의 경우 고도성장기에 철거되는 많은 근대 건축물을 옮겨놓은 메이지무라(明治村)라는 곳이 나고야 근처에 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제국호텔 로비도 여기에 옮겨서 보존하고 있다. 도쿄 근처에도 이와 유사하나 규모는 좀 작은 에도도쿄건축정원(江戸東京たてもの園)이라는 곳이 있다. 원래 자리에서 원래 용도로 계속 사용되는 것이 건축의 가장 행복한 삶이지만, 정 어쩔 수 없을 때는 이런 대안도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일본 건축이 뛰어난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고 반 시게루가 했다는 대답, 즉 ‘우리에게는 축적의 역사가 있다’는 말이 새삼 실감나는 곳이다.  

 

메이지 무라 (사진: 돌로레스 후안)

 

김: 통의동에 거주하면서 일도 하고 있으니 통인시장과 아트게이트를 바라보는 심정이 더욱 남다를 것 같다. 

황: 그렇다. 걸어서 5분도 안 걸린다. 종종 가서 장도 보고, 옷도 고치고, 밥도 먹는 곳이다. 내가 아는 최고의 육곳간도 통인시장에 있다. 내 이름이 적힌 공공디자인 대상 명패 앞을 지나가면 기분이 묘하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아트게이트 프로젝트 담당 직원도 당시 신혼으로 이 근처에 살면서 현장 감리를 다녔다. 이후 유학을 다녀와 다시 이 동네로 복귀, 여전히 통인시장의 단골이다. 건축가이면서 시민의 입장이 겹쳐 있는 셈이다. 이른바 ‘동네 건축가’의 모습이랄까.▼8 

 

김: 앞으로 아트게이트와 관련해서 어떤 일들을 할 예정인가? 

황: 어찌 보면 행복한 고민을 하고있는 것이다. 종로구의 역사가 깊어 지킬 것이 많아서 생기는 일이니까. 앞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상황이 일어날 것인데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인간은 새것을 좋아하는 본능이 있지만 동시에 오래된 것에서 위안을 얻고 삶의 균형을 잡고자 하는 욕구 또한 생겨나고 그런 것이 바로 성숙이다. 삶에 변수만 있고 상수가 없으면 괴로운데 건축이 오래되면 그 상수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런 지역에서 일할 때는 그에 상응하는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 아니면 어디 허허벌판, 신개발지로 가던가.

다만 지금의 나로서는 한가할 여유가 없다. 열심히 지속적으로 ‘발화(發話)’할 수밖에. 9년 전 통의동 마을마당 때 어느 정도 체화된 경험도 있다. 그 경험을 담아 책 『공원 사수 대작전』(2019)도 썼는데, 이번 일도 어떻게든 마무리되면 결국 책을 써야 할 것 같다. 아마도 모든 사람이 실명으로 나오지 않을까. 같은 동네에 사는 한강 작가는 혹시 이런 주제에 대해 관심이 없으려나. (웃음)

 

김: 만약 아트게이트를 존치하라는 의견이 반영되어 공모지침이 수정된다면, 어떤 역할을 할 생각인가?

황: 공모전의 결과 아트게이트가 존치된다면 일단 그런 판단을 한 당선자와 통인시장에서 술 한잔하고, (웃음) 나의 경험을 나누고, 아트게이트와 당선자의 안이 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문명 세계의 건축가들이 할 일이라고 믿는다. 세상이 그렇게 낭만적일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건축가는 긍정적으로 앞날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김: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건축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황: 개인적으로는 아카이빙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있다. 회사에 남아 있는 자료, 당시 참여했던 직원들의 개인 기록 등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금의 나로서는 버겁다. 다만 동료 선후배 건축가들이 이 상황에 자신을 대입해 볼 것을 호소한다. 

이 모든 것의 바탕에 깔려 있는 가치는 역시 불특정 다수 사람들의 사랑이다. 통의동 마을마당 때도 공원에 대한 시민들의 사랑이 없다면 공원을 구하기 위한 모든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통인시장 인스타그램에 보면 시장 로고 자체가 동측 아트게이트다. 외국인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 올린다. 동네를 지나, 국경을 넘어 싹 터온 이 글로벌한 사랑이 앞으로 계속 커가기를 바란다.  

 

아트게이트를 모티브로 한 통인시장 로고 (출처: 통인시장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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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케이드의 구조물은 한옥의 구조를 응용하면서 조선 왕실의 새로운 건축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좋은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사평 중 일부. 『2012 공공디자인 국제심포지엄 / 수상작 작품집』, 2012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사무국, 2012.

 

2. ‘디자인혁신 전통시장 조성 디자인 및 설계 공모’에 관해서는 PROJECT SEOUL을 참고(https://project.seoul.go.kr/main/viewMain.do). 본 기사가 작성된 시점에 공모 관련 질의접수가 진행됐다(2025년 3월 10일부터 11일까지). ‘문의’에는 아트게이트의 존치 및 철거와 관련된 저작권과 사회적 합의 절차, 발주처의 입장 등을 묻는 질문이 접수되어 있다. 공모 홈페이지에 게시된  일정에 따르면 주최측은 2025년 3월 14일 17:00까지 질의에 대한 답변을 공모 홈페이지에 일괄 게재할 예정이다.  

 

3. 황두진건축은 그동안 한옥을 현대건축의 일부로 보고 그 진화를 모색해왔다. 북촌의 주거용 한옥에서 시작해, 경기도 이천의 휘닉스스프링스 컨트리클럽 한옥에서 전통 한옥 목구조에 유리지붕을 얹는 시도를 했고 가벼운 구조를 가진 도시형 복층한옥에 대한 이론적 실험도 진행했다. 통인시장 프로젝트는 이러한 노력이 공공영역에서 구현되었다는 의미가 있다. 북촌의 한옥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고. 황두진, 『한옥이 돌아왔다』, 공간사, 2006. 

 

4. 「저작권법」 제13조(동일성유지권)에 따르면 “저작자는 그의 저작물의 내용ᆞ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를 가진다.” 다만 “건축물의 증축ᆞ개축 그 밖의 변형”은 이의(異義)할 수 없으나, 다만 본질적인 내용의 변경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생활과 밀접한 실용적 저작물인 건축은 음악ᆞ영상 등 그 저작권의 중요성이 널리 알려진 다른 저작물들과는 창작ㆍ양도ㆍ전시 등 이용 방식이 다르다. 건축물로 구현됨과 동시에 공중에 항상 공개되는 건축물만의 전시 방식과 건축설계 위탁자의 저작재산권에 대한 인식 결여, 그리고 건축물을 저작물로 인식하지 않는 사회 전반적 인식 결여로 건축 저작권 침해는 지속되고 있다.” 서수정ㆍ유제연, 『알기 쉬운 건축설계 저작권』, 건축도시공간연구소, 2017, 2쪽.

 

5. 「SPACE(공간)」 684호(2024년 11월호) 특집 ‘아이코닉 아키텍처의 성공과 실패 사이: 도시의 문화 공간 생산에 관한 성찰’에서는 ‘오피니언’ 란을 통해 ‘공공 문화 공간의 생산과 향유 주체는 누구인가?’, ‘공공 문화 공간에 민의는 어떻게 반영될 수 있는가?’ 등의 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

 

6. 미국의 경우 건축설계 저작물이 건축물로서 체화(시공)된 경우, 건축물의 소유자는 저작자와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변형ㆍ변경ㆍ파괴할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301조에 따라 역사ㆍ미관적으로 가치를 가진 건축저작물은 다른 법에 의해 보호받는다. 서수정ㆍ유제연, 앞의 책, 15~17쪽. 

 

7. 힐튼호텔(밀레니엄 힐튼 서울)에 관해서는 「SPACE」 652호(2022년 3월호) 특집 ‘건축유산이 철거에 직면할 때’, 654호(2022년 5월호) 리포트 ‘힐튼호텔의 미래를 논하다’ 등을 참고.

 

8. 「SPACE」 679호(2024년 6월호) 특집 ‘건축가의 아틀리에’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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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진
황두진은 서울대학교와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김종성, 김태수 등의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힌 후 2000년에 황두진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서울 구도심에서 시작하여 점차 자신의 영역을 넓혀왔다. 주요 작품으로는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 원앤원 63.5, 노스테라스, 시마크호텔 호안재, 스웨덴 스톡홀름 동아시아박물관 한국실, 춘원당, 바람의 언덕 등이 있다. 『한옥이 돌아왔다』, 『무지개떡 건축』, 『가장 도시적인 삶』 등 건축과 도시에 관한 책들을 써왔으며 국내외에서 광범위하게 강의하고 전시했다.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 문화유산상(공동), 서울시 건축상, 김종성 건축상,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 올해의 한옥 대상(대상 2회), 건축역사학회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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