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9월호 (통권 682호)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은 어디에 있을까? 아파트 공화국, 아파트 키즈,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당연하고도 만연한 사회 현상이다. 지난 7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전시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은 익숙한 삶의 풍경에 반기를 들고, 다른 형태의 주거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연면적 100평이 넘어가는 고급 주택, 신도시 등의 단독주택단지에 지어진 주택을 제외한 총 58채의 단독주택은 아파트 공화국에 외치는 대항적 선언이자 얼마 남지 않은 대안적 삶의 모습에 대한 아카이빙이다. 한편, 9월 28일 광운인테리어에서 열릴 예정인 전시 <국민평수>는 너무나도 익숙해 깊게 살펴보지 않았던 아파트 평면을 살핌으로써 대안적 일상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 전시 전경 ©Son Mihyun
한국 주거의 이상과 현실: 단독주택과 아파트
‘막막한, 엄두가 나지 않는, 그림의 떡, 세상 물정 모르는, 극한의 도전, 좌충우돌….’ 모두 집짓기에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그만큼 한국에서 단독주택을 직접 지어서 혹은 고쳐서 살겠다는 결심은 흔치도 않고, 쉽지도 않은 일이다. 주택이 거주 공간보다도 투자수단으로 여겨지는 우리 사회에서 표준화된 아파트에 비해 되팔기가 쉽지 않아 같은 평수의 아파트에 비해 자산 가치도 떨어진다는 사실은 단독주택을 선택하기 힘든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23년 통계청의 「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 주택 중 19.8%가 단독주택이다. 그리고 이 단독주택은 법적으로 다가구주택과 영업 겸용 주택, 즉 상가주택을 포함한다. 우리가 단독주택 하면 떠올리는 한 가구만이 거주하는 단독주택은 13.4%에 불과하다.
반면 마포아파트부터 이어진 한국의 아파트는 매년 꾸준히 30만 채 이상 지어지고 있을 정도로 우세한 주거 방식이다. 2000년 래미안, e편한세상을 시작으로 대형 건설사들이 양산한 브랜드 아파트들은 평면의 표준화를 가속화하며, 편리한 주거 형식이자 탁월한 자산으로 자리매김 했다.
스튜디오케이웍스(대표 김광수)가 설계한 베이스캠프 마운틴(2004) ©Kim Jongoh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
앞서 서술한 한국의 상황에서도 아파트가 아닌 나만의 ‘집’을 지어 살아가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다. 2025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총감독을 맡은 정다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이 기획한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은 4인 가족을 위해 잘 짜인 아파트가 아닌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해온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담은 주택을 소개한다.
전시는 신진 건축가부터 기성 건축가까지 건축가 50인(팀)이 설계한 총 58채의 주택 작업을 여섯 개 섹션으로 나누어 다룬다. ‘선언하는 집’, ‘가족을 재정의하는 집’, ‘관계 맺는 집’, ‘펼쳐진 집’, ‘작은 집과 고친 집’, ‘잠시 머무는 집’에서 우리는 각각 어떤 대안을 발견할 수 있을까?
선언하는 집
첫 번째 섹션 ‘선언하는 집’에는 건축가의 다양한 실험과 건축적 선언이 담겼다. 그중 스튜디오케이웍스(대표 김광수)의 베이스 캠프 마운틴(2004)은 가설건축물인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하우스를 결합해 만든 독특한 집이자 카페다. ‘선언하는 집’의 대부분은 건축가 본인의 프로젝트로,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실험을 담은 경우가 많았다. 이에 반해 베이스캠프 마운틴에서의 실험은 데니, 젬마 건축주 부부의 남다른 삶에서 시작됐다. 부부는 “집은 삶이라는 긴 길을 가는 동안 잠시 머무르며 먹고 쉬고 나가기 위한 곳”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도시에서 정착이 아닌 생활하기 위한 집을 의뢰했다.
건축주 부부와 김광수 모두 이 가벼운 건축물의 수명이 길어야 5~7년이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베이스 캠프 마운틴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잘 사용되고 있다. 30년이라는 아파트의 수명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재건축 압력에 의한 사회적 수명이라는 사실을 떠오르게 하는 지점이다.
(왼쪽) 건축사사무소오비비에이의 비욘드 더 스크린(2019) 모형, (오른쪽) 오헤제건축의 목천의 세 집(2018) 모형
가족을 재정의하는 집
전시 개막 하루 전 대한민국 대법원이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외에도 2023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2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저출생 시대를 열었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이성애 4인 가족을 넘어 더욱더 다양한 생활 방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표준화된 4인 가구를 위한 아파트 평면이 아닌 건축가가 설계한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살아가는 집은 어떤 모습일까? ‘가족을 재정의하는 집’에는 이러한 사회 흐름을 반영하는 듯, 반려동물 혹은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집이 많았다.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처럼 사람만이 살아가는 것을 상정하고 지어진 주거 공간에서는 흔히 가구를 이용해 반려동물의 공간을 꾸리곤 한다. 반면, 처음부터 반려동물과의 생활을 상정하고 지은 집에서는 건축적 스케일에서부터 반려동물을 배려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례 중 하나인 삶것건축사사무소(대표 양수인)의 고개집(2016, 「SPACE(공간)」 587호 참고)은 사람 두 명, 고양이 두 마리, 개 두 마리로 구성된 가족을 위한 집이다. 가족이 이 집에 거주한 지 8여 년이 지난 지금 반려동물 세 마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동물과 함께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간적인 배려도 필요하지만, 인간의 삶보다 짧은 동물의 삶에 대한 시간적인 고려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의뢰인 부부는 고개집이 “8년간 세 마리의 친구들이 행복하게 살다 간 집”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3세대, 총 11가구의 가족이 살아가는 집(연희 생활공방, 2018), 남편과 아내의 공간을 분리한 집(홍은동 남녀하우스, 2018, 「SPACE」 625호 참고), 청년 1인 가구들이 모여 사는 코리빙(맹그로브 숭인, 2020) 등 주로 201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지어진 다양한 사례가 소개됐지만, 퀴어 부부, 가족을 이룬 비혼 공동체 등 더 적극적으로 가족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이들이 살아가는 집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1 전시실에 설치된 베이스캠프 마운틴의 1:2 스케일 모형
관계 맺는 집
앞의 섹션이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을 바라보았다면, ‘관계 맺는 집’은 이웃과 함께하는 삶에 주목했다. 한 가족을 위한 집이지만 이웃이 머물며 교류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준 단독주택, 여러 가족이 자발적으로 모여 살아가는 다세대·다가구 주택, 개인이 모여 집짓기 실천을 이어가는 협동조합 주택에 더해 1인 가구 청년을 위한 기숙사까지 포함됐다.
특히 둘 이상의 친한 가족이 함께 집을 짓고 산다는 어릴 적 한 번쯤 꿈꿔봤을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이렇듯 우리는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최선인 아파트에서의 소극적인 이웃관계를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관계를 꿈꾸지만 이를 직접 실천하고자 결심하는 일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혈연이 아닌 가족이 옆집에서 혹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집짓기 실천의 주체가 모두 건축학 교수 혹은 건축가 본인이라는 사실에서도 짐작해 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사는 삶이 꼭 어려운 것만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건축사사무소오비비에이(공동대표 이소정, 곽상준)의 빌라형 다세대·다가구 주택, 비욘드 더 스크린(2019)이 그 예다. 일반적으로 빌라의 건축주는 임대를 위해 최대 전용면적을 확보하려 하기에 새로운 시도가 쉽지 않다. 비욘드 더 스크린은 스킵플로어 구조를 활용하여 전용면적을 최대화하면서도, 건물의 코어를 둘러싼 외벽을 벽돌을 비워 쌓아 외기와 면하는 일종의 중정 공간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화분을 내놓고, 크리스마스 리스를 달며 중정은 점차 풍요로워진다. 이런 작은 시도만으로도 옆집에 사는 사람이 타인이 아닌 이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펼쳐진 집
‘펼쳐진 집’에서는 시골에서의 집짓기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살펴본다. 그중에서도 오헤제 건축(공동대표 이해든, 최재필)의 목천의 세 집(2018)에서 최근 시골집 짓기의 경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3세대로 이루어진 건축주 가족은 이 집을 시간을 나누어 공유한다. 소위 나흘은 도시에서, 사흘은 시골에서 머무는 두 지역 살이를 의미하는 4도 3촌보다 더 적극적으로 시골에 머무는 형태다. 실제로 최근 시골에 본격적으로 정착하는 귀농·귀촌 가구는 줄어드는 반면 도시의 편리함과 시골의 정취를 모두 누릴 수 있는 4도 3촌의 생활 방식이 각광받고 있다.
목천의 세 집은 곁집, 본집, 작은 집으로 구성되는데, 곁집에서는 농번기에 건축주 부모님과 일을 도우러 온 가족들이 농작물을 다듬고, 함께 소비하며 다음 해의 생산을 준비한다. 본집은 머무는 구성원이 항상 달라진다는 이 집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준다. 건축주의 부모님이 농번기에 머물 곳으로, 1년에 3분의 1을 해외에서 여행을 하며 보내는 건축주 부부의 베이스 캠프로, 아이들이 방학에 방문할 시골집으로 각각 다른 상황에 대응하는 이른바 가족 집회소인 것이다. 작은 집은 곁집과 본집 위에 얹힌 일종의 다락방으로 시골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1 전시실에 설치된 에이앤엘스튜디오의 얇디얇은 집(2018) 1:10 스케일 단면 모형
문도호제(대표 임태병)가 설계한 이미집(2023)에서 실제로 사용하던 현판
작은 집과 고친 집
‘작은 집과 고친 집’에는 필지가 부족한 도심 속에서 독특한 형태의 소규모 필지에 집을 짓거나 오래된 집을 고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이러한 집짓기 실천을 이어가는 이들은 주택을 부동산이 아닌 내가 계속 살아가야 할 거처로서 바라본다. 때문에 평균 거주 기간이 6~7년인 도시에서 어떻게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축소 지향적인 삶의 태도를 견지한다. 건축사사무소오비비에이의 작은집(2015)은 사라져가는 서울의 달동네 중 하나인 홍제동 개미마을 초입에 자리하고 있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 건축주가 전세 자금의 예산에 맞추어 집을 짓기 위해 적당한 조건의 대지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건축주 부부는 “더 큰 집을 원하고, 그래서 또 이사를 가는” 것이 아닌 좀 더 욕심을 버리고 살아가고자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평의 외부 공간은 채소를 가꿀 수 있는 텃밭으로 가끔은 아이의 놀이터로 사용되고, 공동주택과 달리 소음에 덜 예민한 단독주택은 건축주 부부가 ‘집구석 봄맞이’, ‘집구석 영화제’ 등을 열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되기도 한다.
에이앤엘스튜디오(공동대표 안기현, 신민재)의 얇디얇은집(2018, 「SPACE」 613호 참고)은 경부고속도로로 인해 완충 녹지를 조성하며 잘려 나간 아주 얇은 대지에 지은 집이다. 2.5m 접도 폭이라는 불리한 조건은 주차장 설치 예외라는 의외의 가능성을 이끌어냈다. 또한 집 바로 옆에 위치한 완충 녹지는 집의 마당이 된다. 이왕 단독주택을 짓는다면 꼭 마당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뒤집는 이 사례는 밀도 높은 도심에서의 삶은 어때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잠시 머무는 집
‘잠시 머무는 집’에는 특이하거나 비일상적인 건축 공간을 중심으로 숙박시설 자체가 목적이 되는 스테이 그리고 별장을 모았다. 여기에도 시간 단위로 집을 공유하는 집이 등장한다. 3세대로 구성된 한 가족이 공유하는 목천의 세 집과 다르게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공동대표 이창규, 강정윤)의 고산집(2017)은 열한 가족이 공유한다. 방치되어 있던 제주도의 돌집을 제주 전통 가옥의 주거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되 현대적인 삶을 담을 수 있도록 수선했다. 안거리는 여러 가족이 지낼 수 있는 공간, 밖거리는 혼자 지내기 적당한 원룸, 쇠막은 여러 가족이 각각 안거리 밖거리에 방문해도 만날 수 있는 공유 주방이 됐다.
이 공유 별장은 강미선(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의 주도로 시작됐다. 셰어하우스, 코리빙, 코워킹스페이스 등 공간을 공유하는 방식이 많아지고 있지만 무려 열한 가족이 공유하는 별장은 여전히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소유권 변동과 같은 일을 대비하거나 용이한 운영을 위해 협약서를 작성하고 여러 규칙을 정해 지난 7년간 무사히 고산집을 공유해왔다. 강미선은 “유지 보수와 금전적인 부담은 11분의 1로 나누어 갖지만 별장을 가짐으로써 얻는 기쁨은 그대로”라며 공유 별장을 아주 긍정적으로 평했다. 전시된 고산집 살림 기록에서 한 가족은 잡초를 뽑고 꽃을 파종한 경험을, 다른 가족은 전기설비를 고친 이력을, 또 다른 가족은 지네에 물리고 잡은 일을 공유했다. 이런 고산집의 사례는 주택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에 기반한 소유권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공간을 이용하며 얻는 가치를 우선할 때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고산집(2017)의 살림기록
<국민평수>
한편, 고재협(홍익대학교 겸임교수)과 전재우(하이퍼스팬드럴 대표)가 진행한 워크숍 ‘국민평수’의 결과를 전시하는 <국민평수>는 오히려 단독주택의 정반대편에 있는 가장 보편적인 주거 형식인 아파트, 그중에서도 ‘국민평수’의 아파트를 대상으로 삼아 대안적 일상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대안’을 제안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존의 규칙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도다. 국민평수는 33평(108.9m2), 전용면적 85m2 이하의 아파트 유닛을 칭하는 말로, 4인 가족이 생활하기 가장 보편적이고 표준적인 면적으로 여겨진다. 일반적으로는 대다수가 생애 처음 장만하는 집의 평수이기도 하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33평형이지만, 고재협과 전재우는 새로운 질문을 객관적인 건축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고자 했다. 국민평수의 아파트 평면은 과연 시대에 따라 바뀌고 있을지, 아니면 몇십 년 전에 생긴 평면에 여전히 맞추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말이다. 두 건축가는 80여 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2023년 도급 순위 상위 8개 건설사가 1990년대 이후 지은 33평형 브랜드 아파트 평면도 1,000장을 수집하고 그려냈다.
익히 잘 알고 있던 변화의 경향도 있었지만, 예상보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2006년, 거실 구조변경이 합법화되어 발코니를 확장할 수 있게 됐다. 인구가 집중되는 대도시에서 한 평이라도 더 넓은 공간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은 33평형의 평면이 2베이(bay)에서 3베이를 거쳐 4베이로 변화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유닛 내부에 복도가 생겨났다. 세탁기, 건조기, 에어컨 등의 가전제품 기술의 향상으로 인해 발코니의 역할이 감소하며, 더더욱 발코니 확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동시에 손님을 맞이하던 거실과 안방은 작아지고, 자녀 세대를 위한 면적이 늘어났다. 한편으로는 신도시를 중심으로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국민평수의 평형을 실험하며 획일화된 아파트 평면 속에서도 나름대로 여러 갈래의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현실적인 대안적 주거 형식을 꿈꾸며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은 단독주택이라는 조금은 멀고 비현실적인 대상을 친근하게 보여주며, 아파트를 벗어난 삶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건축 매체를 통해 자주 노출되는 완공 직후의 새 건물이 아닌 거주자가 들어와 삶을 꾸려가는 사람 냄새 나는 모습으로 말이다. 각 섹션마다 주택의 거주자들이 직접 찍은 사진, 동영상을 엮어 만든 영상이 상영되고, 실제로 사용되던 현판, 청소기록일지, 방명록 등이 각 주택의 모형, 도면과 함께 전시됐다. VAA 건축사사무소(대표 이윤석)가 전시를 위해 제작한 캐리커처 모형도 이 건축 작업들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도록 고안한 방법 중 하나다. 건축가의 건축 작품이 아닌 정감 있는 ‘집’으로서의 모습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나도 이런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한다. 이와 동시에 전시장은 일종의 건축가 쇼룸으로 작동하며, 관람객의 욕망을 부추기기도 한다. 실제로 집을 짓게 된다면 어떤 건축가에게 맡기고 싶은지, 어떤 건축가의 작품이 자기의 스타일인지를 논하는 관람객들의 대화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전시 끝부분에 위치한 집짓기 관련 서적과 58채 주택의 자료를 모두 모은 58권의 자료집은 이를 더욱 자극한다. 하지만 아주 예외적이고, 특별한 사례를 모은 58개 집의 사례를 개인이 실천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말 그대로 대안적 삶을 위한 것이지 보편적인 주거 형식이 될 가능성은 낮다. 한편, <국민평수>에서의 아파트 평면 분석은 아직 구체적인 일상의 대안적 가능성을 제시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좀 더 보편적이고 현실적인 대상을 딛고 서 있다. 두 전시의 사이 어딘가에서 더 나은 주거 형식을 위한 단초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국민평수’ 워크숍에서 분석한 아파트 평면의 일부 ©Ko Jaehy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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