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이 개최됐다.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개인 소장품이 포함된 300여 점의 까르띠에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는 큰 규모의 순회전이다. 전시 공간의 디자인은 “아주 오래된 소재를 다루는 것이야말로 지금 가장 새로운 시도”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건축 작업을 이어가는 일본의 건축사무소 신소재연구소(공동대표 스기모토 히로시, 사카키다 도모유키)가 맡았다. 그들은 까르띠에의 컬렉션을 ‘시간’이라는 콘셉트 아래 전시 공간에 담아냈다. 신소재연구소의 사카키다 도모유키를 만나 더욱 구체적인 전시 공간 디자인의 의도를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 사카키다 도모유키 신소재연구소 공동대표 × 김보경 기자
사카키다 토모유키 Image courtesy of Shinsoken_New Material Research Laboratory
김보경(김): 어떤 계기로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의 전시 공간 디자인을 맡게 됐나? ‘시간’이라는 주제는 어떻게 도출된 것인가?
사카키다 도모유키(사카키다):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은 2019년 도쿄국립신미술관에서 시작한 순회전이다.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의 전시 공간 디자인은 2017년, 197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까르띠에 작품 그리고 더 나아가 미래에 포커스를 둔 전시를 하고 싶다는 까르띠에의 제안을 받고 시작했다.
원래 까르띠에는 일본에서 10년에 한 번씩 아주 큰 전시를 열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는 순회전 <에토레 소트사스가 바라본 까르띠에 디자인(Cartier Design Viewed by Ettore Sottsass)>(2002~2005)을 교토의 다이고지(醍醐寺)라는 절에서, 일본인 디자이너 요시오카 도쿠진(吉岡徳仁)은 <스토리 오브... 까르띠에 창작품의 추억(Story Of... Memories of Cartier creations)>(2009)를 도쿄국립박물관의 전시관 중 하나인 효케이칸(表敬館)이라는 서양식 건축물에서 전시를 열었다. 앞의 두 전시가 열린 장소들의 컨셉이 확실했던 데 반해, 내가 전시 공간 디자인 제안을 받았을 때는 화이트 큐브 안에서 공간을 구성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여러 도시에서 순회전을 해야 하니, 각각의 도시에서도 성립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을 연출해달라는 것이었다.
‘시간의 결정’은 스기모토 히로시의 개인적인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주제다. 까르띠에는 상업적인 기업이지만, 상업적인 부분을 배제하고 까르띠에의 역사성, 보편성을 나타내는 미술 전시회로 승화시킬 수는 없을지, 까르띠에 컬렉션의 미술품으로서의 매력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를 많이 고민했다. 까르띠에 작품의 매력과 미래를 표현하기 위해서 까르띠에의 역사보다도 더 긴 인류적 혹은 지구적 스케일의 시간 선상에서 까르띠에의 작품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편이 까르띠에의 보편성과 매력이 더 잘 드러난다는 판단에서였다.
‘프롤로그: 시간의 공간’ 전시 전경 Image courtesy of Cartier / ©Victor Picon
‘챕터 1: 소재의 변신과 색채’ 전시 전경 Image courtesy of Cartier / ©Victor Picon
‘챕터 2: 형태와 디자인’에 전시된 (좌) 네크리스, 까르띠에, 2017, 개인 소장품 (우) 네크리스, 까르띠에 런던, 특별 주문 제작, 1932, 까르띠에 소장품 Image courtesy of Cartier / ©Yuji Ono
김: ‘시간’이라는 테마를 어떻게 전시 공간에 시각적으로 구현했나?
사카키다: 시간이라는 개념을 부각하기 위해서 오래된 소재를 사용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지구가 탄생시킨 소재와 까르띠에 컬렉션을 대비시킨다면 까르띠에의 매력이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메랄드나 루비와 같은 보석으로 만들어진 까르띠에 컬렉션과 오래된 소재들 간의 대비도 중요했지만, 오래된 돌이나 나무 등의 소재는 그 자체로도 시간을 드러낸다. 전시에 사용한 나무는 대부분 오래된 것으로 1000년, 2000년 이상인 것도 있다. 오래된 나무의 결은 이 나무가 자라온 지구의 풍경을 그리고 그 풍경이 변해온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또 오야석(大谷石)▼1을 사용해 지각 변동을 겪으며 나타나는 변화를 드러내고자 했다.
오래된 것을 그저 현대적으로만 표현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오래된 것은 그 자체로도 정말 훌륭하다. 다만,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오래된 소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까르띠에의 컬렉션이 전시된 토르소 또한 오래된 소재, 전통적인 기법에 새로운 해석을 가미해 만들었다.
불상을 조각하는 불사는 본래 전통적인 것을 조각하지만, 이번에는 그 전통적인 기법과 오래된 소재를 가지고 현대적인 토르소를 만들어 주었다. 불사가 전통 기법을 유감없이 발휘해 천년 넘게 땅에 묻혀 있던 나무 진다이를 깎아 표현한 물결무늬는 서양 복식의 데코르테 라인 혹은 옷의 드레이프를 연상시킨다. 불사의 장인 기술을 빌려 까르띠에를 좀 더 승화시킨 작업이다.
도쿄와 서울 전시에 사용한 ‘라(羅)’ 또한 전통적인 기법으로 만들어진 직물에 현대성을 부여해 어떻게 재탄생시키느냐에 중점을 두고 사용한 것이다. 일본의 도다이지(東大寺)라는 절에 쇼소인(正倉院)이라는 유물들을 보관하는 장소가 있는데, 그곳에 실크로드를 통해 전래된 문화재인 쇼소인키레(正倉院裂)라고 부르는 굉장히 얼기설기 엮인 형태의 직물이 있다. 일본에서는 이런 직물을 ‘라’라고 부르는데, 이 전통 직물의 직조 패턴을 복원해 전시에 사용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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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5세기부터 일본 도치기현 우츠노미야에서 채굴되어 온 오야석은 이전부터 건축 재료로 널리 쓰여왔는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도쿄 제국호텔 프로젝트(1913~1923)에 사용하며 널리 알려졌다.
2 한국에서도 ‘라’라고 불리는 전통 직물이 있다. 삼국시대부터 쓰이기 시작했으나 조선시대부터 점차 사라져 현대 한국인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전통문화의 보전과 현대적 계승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 문화재단 아름지기가 2016년 주최한 전시에서 이를 복원한 바 있다. 까르띠에가 오랫동안 후원해 온 아름지기와 특별 협력해 한국의 라를 이번 전시에 사용할 수 있었다. 한국의 라는 ‘챕터 1: 소재의 변신과 색채’에 사용됐다.
전시 도입부를 장식한 스기모토 히로시의 작품, ‘타임 리버스드’(2018) Image courtesy of Cartier / ©Yuji Ono
김: 보석을 관람하는 데 있어서 빛도 아주 중요한 요소다. 보석에 떨어지는 빛은 어떻게 연출하고자 했나?
사카키다: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어둠 속에 빛이 있다”고 표현한 것처럼 빛을 연출한다는 것은 사실 어둠을 연출하는 것이다. 또한 몇만 광년이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빛 자체가 시간을 표현한다. 굉장히 오래된 시간을 느끼게 하고자 한다는 연장선에서 빛을 다루었다.
보석을 감상할 때 빛이 보석 안에 들어가 교반을 일으키면 보석의 매력이 더욱 증폭된다는 점도 있다. 전시 공간의 조건상 인공적인 빛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자연의 빛처럼 느껴지게 하고 싶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광원의 존재를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테스트를 거쳐 인공의 빛이 느껴지지 않도록 빛을 다루려고 노력했다.
또한 인공적인 빛이 느껴지지 않도록 다른 요소에 시선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라’와 같은 패브릭, 돌의 음영 등이 중요한 디자인 요소였다.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 전시가 열리는 DDP 전경 Image courtesy of Cartier / ©Victor Picon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 전시장 내부 전경 Image courtesy of Cartier / ©Victor Picon
김: 화이트 큐브를 상정하고 계획한 전시 공간 디자인을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 어떻게 적용했나?
사카키다: 처음, 한국에서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전시를 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전시 공간을 구성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DDP는 스케일이 크고, 활기 넘치는 이벤트가 많이 일어나는 등 자체의 성격이 강한 건축물이다. 작은 보석을 보여주는 조용한 전시 공간을 만들어내고 싶었는데, DDP에서 이러한 전시를 어떻게 열 수 있을지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에는 오히려 자하 하디드의 DDP 공간과의 대비를 활용해 밝음 속 어두움, 활기참 속 조용함을 디자인하고자 했다. 마치 도시 한가운데서 어두운 동굴 속으로 돌을 찾으러 탐험에 나서는 장면을 상상했다.
전형적인 미술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냉방과 습도를 통제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다. 이는 DDP 건축물 안에 또 다른 건축물을 만들어 해결했다. 이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이러한 탐험을 하는 시퀀스 전개를 표현하는 데에 일조한다.
‘트레저 피스’ 설치 전경 Image courtesy of Cartier / ©Victor Picon
‘트레저 피스’ 설치 전경 Image courtesy of Cartier / ©Victor Picon
김: 이번 전시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을 일본에 이어 한국이라는 새로운 맥락 속에서 개최하며 특별히 신경 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사카키다: 순회전을 돌 때마다 그 나라의 시간을 나타내는 소재를 사용해 그곳의 맥락 속에서 까르띠에의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의도가 있었다. 그래서 각 챕터 사이에 고미술품을 설치한 공간을 만들고, 그 부분에 각 나라의 고유성을 적용하고자 했다. 전시에 어울리는 고미술품의 선정, 배치와 구성은 모두 스기모토 히로시가 맡았다. 아티스트인 그는 고미술 수집을 하는데, 작품을 보는 눈과 감각이 날카로워 굉장히 신선한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전시에 한국적인 소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중앙화동재단 부설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과 협업했다. 한국의 오래된 것을 중시하는 온지음과 신소재연구소의 철학적 공통점이 많아 함께 협업해 나가는 과정이 매끄러웠다. 온지음 쪽에서 2019년에 우리가 열었던 전시를 보고 먼저 한국적인 소재를 제안했다. 그중에 한국의 한지, 장판, 라 등이 있었다. 특히 온지음과 협력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한국에서도 유사한 특징을 갖는 직물을 ‘라(羅)’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돼 크게 감동했다. 그래서 그러한 문화적 공통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를 매우 중요하게 고려했다.
일본의 ‘라’는 카와시마 셀콘 텍스타일(Kawashima Selkon Textiles Co., Ltd.)이 한국의 ‘라’는 온지음이 복원해 각각 프롤로그 챕터와 첫 번째 챕터의 공간에 사용했다. 오래된 장판은 한국과 일본의 고미술품을 설치한 공간 바닥에 깔아 한국과의 관련성을 드러냈다. 한국의 한지도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느껴 인포메이션 데스크와 문 등에 사용했다.
인터뷰 현장에서의 사카키다 도모유키 ⓒKim Bok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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