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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행위를 디자인하는: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

사진
최용준(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
진행
김지아 기자

「SPACE(공간)」 2024년 3월호 (통권 676호) 

 

공간에서 일어날 행위를 고려해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을 매만지는 일. 지난 15년간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대표 임태희)가 걸어온 길이다. 이들이 디자인한 공간은 시각 요소로 시선을 사로잡기에 앞서 사용자를 향해 있다. 공간의 본질은 곧 머무름이라는 관점으로 사용자의 행위와 시간을 디자인하는 데 집중해온 임태희를 만나 공간에서 가구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오설록 티뮤지엄 로스터리존(2023) 

 

​인터뷰 임태희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 대표 × 김지아 기자

 

김지아(김): 실내디자인과 건축을 전공하고 2007년부터 다양한 공간 작업을 수행해왔다. 한국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했다고 들었다.

임태희(임): 학부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후 첫 직장이 건축사무소였는데 당시로서는 좀 드문 사례였다. 건축을 전공한 사람들이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건축업은 다른 능력과 자격을 요한다. 그곳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공간에 대한 관심이 건축으로 확장돼 유학을 떠났다. 건축과 실내 공간을 잇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온 터라, 그 관심을 발전시켜 근대건축의 보존과 활용을 주제로 2006년에 박사논문을 썼다. 기존 공간을 재생하는 작업이 건축과 실내디자인의 중간 영역에 있다고 생각했다.

 

오설록 티뮤지엄 로스터리존(2023)

김: 2000년대 초중반 무렵은 한국에서 지금만큼 재생건축 논의가 활발하지 않던 때다. 일본에서도 유서 깊은 도시인 교토에서 공부한 점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된다.

임: 교토는 역사적 건물이 현대까지 이어져 경관을 이루는 도시다. 그곳에서 공부하면서 무엇보다 근대라는 시기에 흥미를 느꼈다. 동양의 근대는 서양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져온 시기가 아니라,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충돌하고 뒤섞이며 생겨났다. 그렇기에 근대라는 시기를 지나며 무엇을 어떻게 남기고 변화시킬지가 동양에서 중요한 화두가 됐다. 일본은 건축의 보존과 활용에 관한 논의가 한국보다 이른 시기에 진행됐기에 학업 과정에서 그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정립할 수 있었다.

 

김: 한국에 돌아와 사무소를 설립하고 주로 인테리어 작업을 해왔다. 인테리어는 흔히 건축에 비해 수명이 짧다고 여겨진다. 한 인터뷰에서 “오래가는 인테리어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를 구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가?

임: 인테리어는 여전히 장식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 또한 디자인의 속성이기에 부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초기 작업부터 보여주기식의 디자인은 지양하려 했다. 그보다는 건축 안에서 일어날 행위들을 고려해 공간을 섬세하게 다듬는 작업을 해왔다. 지금이야 우리가 수행해온 작업들 중 식음 공간을 비롯한 상업 공간 프로젝트가 늘어 이런 관점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거주가 본질인 주거 공간이나 사무 공간을 다룰 때는 특히 더 시간과 행위를 디자인하는 일에 집중했다. 

 

김: 고창 상하농원(2016)에서도 그러한 관점이 드러난다. 카페, 식당, 온실, 직원 사무소 등 각기 다른 용도를 가진 열 개 공간의 내부를 디자인했다.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나?

임: 상하농원은 설치미술가 김범이 전체 콘셉트와 기획을 맡고, 우리가 내부 공간 디자인을 담당해 협업한 프로젝트다. 상하농원의 콘셉트는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인’이다. 드러나지 않지만 기능을 온전히 충족해 지속 가능한 공간으로 자리 잡길 바란 뜻이 담겼다. 당시 인테리어 트렌드와는 사뭇 다른 방향이었는데, 그 무렵 서울에 집중돼 있던 다양한 공간들이 하나둘 다른 도시에도 생겨나면서 서울에 있을 법한 공간을 표방하는 디자인이 주를 이뤘다. 우리는 고창에는 고창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하농원은 다양한 먹거리가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농촌형 테마공원이다. 그렇기에 방문객에게 공방과 목장, 키친 등에서 생산과 제조라는 행위를 보여주는 일이 핵심이었다. 실제로 직원들이 일하는 현장을 방문하므로, 무엇보다 방문객과 직원의 동선이 뒤섞이지 않는 일이 중요했다. 이외에도 체험공방으로 들어온 직원이 어디에서 신발을 벗고 위생부츠를 갈아 신어야 할지, 빵 반죽은 어디서 하고, 빵이 구워졌을 때 그 향을 어디서 나누는 게 좋을지, 어떤 마감재를 사용해야 사람들이 편안하게 받아들일지 등을 주요하게 고려했다. 마치 연극을 연출하듯 사람들의 행위를 상상하며 디자인했다. 

 

오설록 티뮤지엄 로스터리존에서는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손으로 덖은 차가 판매대까지 자동으로 이동한다. 

 

김: 최근 오설록 티뮤지엄 로스터리존(2023, 이하 로스터리존)의 내부 디자인을 맡았다. 로스터리존은 전체 티뮤지엄 안에서 차를 덖고 포장해 시음에서 판매까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임: 오설록 티뮤지엄 증축(본지 76~79쪽 참고)에서 전체 공간의 일부에 해당하는 영역을 디자인했다. 무엇보다 오설록은 이 공간을 통해 브랜드를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랐다. 물론 오설록 티뮤지엄 전체가 그러한 의도를 반영하고 있지만, 증축 전 카페와 더불어 있던 박물관에서 전시를 통해 설명하던 방식과는 다른 브랜딩을 원했다. 즉 로스터리존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으로 기획됐다. 우리나라의 차문화와 함께해온 오설록은 제주의 차밭에서 농사를 지어 재배하고 이를 로스팅해 제품을 제조하는 기업이다. 이에 서광차밭과 나란히 자리한 이곳에서는 브랜드가 가진 생산자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고자 했다. 

 

김: 증축 전에는 로스터리존이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작게 자리했다고 들었다. 

임: 티뮤지엄 안에서 로스터리존의 규모가 확대됐다. 차를 덖고, 식히고 분류하고 운반해 포장하고, 시음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가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이 일련의 과정을 분절해 보여주고자 했다. 티뮤지엄이라는 도시 안에 네 개 집을 짓는다고 가정해 크게 로스팅, 분류, 패키징, 판매 및 시음 존으로 영역을 나눴다. 다만 그 공정이 연속되어야 하기에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해 시각적, 물리적으로 연결했다. 상하농원과 마찬가지로 제조와 생산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드러내는 공간인데, 이를 좀 더 세밀하게 확대해 다룬 프로젝트로 볼 수 있다. 오늘날 소비 활동에서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많은 경우 생략되고, 대부분 기계가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공정에는 여전히 인간이 있다. 이러한 인간의 노동을 말이 아닌 공간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김: 공간뿐 아니라 가구와 도구도 직접 디자인했다.

임: 로스터리존은 단순히 보이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생산 현장, 즉 작은 공장이다. 따라서 그곳에서 이루어질 행위를 돕는 도구를 디자인하는 일도 중요했다. 대표적으로 컨베이어 벨트가 그 일환이다. 벨트를 통해 손으로 덖은 차가 판매대까지 자동으로 이동하도록 했다. 또한 고객이 시음한 잔을 걷어들여 옮기고, 깨끗하게 씻어 제자리에 두는 프로세스에서 불합리한 노동을 줄이기 위해 트레이를 제작했다. 시음 후 고객이 트레이의 칸에 맞춰 잔을 놓아두면, 트레이째 잔을 옮겨 일괄적으로 세척할 수 있다. 이에 더해 반자동으로 작동하는 모듈형 트롤리를 제작했다. 패키징 존에서 맞춤 제작한 트레이에 제품을 실어, 트롤리를 통해 판매 존까지 옮긴 후 곧바로 트레이째 제품을 디스플레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렇듯 공간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직원의 관점을 고려해 세심한 디자인을 시도했다. 한편 목재로 마감한 가구는 티뮤지엄 내 다른 가구들과 수종을 맞춰 통일된 인상을 주고자 했다.

 

상하농원(2016)의 온실​ ©Park Youngchae 

 

카페 이페메라 

 

김: 로스터리존 외에도 LCDC 서울의 카페 이페메라(2022), 온양민속박물관의 카페온양(2022), 나무호텔(2018, 「SPACE(공간)」 651호 참고) 등 건축가와 합을 맞춘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했다. 주로 어느 단계에 참여하며, 협업 과정이 어떤지 궁금하다. 

임: 프로젝트가 가진 상황과 목적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그렇기에 어느 단계부터 협업하는 것이 좋다고 단정지어 말하기 어렵다. 건축가가 어떤 작업 스타일인지 알고 있고, 서로 신뢰하는 관계라면 가능한 빠르게 협업하는 게 유리하다. 초기 단계에 협업하는 것은 ‘내부 공간이 이러해야 하니 건축은 어떠해야 한다’고 좌지우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건축을 깊이 이해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재헌(경희대학교 교수)과 모노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나무호텔은 건축 구조가 완성된 후에 참여한 프로젝트인데, 내부 공간의 가구 디자인을 맡았다. 공간에 크게 손을 대기보다, 가구를 통해 사소한 요소들을 보완했다. 예컨대 침대에 누워 있을 때 현관문이 보이는 시야를 가리기 위해 현관 옆으로 옷장과 스낵바 등 수납 가구를 만들었다. 또한 사소하지만 욕실에 어메니티와 헤어드라이어 등을 수납할 공간이 없어, 세면대 하부에 가죽 포켓을 만들어 수납장으로 활용했다. 건축에서 일일이 고려할 수 없는 지점들을 보완해 공간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김: 많은 프로젝트에서 가구를 직접 디자인한다. 공간에서 가구가 어떤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가?

임: 우리는 공간적 관점으로 가구에 접근한다. 가구를 위한 가구를 설계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데, 전체적인 공간 안에서의 맥락을 고려해 특정 역할을 수행하는 가구를 만든다. 나무호텔의 가구도 마찬가지다. 가구로 공간을 만들고자 한 시도다. 최근 작업한 더일마 현대백화점 판교점(2022)의 가구도 특징적인데, 백화점 매장은 정해진 구조 안에서 공간적 변화를 꾀하기 어렵기에 가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가변적 공간이 되도록 했다. 온전한 가구 열두 개를 필요에 따라 결합, 해체해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매장 내 중앙 공간에서는 이 가구들을 계단의 형태로 쌓아 무대처럼 사용한다. 의류 브랜드 특성상 시즌마다 새롭게 디스플레이 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데, 매 시즌 공간을 뒤엎을 수는 없는 일이다. 디자인적 관점에서는 단순할 수 있지만 공간과 사용자 입장에서 유용한 가구를 디자인하려 했다. 

 

김: 공간의 지속가능성을 실험하고 실천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임: 디자이너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작게나마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22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는 코오롱이 전개하는 세 브랜드의 전시 공간을 디자인했는데, 구조물에 쓰이는 모든 재료가 100% 재활용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녹여서 다시 쓸 수 있는 재료인 금속과 다양한 에어캡 가운데 재활용이 되는 제품을 사용했다. 금속 파이프로 된 구조체를 조인트로 연결하고, 거기에 입면을 이루는 에어캡을 자석으로 붙여 해체 시 공기를 빼고 돌돌 말아 리사이클이 가능하도록 했다. 전시 공간 내 가구도 각 브랜드가 기존에 소장하고 있던 가구를 요청해 배치했다. 이외에도 2021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윤현상재의 전시 부스로 임시적으로 만든 파빌리온은 세 번 재사용한 끝에 최근 온양민속박물관으로 옮겨가 새롭게 사용되고 있다. 

 

 

나무호텔(2018)에서는 가구로 공간을 만들고자 시도했다. 침대에 누워 있을 때 현관문이 보이는 시야를 가리기 위해 현관 옆으로 수납 가구를 디자인하고, 욕실 세면대 하부에 가죽 포켓을 매달아 수납장으로 활용했다. 

 

김: 공예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공예트렌드페어(2018, 2019)의 전시 공간을 기획하기도 하고, 재작년에는 예올×샤넬 프로젝트 〈반짝거림의 깊이에 관하여〉(2022)를 디렉팅하기도 했다.

임: 무언가를 손수 만드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 작은 오브제부터 가구까지 대부분의 제품이 대량생산되는 이 시대에 공예가 갖는 가치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2018 공예트렌드페어에서는 일상 속 공예를 주제로 한 쇼케이스관을, 이듬해에는 한지관을 디자인했다. 예올과 샤넬이 함께한 프로젝트에서는 예술감독을 맡아 전반적인 기획부터 전시 공간 디자인에 참여했고, 박수영 장인과 협업해 자연의 흐름과 움직임을 주제로 한 모빌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공예는 소비사회에서 안목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디자이너에게 재료에 대한 물성을 훈련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김: 한국에서 활동한 지 어언 20년이 되어간다. 건축·공간계에 종사하며 체감하는 변화가 있나?

임: 2007년 귀국해 꾸준히 실무를 해왔는데 한국의 건축·공간은 전반적으로 상향평준화를 이룬 듯하다. 공간을 향유하려는 움직임이 늘면서 공간도 그에 발맞춰 빠르게 발전했다. 소위 잘하는 사람들이 월등히 많아졌는데, 그럴수록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나답게 할 수 있는 작업이 무엇인지 점점 고민하게 된다. 양적으로 많은 작업을 해왔음에도 여전히 과정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일마 현대백화점 판교점(2022) 

 

2022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는 코오롱이 전개하는 세 개 브랜드의 전시 공간을 디자인했다. 구조물에 쓰이는 모든 재료가 100% 재활용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김: 앞으로 이루고 싶은 성취에 대해 들려준다면. 

임: 자유로움이다. 가령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는 나무를 많이 쓴다”고 누군가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아직 부족한 것이다. 그보다는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에서 이런 작업도 하는구나’ 하는 놀라움을 선사하고 싶다. 요즘은 공간뿐 아니라 건축 일도 종종 들어온다. 그 또한 차근차근 배우면서 해나가고 있다. 건축이든 공간이든, 그 공간을 이루는 작은 손잡이든 고정된 틀 안에 갇히지 않고 디자이너로서 사용자에게 편리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작업을 해나가고자 한다.​ 

 

〈반짝거림의 깊이에 관하여〉(2022) 전시 전경​ ©Kim Jandee 

 

예올과 샤넬이 함께한 프로젝트에서는 박수영 장인과 협업해 자연의 흐름과 움직임을 주제로 한 모빌 작품을 선보였다. 

월간 「SPACE(공간)」 676호(2024년 03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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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희
임태희는 덕성여자대학교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대학교 건축학과에서 연구생 생활을 거쳐 홍익대학교에서 실내건축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재차 도일하여 교토공예섬유대학교 건축과에서 근대건축 보존과 재활용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학 시절 학업 이외에도 많은 일본 건축가를 인터뷰하고, 교토 탐정단을 만들어 한국에 연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현재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를 운영하며 공간, 가구, 건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을 통해서 배움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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