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나무 때문에 건축가가 “울고 웃으며 지었다”고 회상하는 공공 건축물이 있다. 바로 서울 양천구 소재 에코스페이스 연의(양천구 신정동 1320-9)다. 네이버와 구글이 이 건물을 위성촬영한 사진을 보면, 증축 전 구축 연의생태학습관의 북쪽 정가운데에 다섯 그루의 나무 그림자를 길게 뻗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건축주인 양천구청의 원래 주문은 “이 다섯 그루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학습관을 증축해 달라”는 것이었다. 구축 학습관의 배 부분에 미루나무 5형제가 버티고 서 있으니 그걸 잘라내서 T자형으로 완성해 달라는 구청 측의 ‘합리적인’ 주문이었다.
그러나 구보건축의 조윤희 소장과 홍지학 디자인협력파트너(충남대 건축학과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나무 형제들을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증축분을 구청의 배 부분에서 뻗어나가는 게 아니라 더 위로 올려 최종적으로 학습관 전체의 모양이 ㄴ자가 되어 미루나무 오형제를 껴안는 형태로 설계했다. 이렇게 살아난 미루나무 오형제는 진통 속에 계속된 건축 기간 내내 건축가에게 눈물과 미소를 안겼다. 건축가뿐 아니라 이용자도 마찬가지다. 2년 전 에코스페이스 연의가 새롭게 증축 오픈한 뒤 이곳을 종종 찾는다는 40대 주부는 기자에게 “미루나무가 바짝 붙어 있는 2층 공간이 제일 좋아요”라고 말해줬다.
건축 과정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2년 전 이 학습관을 준공 시점에 건축의 세 주체라 할 건축사사무소(구보건축), 양천구청, 시공업체에서 각각 한 명씩 ‘너무 힘들어” 퇴직했다니 그 험난함이 짐작된다. 에코스페이스 연의은 저류지(폭우 때 하천이 넘치지 않도록 물을 잠시 가두어 두는 곳) 공원 한켠에 지어졌다.
이 학습관의 서쪽 벽면 앞에는 다섯 그루의 미루나무가, 그리고 북쪽 벽면 앞에는 하얀 자작나무들이 서 있다. 하늘로 뻗은 나무줄기와 벽면의 요철 무늬가 잘 어울린다. 노출 콘크리트의 수직 방향 요철 무늬 사이즈가 나무줄기와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건물 전체를 가뿐하게 떠받치는 흰색 기둥 역시 나무줄기와 닮은꼴이다. 이 기둥에 대해 건축가는 “일반적인 설계였다면 지금보다 4배 굵은 1미터 두께의 콘크리트 기둥이 건물을 무겁게 떠받들고 있을 것”이라며 “나무줄기와 비슷한 25cm 굵기의 강관에 콘크리트를 부어 넣어 지지력을 높인 뒤, 이 강관이 각 층의 콘크리트 슬래브를 지지하는 하이브리드 구조로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25cm 굵기의 하얀 기둥이 떠받치는 현재의 학습관 모양과, 반대로 폭 1m짜리 두꺼운 콘크리트 기둥으로 떠받쳐졌을 ‘상식적인’ 건물을 연상해본다면 건축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낯선 설계는 계속 난관을 들이밀었다. 콘크리트를 채운 얇은 강관이 4층 전체를 아래위로 관통하고, 올록볼록 문양의 노출 콘크리트가 외벽을 둘러싸는 디자인을 시공업체 측은 어이없어 했다. 일반적인 구청 공사로 알고 낙찰받았는데 건축가가 얇은 강관에 콘크리트를 들이부어 건물을 떠받치라고 하지 않나, 또한 바닥 공사를 마치니 “이중 바닥이라서 이렇게 수평이 맞지 않으면 안 된다”며 두 번이나 바닥을 재시공하게 하니 시공업체의 넋이 나갈 만도 했다.
올록볼록 콘크리트 역시 난공사였다. 요철형 거푸집을 만들어 올록볼록을 만들었으나 노출면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건축가의 지적에 시공업체는 “그러면 매끄럽게 해주면 되지”라며 독자적으로 미장 칠을 했다. 이튿날 이를 발견한 건축가는 그러면 절대 안 된다면서 미장 칠을 다 벗겨냈다니, 건축가의 말마따나 “전쟁통 같은” 건축 현장이었다.
이런 고난의 건축을 하면서 건축가는 현장으로 향할 때마다 “과연 이 건물이 완공은 되려나”라는 걱정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고민에 휩싸여 현장을 거니는 건축가의 귀에 미루나무 잎들이 시원한 바람에 서걱서걱거리는 소리로, 또 비 오는 날에는 나뭇잎이 빗방울을 받아내는 소리로 건축가를 위로했다. 이렇게 미루나무의 위로를 받으며 건축가를 때론 눈물을, 때론 미소를 지으며 완공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학습관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구성돼 있다.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기는 건물인 만큼 지하 1층에는 별다른 시설이 없다. 다만 지하 1층 벽에는 물이 차오르면 흔적이 남는데, 물이 최고로 차오른 흔적 위에 학습관 측이 물결 모양과 오리와 함께 ‘22년 8월 8일 비 많이 온 날’이라고 써 놓아 재치가 넘친다. 1-2층 각각 2개씩 방이 있다. 1층의 ‘채집가의 연구실’에는 공원의 흙을 갖다 놓아 어린이들이 직접 파보면서 흙 속을 돋보기로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바로 옆의 연의갤러리에선 현지 인공지능(AI)이 구스타프 클림트, 빈센트 반 고흐 풍으로 연의공원을 그린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생태와 AI의 만남이다. 2층에는 단체 모임을 가질 수 있는 학습 방 ‘둥지 교실’, 그리고 그 옆에 2-3층을 터서 만든 작은 실내 온실 ‘감각의 숲’이 있다. 또한 미루나무와 바짝 붙어 있는 포근한 단체 모임 테이블과 의자도 장만돼 있다. 이들 시설은 에코스페이스 관리사무실에 예약해 사용할 수 있다.
건축가는 다양한 실내 시설들에 대해 “효율적이고 쾌적한 실내 공간을 확보했다. 그러나 생태학습관이 자연에 대해 관찰하고 생각하고 배우는 곳이라면, 내부가 아니라 공원이라는 외부에 집중하는 형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곳을 방문하는 아이들에게 학습의 장은 건물 내부의 딱딱한 교재와 이미지가 아니라 공원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들이길 바랐다. 공원과의 접촉 면을 늘리고,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흐트러지는 학습관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실내와 실외가 소통하는 특징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흔히 어린이를 위한 생태학습관이라면 어린이다운 알록달록한 색깔의 장식들, 또는 통나무 의자나 나무껍질을 이용해 자연을 강조한 시설들이 쉽게 떠올려진다. 건축가는 양천구청으로부터 에코스페이스 증축을 의뢰받은 뒤 여러 생태학습관을 방문하면서 이런 알록달록 색상과 통나무 활용 장식들을 수없이 만났다.
그러나 이처럼 과장된 색상과 장식은 인공적인 건물로만 너무 시선을 잡아당기는 단점이 있다. 공원에서 자연을 만나야 하는 생태학습관이라면 눈길이 건물과 자연을 오가야 한다. 그래서 건축가는 튀지 않는 재료인 노출 콘크리트를 선택했다. 여기에 올록볼록 형태를 적용해 귀엽게 연출했고, 건물울 둘러싼 나무줄기와의 조화도 이뤄냈다. 건축가는 “공원의 녹색 빛을 실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유리창, 유리 난간, 투시형 철제 난간을 적절히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자연은 실내로 들어오고, 실내에선 자연을 늘상 바라보도록 만든 설계다. 각 층의 전망대는 모두 노출 콘크리트 난간이지만, 1층과 3층엔 난간 위쪽에 유리를 덧대 시야각을 넓혔다. 아래위로 넓게 공원을 바라보도록 한 설계다. 반면 단체 착석이 가능한 2층 난간엔 유리가 없이 온통 콘크리트다. 깊은 처마와 적절히 높은 담장 속에서 마치 한옥의 대청마루처럼 포근히 안기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전체적으로 사각형인 건물에 리듬감을 주기 위한 건축가의 아이디어도 돋보인다. 1층 계단실 북쪽 난간과, 1층 입구 위의 베란다에는 반원형 설계를 적용했다. 너무 각진 노출 콘크리트 사각형에서 벗어나기 위한 추가다. 또한 2, 3층을 관통하는 온실의 천정은 삼각형들이 모여 이루는 피라미드 형태로 꾸몄다. 건물 전체는 사각형이지만 원-삼각형이 때때로 나타남으로써 어린이들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도록 꾸민 아이디어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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