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3년 12월호 (통권 673호)
건축가 조병수의 작품집 『BCHO 파트너스』가 내년 1월 공간서가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건축을 땅과의 대화로 여기는 그의 작업에는 땅의 특성과 호흡을 존중하는 태도가 깃들어 있다. 지난 30여 년간의 다채로운 작업을 엮는 키워드는 땅, 플랫폼, 스크린, 매스다. 땅을 읽는 네 가지 방법에 해당하는 키워드는 땅에서 출발해 그것을 경유하고 관통하며 건축을 만들어가는 방식을 살핀다. 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집을 엮게 된 배경과 그간의 프로젝를 조명하는 관점, 핵심적으로 수록된 도면의 의미 등 책을 둘러싼 면면을 들여다본다.
인터뷰 조병수 BCHO 파트너스 대표 × 박세미 객원기자
『BCHO 파트너스』 표지 이미지
박세미(박): 공간사에서 출간한 첫 번째 작품집 『조병수』(2009) 이후 15년 만에 펴내는 두 번째 작품집이다. 같은 형식의 두 번째 책인 셈인데, 소회가 어떤지 궁금하다.
조병수(조): 미국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와 1994년에 사무소를 열었다. 첫 번째 작품집이 한국에서 실무를 한 지 15년 만에 나온 책이라면, 두 번째 작품집은 그로부터 다시 약 15년이 지난 시점에 출간되는 책이다. 첫 작품집을 낼 당시에는 프로젝트 하나하나를 발전시켜가는 과정에 의미를 두었다. 어떤 이론을 견지하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본다는 태도로 작업에 임했다. 그러한 관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만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히 전하고자 했다. 두 번째 작품집은 그간의 작업을 돌아보는 회고의 성격이 짙다. 내년이면 한국에서 설계를 한 지 어언 30년이 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작업을 돌아보았을 때 비로소 어떤 흐름이 읽히는 것도 같았다. 땅에 대한 화두가 그중 하나로, 이번 책은 땅과의 관계에서 건축 작업을 해온 맥락에 초점을 맞췄다. 프로젝트를 전개하는 데 있어 특정 어휘에 얽매이는 것은 경계하지만, 땅과 지역에서 가져온 관심을 들추어보는 일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박: 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작업에서 땅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
조: 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1970~1980년대에는 땅에 대한 관심보다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았다. 프로그램에 성실한 건축을 만드는 것이 우선시되었는데, 실무를 하다 보니 땅과 건물의 관계가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처음 진행한 프로젝트들도 성북동이나 평창동처럼 언덕이 많은 동네에서, 축대 위에 인위적으로 조성된 땅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땅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땅과의 관계에서 건축 작업을 이어오며 한국의 미를 자연스레 탐구하게 됐다. 가령 완벽한 시공을 통해 세련된 형태를 구현하기보다 땅에 반응해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기질이 우리에게 있지 않나 생각한 것이다. 막의 미 또는 한국적 자연스러움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일련의 작업을 돌아보니 땅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한 시도가 읽히는 것 같았다.
박: 이 책은 땅, 플랫폼, 스크린, 매스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프로젝트를 조명한다. 해당 키워드들은 어떻게 도출된 것인가?
조: 첫 책에서 프로젝트를 개념적으로 정리하기보다 나열하는 방식으로 보여줬다면, 이 책에서는 느슨한 프레임을 통해 프로젝트를 조명하고자 했다. 네 가지 키워드가 동떨어진 채로 존재하는 개념은 아니다. 각 키워드는 유사한 관계성을 가지기도 하고, 반대의 의미를 지닐 때도 있다. 결국은 땅에 대한 이야기로 수렴되는데, 땅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네 가지 어휘로 구분했다.
박: 네 가지 개념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달라.
조: ‘땅’을 넓게 바라본다면 빛과 바람, 식물 등을 내포하는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계에 따라 땅의 모습이 달라진다. 또한 경사가 많은 지형으로, 서울만 하더라도 주변을 돌아보면 다 산이고 언덕이다. 이러한 땅의 특성이 건축에 반영되어 있다. ‘플랫폼’은 땅에서 띄워진 표면으로, 제2의 땅인 세컨드 그라운드를 일컫는다. 대표적인 예로 병산서원의 만대루나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꼽을 수 있다. 어떤 지점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관계를 형성하는 게 바로 플랫폼이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보면 띄워진 플랫폼 아래로 자연이 그대로 흐른다. 서양 현대건축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이자 우리나라 전통건축에서도 주목해온 방식이다. 플랫폼은 땅과의 관계에 착안해 건축의 형태나 공간적인 흐름을 구성하는 일로, 땅의 성격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스크린’은 주변의 콘텍스트, 즉 맥락과 관계한다. 주변이 너무 혼란스럽거나 형태적으로 여러 기능을 담아야 할 때 안팎의 관계를 고려해 스크린을 구성한다. 프라이버시 보장을 위한 스크린부터 빛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바람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 스크린까지, 주어진 땅에 따라 다양한 소재와 기능의 스크린을 적용할 수 있다. ‘매스’는 땅에 뿌리내리고 안정적으로 정착한 덩어리로서의 의미가 강조된다. 매스 자체가 주요하게 다루어지기보다, 땅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했는지가 흥미로운 지점이다. 예컨대 청담 에이바이봄(2021)의 경우, 오프닝을 4.5m로 크게 두어 도로에서 건물 안이 들여다보이도록 했다. 또한 도로를 향해 일곱 개의 오프닝을 두어 주변 환경과 더불어 멀리 조망되는 하늘이나 풍경을 담았다. 강남의 청담동이라는 콘텍스트가 없다시피 한 땅에서 저마다의 기능과 형태를 드러내는 건축물에 둘러싸여 있지만,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과 건물을 염두에 두고 매스를 계획한 것이다.
이 책은 시공과 디테일 도면을 핵심적으로 다룬다.
박: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시공과 디테일 도면을 핵심적으로 다룬다는 것이다. 시공, 디테일에 주목해 재료 실험을 꾸준히 해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BCHO 파트너스에게 어떤 의미인가?
조: 개인적인 성향일 수도, 작업 스타일일 수도 있는데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바라보려는 태도를 줄곧 지녀왔다. 이는 돌에 새겨진 글 자체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금석학의 입장과도 맞닿아 있다. 돌에 새겨진 글자가 한두 자 없어졌다고 이를 의역해 해석하는 입장과는 구분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추사 김정희도 실질적이고 실재적인 것을 존중했다. 건필법으로 그린 세한도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한편 건축사가 케네스 프램튼은 『Studies in Tectonic Culture(텍토닉 문화의 연구)』(2001)에서 텍토닉이 각기 다른 문화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분석했다. 서양에서는 돌을 쌓을 때 시멘트나 모르타르를 사용하는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돌 위에 돌을 쌓아 올릴 뿐이다. 수원화성을 보면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러한 관점에서 건축 작업을 할 때 형태를 그려내는 일뿐 아니라, 어떤 재료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 구축할 것인지까지를 적극적으로 고민한다. 물성을 점점 잃어가는 시대지만, 본질은 있는 그대로의 현상에 있다고 본다. 우리가 추구하는 올바르고 성실한 건축이 바로 그 지점에 있다. 그것이 곧 건축을 이루는 과정인 시공과 재료를 중요시하는 이유다.
박: 건축가 중에서도 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많이 낸 축에 속한다. 책이라는 매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졌는지 궁금하다.
조: 첫 작품집을 낼 때는 그간의 작업을 도큐멘테이션 하는 의미가 컸다. 두 번째 작품집 역시 기존 작업을 더 잘 읽을 수 있게 하는 틀을 마련해 정리한 셈이다. 호주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 같은 경우는 그간의 작업 가운데 지어지지 않은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사무소 내부 문서에서조차 소실되어가는 작업을 남겨두려는 의도로 출판사에 제안했다. 올해 영국에서 출간된 에세이집 『Byoung Cho: My Life as an Architect in Seoul(조병수: 서울 건축가로서의 삶)』(2023)은 건축가로 성장하며 바라본 서울이라는 도시와 건축을 하게 된 배경을 다루는 책이다. 지금까지 낸 책 모두 어떤 건축을 하겠다는 선언보다는 도큐멘테이션의 성격에 가깝다.
박: 출판된 여러 책 가운데 이 책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BCHO 파트너스가 걸어온 여정을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조: 출판 작업이 단순한 기록에 불과할지라도, 모아놓고 보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해온 작업들에서, 혹은 그 작업들 사이에서 하고자 한 건축이 무엇인지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첫 책과 이 책을 합치면 40개가 넘는 프로젝트가 도큐멘테이션 됐다. 적지 않은 양인데, 책을 들추어보는 이들이 저마다의 관점으로 프로젝트를 해석해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특히 학창 시절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며 꾸준히 작업을 비평해온 배형민(서울시립대학교 교수)이 이번 작품집에 에세이를 썼는데, 일종의 주관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작품집에 거시적인 관점으로 시선을 더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나아가 책을 엮는 과정에서 작업과 저술 활동 간의 접점을 찾기도 한다. 땅과 막에 대해 쓴 글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를 준비하며 많이 느꼈다.
박: 올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았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땅의 도시, 땅의 건축’이었다. 그간 땅에 대해 가져온 생각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리라 짐작한다.
조: 땅이라는 개념도 의미체계가 다양하다. 책에서 다루는 땅이 ‘earth’라면, 비엔날레에서 대상으로 한 땅은 ‘land’다. ‘land’는 플랫폼으로서의 의미가 강조된다. 땅을 이루는 흙 자체의 물성보다는 형태적인 면과 땅의 흐름을 염두에 두었다. ‘landscape’를 말할 때도 ‘land’가 포함된다. 도시의 마스터플랜 관점에서 볼 때 서울이 많은 땅을 잃어버렸다는 데 문제의식을 갖고, 그것을 실질적으로 극복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았다.
박: 개소 후 15년 뒤 첫 책을 냈고, 그로부터 약 15년이 지난 시점에 두 번째 책을 엮었다. 세 번째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앞으로의 15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어떤 건축을 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조: 이번 책에는 실리지 않는데, 현재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인적 없이 버려진 창고 건물과 주택을 새롭게 개조하는 작업으로, 굉장히 재미있고 의미 있는 프로젝트다. 작은 것들 속에서 의미와 답을 찾는 작업들 또한 큰 스케일이나 공공의 프로젝트 못지않게 여기며 꾸준히 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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