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협소한 공간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 생존을 위해 필수다. 공간의 제약, 인구 과잉은 도시 조직을 언제나 통제되거나 대체되어야 하는 생체 기관으로 만든다. 도쿄의 개인 주택 회전기간은 27년이다. 재건축 이론은 문화적 화두이자 동시에 생존의 문제다. 영속성과 대체성은 일본의 건축가에게 피할 수 없는 주제다.
이시가미 준야는 그가 속한 젊은 일본 건축가 세대에서도 독보적이며 창의적이고 시적이며, 급진적이고 물리적이다. 중력, 사이 공간, 식물은 그가 작업에서 잘 이용하는 도구다. 모호성과 내부와 외부의 변증법적 해석을 작업의 원동력으로 삼는 이시가미는 세계 건축계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올라서고 있다.
이시가미 준야는 몇 개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건축상을 받았다. 비범하고 유망한 젊은 건축가로 급부상하면서 선배 세대 건축가들이 경쟁자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일본 건축은 메타볼리즘 시대 이후 수십 년 동안 내외부를 아우르는 구조, 즉 콘크리트 등의 무거운 소재를 지양하는 구조와 이의 변증법적 해석에 관심을 보여왔다. 소재의 사용(반 시게루의 판지 튜브처럼)이 반드시 구조로 귀결되거나 아름다운 목공 기술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가벼운 소재, 목재, 얇은 강판, 바위, 식물에서 찾아낸 대안은 일본 건축가들을 현대건축의 선봉에 세워놓았다. 이시가미의 경우, 커다란 종이 위에 색연필로 식물과 나무를 하나하나 정교하면서도 소박하게 그린 그의 초창기 연구 드로잉에 자연과 그 구성 요소를 소중히 대하는 태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그의 카탈로그나 책들은 마치 식물 표본집과 같은 섬세한 드로잉, 가는 선, 세밀한 색상 표현과 시리얼리즘으로 가득하다. 2004년 시작돼 2008년 완공된 카나가와 공업대학교 부속 교육시설 KAIT 공방(KAIT Workshop)의 구조와 개념은 이시가미의 언어를 잘 드러낸다. 2,000m2 면적의 직사각형 건물은 학생들이 작업을 하거나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된다. 건물의 초기 개념을 담은 이미지는 숲에서 가져온 것으로, 아무렇게나 서 있는 나무들의 모습을 단순한 기둥 형태의 수직 장대로 표현하고 있다. 숲 속에서는 나무들의 배치 원리를 이해할 수 없다. 한쪽은 빽빽한 선들을, 다른 쪽은 더 개방적이고 넉넉하게 자리 잡은 선들을 보여줄 뿐이다. 형태, 두께, 방향이 서로 다른 305개 기둥은 평평하고, 채광용 구멍이 뚫려 있는 지붕을 받치고 있다. 기둥의 배치는 많은 학생들이 과제나 강의를 위해 한데 모일 수 있을 정도로 넓게 열린 공간을 확보해준다. 모든 외벽은 유리벽으로 구성했다. 낮 동안의 빛은 건물 내 명암의 결을 결정해주고, 보통 야외에서나 찾을 수 있는 자연친화적 환경을 실내에 조성해준다.
KAIT 공방은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 속과 같은 공간을 의도했다.
여러 해 동안 이시가미는 개인 또는 공공 건축 프로젝트보다 전시나 ‘예술 작품’ 제작에 더 많이 참여했다. 2011년 그는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공기와 같은 건축(Architecture as Air)’이라는 건축 설치 작품을 선보였는데 무게 300g에 불과한 53개의 매우 가느다란 기둥들이 얇디 얇은 빔을 지지하며 커브 갤러리 폭을 따라 3.8m 높이의 주랑을 형성했다. 그와 비슷한 작품을 2008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에서도 선보였다. 이시가미는 수평적 공간에 맞춰 크기 9.5 × 2.6 × 1.1m에 상판의 두께가 3mm에 불과한 탁자를 만들기도 했다. 평평하고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강철 상판을 한 바퀴 반이나 극적으로 구부렸다. 탁자는 그림(긴 선과 네 개의 수직선)이자 건축(네 개의 기둥과 지붕)이며, 풍경을 품은 대지다. 일련의 전시에서 얻은 명성은 건축주를 끌어모았고, 현재 이시가미는 열 건의 신축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2008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도심형 KAIT 공방과는 대조를 이루는, 일본 토치기 현의 식물원 아트 비오톱(Botanical Farm Garden Art Biotop)은 올해 여름 완공 예정이며, 자연의 산물처럼 보이는 야외 프로젝트다. 프로젝트의 목적은 6만m2 면적의 환경을 해체하고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다. 호텔과 정원이라는 이원적 프로그램이 두 개의 필지에 들어간다. 이전에 호텔 쪽 필지는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고, 정원 쪽은 트인 땅이었다. 이시가미는 빽빽이 서 있는 나무들을 모두 뽑아내 다시 심는 방식으로 두 필지를 바꾸기로 했다. 정원 쪽 땅은 본래 논이었는데 남아 있던 관개수로를 보수해 재활용했다. 이시가미가 처음에 그린 이미지는 나무들 사이로 퍼져나가는 작은 연못들의 군락이었다. 실제로도 연못 수면과 이끼로 덮인 지면이 같은 높이가 되도록 160개의 연못을 파냈다. 길 위의 돌들은 정원을 산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거울처럼 비치는 연못 수면의 모습은 환상적이다. 완벽하게 연출된 디자인을 통해 한 폭의 자연이 효율적인 방식으로 재현된 것이다. 인쇄물로 만들어낸 건축물의 이미지가 너무 완벽할 때 실제 경험이 그것을 넘어서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실패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가능하다. 변화하는 빛 한가운데, 나무와 식물들 사이, 바위와 경사 지붕 아래 머물러 있을 때의 공간적 경험은 마법 같은 특별한 순간이 되기도 하고 혹은 길들여져 익숙한 거주 공간이 순수한 안락함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식물 주택은 도심의 건물 속에서도 자연을 느끼고 누릴 수 있게 자연을 실내로 옮겼다.
필연적으로 일본 건축가들은 교외 단독주택이라는 문제(어디에나 존재하는 문제지만 이 정도로 작은 스케일인 경우는 없다)와 씨름하게 된다. 식물 주택(House of Plants, 2010~2012)은 이시가미의 작업 중에서 흔치 않은 단독주택 사례다. 필지 면적은 100m2인데 주택 면적이 전체를 차지하게 함으로써 한 치의 땅도 낭비하지 않았다. 모르타르 마감 패널을 철골 프레임에 매달았다. 이들은 커다란 창들과 함께 건물 외벽을 구성한다. 건물의 1층 바닥 일부를 흙으로 덮고 작은 숲 형태로 수풀을 심어 이층 높이 천장고의 거실 내부에서 마치 축소된 숲처럼 자라나게 했다. 완전히 동떨어진 도심의 건물 속에서도 자연을 느끼고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구현하기 위해 자연을 실내로 옮긴 것이다. 중층에 자리하고 있어 사다리로 올라가야 하는 또 다른 거실은 마치 식물들 위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부와 외부의 관계를 건축주에게 유리하게 바꾸어서 계절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빛과 분위기를 그가 향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장소의 성격은 건축가에게 프로그램보다도 더 크고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이 되곤 한다. 건축가는 바다, 산악 암반, 숲과 같은 다양한 유형의 장소에서 개념을 도출하기 때문이다. 덴마크 노르드하븐 항구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평화의 집(House of Peace) 프로젝트는 바다가 건축물의 주요 성격이다. 바다 쪽에서는 해저 바닥에 고정되어 있는 건물이 소금물을 천연 바닥처럼 사용하고, 곡선형 콘크리트 천장은 구름의 형상을 그려낸다. 바다의 풍경이란 이처럼 간결하다. 해저 터널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사색의 공간이자 자연과 인간이 빚어낸 풍경을 감상하는 곳이다. 방문객은 작은 배를 타고 3,000m2 면적의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 바다가 적극적인 건축의 구성 요소로서, 바닷물이 태양의 열기를 흡수해 온도를 조절하고 난방용 에너지를 저장해두기도 한다. 바위는 때로 크고 둥근 공처럼 놓여 있을 뿐이지만 필지 위에 흩어놓으면 건축에 쓰이는 구조물 같기도 하다. 이시가미는 바위를 실제 건축 재료이자 그 자체로 직접적 기능을 지시해주는 단서로 활용했다.
여덟 채의 빌라에서 기존에 있던 산의 바위들이 건물의 구조로 쓰인다. / 여덟 채의 빌라 모형
2016년부터 진행된 여덟 채의 빌라(8 Villas) 프로젝트의 목표는 인근에 강이 있는 중국의 한 산악 지역에 여덟 채의 빌라를 짓는 것이었다. 자연환경 자체를 작업의 일부로 삼은 기획의 훌륭한 이점은 차후에 다른 부동산 개발업자가 지역 풍경을 바꾸어놓을 염려가 없다는 것이었다. 주변에 바위가 많았는데, 건축가는 그중 일부는 그대로 두고, 일부는 다른 곳으로 옮기고, 일부는 그 위치만 바꾸기로 했다. 이 바위들이 5,300m2 면적의 건물의 구조가 되었다. 프로그램에 지정된 대로 여덟 채의 주택을 분리하는 대신 이시가미는 바위에 고정된 길이 300m의 긴 지붕 아래 그들을 모아놓았다. 지붕에는 햇빛을 끌어들이기 위한 커다란 창이 여러 개 나 있고, 긴 유리벽은 건물의 경계를 정의해준다. 내부에는 콘크리트 벽을 세워 공간을 여덟 세대로 분리했다. 여기서도 자연 요소, 식물, 투명성, 끊임없이 변화하는 빛의 연출이 이시가미 특유의 화법을 완성해준다. 자연과 재료 사이, 거주자와 외부 공간 사이, 식물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은 이시가미의 작업에 언제나 존재한다. 이시가미 준야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식을 재정립하고 내부와 외부를 아우르는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며 인간과 건축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인간과 자연을 다시 연결해야 하고, 중력을 인간의 삶에서 분리할 수 없는 자연의 힘으로 이해해야 한다. <진행 김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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