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3년 9월호 (통권 670호)
텍스타일은 건축재료가 될 수 있을까? 유연하고 가벼운 성질을 지닌 텍스타일은 견고하고 고정적인 건축의 대척점에서 오랫동안 구축의 재료로 인식되지 못했다. 건축과 텍스타일을 전공하고 텍스타일을 통해 건축·공간에 개입하는 작업을 시도해온 모리야마 아카네(스튜디오 아카네 모리야마 대표)는 텍스타일이 인테리어 요소에 머무르지 않고 건축을 이루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겹의 천으로, 때로는 겹겹의 천이 만드는 볼륨으로 공간에 다양한 스케일을 구현하는 모리야마에게 건축재료이자 구축 방식으로서 텍스타일의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 모리야마 아카네 스튜디오 아카네 모리야마 대표 × 김지아 기자
김지아(김): 텍스타일은 콘크리트, 유리, 벽돌, 금속 등 견고한 재료와 대비되는 성질을 가져 건축재료로 배제되거나 부차적으로 여겨져 왔다. 어떤 계기로 텍스타일에 주목하게 됐나?
모리야마 아카네(모리야마): 어릴 적부터 공간에 관심이 많아 건축을 공부했다. 졸업 후 실무를 하며 디자인 언어를 확립해나가는 과정에서 건축재료로 텍스타일이 가진 잠재력을 발견했다. 텍스타일은 섬유의 종류, 방직 및 조직 방법(재봉, 뜨개질, 매듭 등), 염색, 프린팅 등 다양한 접근에 따라 수많은 변주가 가능하다. 또한 공간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가령 수천 겹의 천을 늘어뜨리면 더 이상 하나의 천 조각이 아니라 입체적인 볼륨을 이뤄 그 자체로 벽이나 천장, 바닥이 될 수 있다. 인류는 그간 텍스타일에 관한 풍부한 지식을 발전시켜왔지만, 건축 분야에서 텍스타일은 오랫동안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용되는 데 그쳤다. 텍스타일을 적절히 활용해 공간에 개입하면 건축과 조경, 예술의 경계에서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 흥미를 느꼈다.
김: 텍스타일 중에서도 커튼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리야마: 커튼은 공간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단순하고 경쾌한 제스처다. 천 한 장으로도 공간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바닥에 까는 러그와 가구에 덧입히는 커버 등과 비교했을 때 커튼은 유연한 특성에 기반해 보다 적극적으로 공간에 개입할 여지가 있다. 또한 모든 장소마다 맥락이 달라 프로젝트별로 공간의 숨겨진 특성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오 하우스를 위한 커튼’(2009) 설치 전경. 넓이 2m, 높이 7.1m 크기의 전면 창을 덮는 커튼은 거주자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고, 창호의 단열 성능을 보완한다. / ⓒTakumi Ota
김: 첫 커미션 작업 ‘오 하우스를 위한 커튼’(2009)을 시작으로 주택, 교회, 학교, 사무실 등 다양한 공간의 커튼을 디자인했다. 많은 프로젝트에서 커튼이 단순히 문이나 칸막이로 기능하거나 해를 가리는 용도 이상으로 건축·공간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한다. 커튼이 벽, 기둥, 천장, 바닥, 지붕 등 기존의 단단하고 고정적인 건축 요소를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다고 보는가?
모리야마: 텍스타일을 건축적으로 활용하면 기존 건축 부재에 대한 선입견을 깰 수 있다. 가령 하중을 견디지 못하는 ‘벽’을 벽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텍스타일을 사용하면 한없이 부드럽고 투명하면서도 두꺼운 ‘벽’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몇몇 주택과 갤러리에 텍스타일 벽을 구현한 바 있다. 기존의 견고한 건축 요소는 텍스타일이 가지지 않은 재료적 특성을 기반으로 하기에, 그것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건축 부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텍스타일은 무겁고 단단하지 않아 운반에 용이하고, 색감과 패턴을 이용한 흥미로운 변주가 가능하다. 또한 규모에 구애받지 않고 작은 공간부터 큰 공간까지 다채롭게 디자인할 수 있다.
김: 건물이 점점 더 가벼워져야 한다는 시대 흐름에 따라 건축재료로서 텍스타일이 주목받고 있다.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모리야마: 물론 텍스타일은 건물의 경량화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텍스타일의 수명도 고려해야 한다. 30년 후 호텔에 설치된 수백만 미터의 방화용 폴리에스터 커튼은 어떻게 될까? 자본주의라는 현실에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비록 이 산업의 작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지만, 환경 문제의 대안을 찾기 위해 합리적인 순환 시스템을 모색하고 있다.
김: 커튼을 공간 디자인의 영역으로 본다면, 구축된 공간에 사후적으로 개입하는 일에 가깝다. 이러한 업의 범위와 영역이 갖는 가능성과 한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모리야마: 건축가와 협업할 때 가능한 사후적 개입은 지양하는 편이다. 건축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야 텍스타일을 활용한 대담한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무거운 벽을 만드는 대신 텍스타일 벽이라는 옵션을 고려해볼 수 있게 된다. 건축 작업이 거의 끝난 시점에 참여할 경우 유연성도 시간도 예산도 넉넉지 않아 작업이 제한적이다.
‘블루 하우스를 위한 커튼’(2021) 설치 전경. 일본 시즈오카의 한 주택에 벽마다 켜켜이 설치된 커튼은 공간을 구획하는 요소로 활용된다. / ©Kenta Hasegawa
김: 프로젝트 초기 단계부터 텍스타일 작업이 참여하는 프로세스는 흔치 않다. 건축가와의 협업 과정이 궁금하다.
모리야마: 건축과 인테리어 프로젝트에서 오직 커튼만을 위해 발주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간의 프로젝트는 기획 단계에 연락을 해온 건축가와 클라이언트를 만나 이상적인 방식으로 협업할 수 있었다. 작업은 전반적인 건축 계획과 모델, 아이디어 등의 공유가 이루어지면, 텍스타일 스케치와 패브릭 샘플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설계에서 시공까지 대략 1년 반에서 3년 정도 소요된다. 일본과 유럽의 다양한 지역에서 프로젝트를 전개하기에 클라이언트를 직접 만나기 어려운 상황도 있다. 그 경우 프로젝트마다 지닌 공간적 조건을 최대한 고려해 작은 사이즈부터 큰 사이즈까지 원단 샘플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텍스타일은 어떤 환경에 놓이는지에 따라 그 모습이 확연히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김: 건축가가 작업을 의뢰할 때와 건축주가 의뢰할 때 작업 방식에 차이가 있나?
모리야마: 건축가든 건축주든 클라이언트와는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일하고 소통한다. 한 배를 탄 사람에게 최대한 명확하게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클라이언트는 재봉사, 시공자, 건축가, 구조 엔지니어와 같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항해하는 일원 중 하나다.
김: 디자인에서 제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을 도맡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건축의 관점에서 보면 설계부터 시공까지 담당하는 셈이다.
모리야마: 스튜디오를 개소한 2009년부터 현재까지 1인 스튜디오로 운영 중이다. 작업이 많아질 때면 어시스턴트나 협업 파트너가 함께하기도 한다. 주로 일본과 스웨덴을 기반으로 활동하다 보니, 두 국가에 오랫동안 작업을 함께해온 장인 재봉사들과 긴밀한 협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디자인은 전적으로 디자이너인 내가 담당하지만, 제작에는 재봉사 등 협업자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그들은 작품을 어떻게 만들고, 설치하고, 운반할 수 있는지에 관해 구체적이고도 적절한 조언을 해준다. 디자인에 있어서는 건축과 마찬가지로 스케치를 하고, 치수를 설정하고 도면을 그린다. 다만 스튜디오 차원에서 재료 실험이 가능하고 작은 스케일의 작업은 직접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건축과 차이가 있다.
김: 염색, 프린팅, 방직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직물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건축과 비교했을 때 텍스타일 작업이 갖는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모리야마: 텍스타일 작업에서 염색은 분자의 화학적 반응을, 직조는 수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다. 모든 천연 섬유는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기에 매 작업 과정을 거쳐 다양한 결과물이 탄생한다. 또한 중력이나 바람이라는 변수가 존재하므로 텍스타일의 형태를 정확히 계획하는 일은 어렵다. 이렇듯 결과물을 통제할 수 없는 지점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온다.
텍스타일 염색 과정. 텍스타일은 흡읍, 차양, 공간 구획 등 물리적 기능 외에도 시각적, 촉각적 경험과 연관되어 정서적 기능을 지닌다. 스튜디오 아카네 모리야마의 작업은 색과 질감이 강조되어 이러한 기능을 더욱 증폭한다.
김: 스톡홀름에 기반을 두고 일본, 스웨덴, 미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지역과 문화, 기후에 따라 작업이 달라지는 지점이 있는가?
모리야마: 주택 작업을 예로 들자면 일본에서는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스웨덴에서는 프라이버시보다 분위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자연광이 텍스타일의 색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일본보다 위도가 높은 스웨덴에서는 북유럽의 기후 환경을 기반으로 한 내외부 공간의 독특한 분위기나 뉘앙스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거스르지 않는 색상을 택한다.
김: 환경에 따라 면, 린넨, 울, 나일론, 실크 등의 다양한 재료와 색을 사용해 빛, 질감, 분위기 등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텍스타일을 통해 어떤 공간적 경험을 의도하는가?
모리야마: 사람들이 저마다의 감각으로 공간을 경험하기를 원한다. 바람이나 빛, 색과 재질에서 오는 감각은 언어화되기 이전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단순한 즐거움이다. 이는 건축에서 경험할 수 있는 웅장함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학창 시절 홋카이도에서 물 위를 떠내려가는 얼음덩이를 본 기억이 생생한데, 이렇게나 작은 지구에 자연의 일부로 살고 있다는 감각이 선명하게 와닿은 순간이었다. 텍스타일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바도 그와 맞닿아 있다. 사소한 일상일지라도 매 순간 다르게 흐르는 시공간을 잠시나마 포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 커미션 작업 외에도 텍스타일을 소재로 한 설치 작업을 전개해왔다. ‘숲속의 신기루’(2016)는 보이지 않는 바람과 동식물의 움직임에 반응해 시간의 흐름을 포착한다면, ‘아조리안 스펙트럼 범위’(2017)는 미술관 안뜰을 가로지르며 도시의 공공 공간과 장소성에 대한 탐구를 담고 있다. 텍스타일을 통해 도시 공간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고자 하는가?
모리야마: 스톡홀름 중앙 광장인 세르겔 광장에 ‘12632g’(2022)라는 설치 작업을 할 때 거트루드 스타인이 쓴 다음 문장을 염두에 두었다. “결국 사람들은 높거나 낮은 하늘, 흐리거나 쾌청한 공기, 불거나 불지 않는 바람에 따라 산다. 그런 것에 의해 인간은 좌우되고, 우리가 만드는 예술, 하는 일, 먹고 마시는 방식, 교육 방법 등이 만들어진다.” 이렇듯 공기는 삶의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 그 연장선에서 광장에 긴 천을 배치해 공기를 시각화하고, 광장을 지나는 사람들이 직물의 움직임을 통해 공기를 목격할 수 있게 했다. 가볍고 유연한 텍스타일은 도시 공간을 가로지르며 인식의 틈에 개입해 기존의 단단한 사고를 느슨하게 만든다. 장소와 맥락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텍스타일은 빛, 그림자, 색감, 질감 등 미묘한 요소를 통해 새로운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데 기여한다.
‘아조리안 스펙트럼 범위’(2017) 설치 전경. 포르투갈 아조레스 제도의 현대미술관 안뜰에 설치된 작품은 미술관과 도시의 경계에서 예술의 영역을 확장한다. 방문객의 이동에 따라 모양과 색상이 점차 바뀌며 스케일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인식을 선사한다.
김: 2023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일본관 정원에 ‘텍스타일 지붕’을 선보였다. 요시자카 타카마사가 일본관 설계 당시 베니스의 빛과 그림자에 영감을 받아 차양과 천장 루버를 구상한 데서 착안해, 재활용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천으로 가볍고 유연한 구조를 구현했다. 일반적인 지붕이나 캐노피처럼 위로 솟은 형태가 아니라, 나무 사이에 걸쳐 비교적 낮은 높이로 늘어져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모리야마: 텍스타일을 통해 파빌리온 입구로 향하는 길을 강조하고자 했다. 정원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면 지붕의 천장이 점차 낮아지는데, 방문객은 점진적으로 아늑한 분위기에 들어서게 된다. 그 자리에서 몇 계단을 더 오르면 건물 입구에 도달할 수 있다. 이는 일본 정원의 찻집에서 경험하는 시퀀스와 유사하다. 야외의 지붕 아래 앉아 있다가 실내로 들어서는 이 동선을 전시의 일부로 계획했다.
‘텍스타일 지붕’(2023) 설치 전경. 2023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정원에 설치한 텍스타일 지붕은 요시자카 타카마사가 일본관 설계 당시 베니스의 빛과 그림자에 영감을 받아 차양과 천장 루버를 구상한 데서 착안했다. / ©Sandro Sulaberidze
김: 텍스타일 지붕은 한 겹의 천이 아니라, 여러 겹을 격자구조로 겹쳐 만든 3차원의 구조물이다. 구축 방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모리야마: 텍스타일 지붕은 직물이 입체적으로 얽힌 겹으로 구성됐다. 100m 너비의 재활용 폴리에스테르를 수작업으로 꿰매 100㎡의 격자구조를 만들었다. 최소 반년 동안 우기와 열풍을 견딜 수 있는 유연한 지붕을 만드는 것이 과제였다. 이에 바람과 비를 통과시키면서도 보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연출할 수 있는 격자구조를 고안했다. 구조를 지탱하는 것은 물에 젖지 않는 76개의 플루오르화탄소 낚싯줄이다. 이 지붕에는 금속 와이어나 딱딱한 구조물이 없다. 이렇듯 재료가 가볍고 유연해 일본에서 기내 수화물로 운반이 가능했다. 또한 오직 중력으로만 형태가 갖춰지도록 하기 위해 직물의 모양을 매만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주요하게 고려한 점은 정원에 있는 기존 나무들과의 관계다. 비엔날레 전시는 매년 바뀌지만 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 서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직물이 나무를 손상시키지 않고 관통하게 했다. 텍스타일 지붕은 구조 엔지니어, 재봉사, 건축가, 직공, 공예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한 결과물이다.
텍스타일 지붕은 직물이 입체적으로 얽힌 겹으로 구성됐다. 100m 너비의 재활용 폴리에스테르를 수작업으로 꿰매 100㎡의 격자구조를 만들었다. / ⓒSandro Sulaberid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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