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3년 5월호 (통권 666호)
현상 1. 방문의 목적이 되는
현상 2. 지역과 사람을 잇는
현상 3. 경험을 직조하는
경험경제, 경험소비, 경험설계, 경험마케팅…. 온갖 단어에 경험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있는 시대에, 카페는 커피의 맛 이상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더 새롭고, 특별하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경험으로. 반복되는 일상에서 바다를 건너지는 못해도 카페에 갈 시간은 있는 현대인과 셀 수 없이 많은 카페가 공존하는 도시라면 그 요구는 더욱 선명해진다. 여기서 건축가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나가사카 조(스키마타 아키텍츠 대표)는 세계 여러 도시로 영역을 확장 중인 대형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 커피의 조력자로 브랜드의 공간 경험을 주조하고 있다. 또한 더퍼스트펭귄, 패브리커, 씨오엠과 넨도는 건축뿐 아니라 기획, 브랜딩, 가구, 예술 등 저마다의 도구로 도시 속에 고유한 카페 경험을 빚어내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현상 3에서는 도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도생하고 있는 카페의 이야기를 건축가의 작업에 한정 짓지 않고 살펴본다.
카페 어니언 광장시장점
지역, 지도를 다시 그리는: 패브리커
인터뷰 김동규, 김성조 패브리커 공동대표 × 윤예림 기자
윤예림(윤): 카페 어니언의 성수점(2016)은 폐공장을, 미아점(2018)은 우체국을, 안국점(2019)은 한옥을 개조했고 광장시장점(2022)은 전통시장 안에 자리를 잡았다. 각기 다른 지역의 입지에 어떻게 달리 접근했나?
김동규, 김성조(패브리커): 카페 어니언은 지역에 따라 공간과 콘텐츠를 달리하는 브랜드다. 문화와 예술, 영감을 나누고자 하는 카페 어니언의 가치관이 잘 전달될 수 있는 공간을 찾고, 만남의 순간을 항상 기다린다. 가령 미아점의 경우 정보를 모으고 분산하는 역할을 했던 우체국의 장소성이 어니언의 철학을 담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는 농부시장 마르쉐 등의 브랜드와 협업해 지역을 소개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편 공간 디자인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쌓여온 세월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성수점은 50여 년에 걸쳐 슈퍼, 식당, 가정집, 정비소, 공장으로 변형되어온 공간의 흔적을 살리며 재생시키는 것에 집중했다. 안국점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쓰임이 바뀌며 거추장스러운 껍데기를 잔뜩 쓴 한옥이 그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안국의 한옥은 서울의 커피 문화를 대변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좌식 구조에서 느끼는 창과 천장의 높이를 입식 구조에서도 경험하도록 일부 바닥을 낮췄는데, 100년 전의 한옥이 의도한 사람과 건축물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려 한 것이다. 광장시장점은 기존 노포와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했다. 외벽을 철거해 내외부의 경계를 없앴고, 시장이 가진 고유의 특성과 패턴들을 간판, 가구, 메뉴 등의 디자인으로 재해석했다.
카페 어니언 안국점
윤: 광장시장점의 고장난 듯 깜빡거리는 간판, 입구에 걸린 북어, 테이프가 감긴 플라스틱 의자 등과 같은 이미지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확산되며 많은 방문객을 불러모았다. 공간을 만드는 일과 장면을 만드는 일에는 차이가 있을 텐데, 이를 위한 접근법은 무엇인가?
패브리커: 못 믿을 수도 있겠지만, 그 두 가지를 구분하지 않는다. 의도한 메시지를 잘 전달할 기획을 현실로 구현하는 것에 최대한 집중한다. 광장시장에는 생경함, 토속성, 오래된 것, 서민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기존 노포의 감정을 해치지 않으면서 집객력 있는 새로운 콘텐츠가 시장에 들어온다면 옛것과 새것의 조화로 다양한 경험 거리가 생기고 시장에 방문할 이유를 만들어내리라 생각했다. 광장시장에는 동서남북에 출입구가 있는데, 각 입구에 새로운 고객의 트래픽을 만들어낸다면 시장 전체를 둘러보는 흐름을 만들 수 있다. 광장시장점이 비교적 인적이 드물었던 남1문 초입에 자리를 잡은 이유다. 반드시 방문할 콘텐츠가 시장의 끝지점에 있다면, 중간에 끊길 수 있었던 기존의 트래픽을 더 길게 유지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카페 어니언 광장시장점
윤: 지역의 맥락을 고려하는 일이 한편으로 지역 이미지를 소비하는 일이 될 수 있지 않나. 상업 공간이 지역과 상생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카페의 수명에 대해서는 어떤 고려를 하는가?
패브리커: 지역은 소비가 일어나는 상업 공간이 있어야 살고, 상업 공간은 지역적인 특색이 있어야 살아남는다. 이 관계성 안에서 보존과 개발의 균형을 잘 조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만의 분위기를 반영해 개발한 상업 공간이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차별성을 가진다면, 이로 인해 지역의 지속가능성이 확장된다고 생각한다. 2016년 문을 연 성수점은 어느새 8년이 됐다. 8년 전과 지금의 성수동은 많은 차이가 있지만, 성수점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으며 지역과 외부 고객의 비율이 가장 이상적인 지점이기도 하다. 지역성의 반영이 오랜 수명을 유지하는 카페의 가장 큰 요건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흔들리지 않는 브랜드의 가치관 안에서 시간과 함께 변화하는 지역과 시대의 요구를 반영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위)카페 어니언 성수점 (아래) 카페 어니언 미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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