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2023년 2월호 (통권 663호)
동천동 제이원(2013)
더 나은 내일
어른이 될 사람들을 위한 건축
최근 펀그라운드 진접(2022)을 완공하면서 지난 12년간 우리가 해왔던 프로젝트들이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한 축은 영유아,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공간에 대한 고민이었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어른들의 무관심, 편견, 욕심이 만들어낸 천편일률적인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이들이 공간의 주체적 사용자로서 능동적으로 성장하려면 어떤 공간이 필요할까? 첫 신축 프로젝트였던 동천동 제이원(2013, 「SPACE(공간)」 558호 참고)은 일련의 고민들 사이에서 나름의 답을 찾는 첫 번째 고리가 됐다. 당시 성행하던 ‘키즈카페’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상업 공간’으로서 뚜렷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특정 캐릭터를 테마로 조성하거나 형형색색의 갖가지 장난감과 놀이시설물을 설치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흙과 언덕, 지형 등 자연을 놀이터 삼아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을 가둬두는 시설이 아니라, 실내에서 비슷한 놀이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도 연속성을 가지고 자기주도적으로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내외부를 넘나드는 공간과 아이들의 오감을 자극하는 새로운 놀이 풍경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언덕 같은 인공 지형과 미로를 매트로 만들고, 입체적인 인지가 교차하는 그물망을 천장에 매단 공중 놀이터 등을 절제된 색감으로 채웠다. 새로운 유형의 키즈카페를 구상하기 위해 초기 기획에서부터 브랜딩, 건축 설계 및 감리, 시공 관리, 인테리어 디자인, 놀이공간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세심하게 진행했다. 실내 놀이터라는 상업 프로그램의 한계에 도전했던 동천동 제이원을 시작으로 영유아 및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형태의 작업이 이어졌다. 도토리소풍 제주원(2015)에서는 서울 강남에서 제주로 이전하는 IT기업을 위해 ‘자연과 함께하는 숲 어린이집’을 제안했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의 어린이 예술놀이터 ‘키움’ 개관전 〈공간놀이 : 안/ 밖/ 사이〉(2013)에서는 원형 기둥을 모티브로 안, 밖, 사이 공간을 넘나들며 어린이들이 공간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을 만들었다. 고양어린이박물관의 상설전 〈아기산책〉(2020)에서는 큰 원형의 중심 보이드와 경계로 이루어진 공간 안에서 36개월 미만의 영유아와 부모가 감각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일련의 작업은 사람과 자연, 어른과 아이 등 서로 다른 존재들이 새로운 관계를 경험하도록 고민한 결과였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의 ‘꿈을 담은 교실’(꿈담) 사업에 참여하면서 경직된 모습의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을 놀이와 네트워크 중심의 유연한 교육 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다양한 해법을 탐구했다. 청소년과 함께하는 ‘건축 교실’ 같은 강의나 디자인 워크숍에서는 아이들과 직접 소통을 시도하며 ‘성장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에 대한 생각의 고리를 이어왔다.
동천동 제이원(2013)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공간놀이 : 안/ 밖/ 사이〉(2013) 전시 전경
명징한 해법
공공 프로젝트가 성취해야 하는 여러 기본 가치들이 있다. 인지성과 접근성이 좋으면서 과시적이지 않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것. 동시에 자기만의 정체성이 주변에 스며들게 하는 것. 빛, 그림자, 바람, 재료의 물성 등 감각을 일깨우는 자연의 변화를 담아내고 이를 일상에서 접하는 건축적 요소로 치환하는 것. 이러한 여러 가치를 구현하려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섬세한 대처와 통합적인 문제해결 방안이 요구되며, 명쾌하고 구체적인 방법론과 상세한 드로잉이 필수적이다. 치수와 스케일에 민감해지고 실제 생산 가능한 방식의 검토와 최소·최대 규격(두께, 폭, 길이), 시뮬레이션, 구조적 특성과 계산, 접합부 상세와 전문 컨설턴트의 확인을 두루 거친다. 그와 동시에 이 모든 것들을 공공건축에서 실현 가능한 범위로 조정하는 작업까지 이뤄진다. 까망돌도서관(2021) 동측과 서측 입면에 설치된 5mm 두께의 사출 알루미늄 수직 곡면 루버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채광량을 조절하기 위해 적용된 곡면 루버는 반복적으로 규격과 상세 등을 섬세하게 조율하며 최종적으로 목업을 제작한 뒤 완성했다. 북측과 남측의 골성형판 노출콘크리트 입면은 FRP거푸집을 사용하여 시공 줄눈 이음새를 없애 고유의 물성이 드러나도록 했다. 펀그라운드 진접은 철근콘크리트조(코어부)와 철골조(프로그램 매스)로 이루어진 복합 구조에, 공기도 단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코어부 노출콘크리트의 빠른 시공과 높은 퀄리티를 위해 안쪽에 요철로 된 제물치장 거푸집을 덧붙인 갱폼을 층당 최대 높이로 특수 제작해 인양하는 공법을 적용했다. 이와 대비되는 철골구조부의 알루미늄 커튼월과 건식 벽체 시스템의 경우 멀리언과 일체화된 끝이 T자 형태인 8mm 알루미늄 후판을 사출 성형하여 결합했다. 이 결합부는 입면 디자인에 맞춰 3mm 알루미늄판을 밴딩한 후 절곡한 날개 부분에 숨겨서 볼트를 접합하여, 날카롭고 가벼운 인상을 주도록 했다. 도시는 복잡한 상황과 조건에 따른 상관 관계를 가진다. 건축가로서 정확하게 문제를 도출하고 최적화된 해법을 찾아내려 노력하지만 매번 쉽지 않다. 우리는 좀 더 구체적이고 전체 맥락을 관통하는 도시적·건축적 장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문제해결 과정에서 어떤 것에 집중할지 선택해나간다. 이미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합의 결과를 자명하게 증명해내는 기쁨은 우리의 건축적 태도가 일관성을 가지도록 지켜주는 원동력이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동천동 제이원(2013),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공간놀이 : 안/ 밖/ 사이〉(2013), 고양어린이박물관의 상설전 〈아기산책〉(2020)
하나의 여정, 성장하는 즐거움
모든 프로젝트는 하나의 긴 여행이다. 특히 공모에서 설계, 협의, 시공 과정을 거쳐 건물을 완성하는 공공의 프로세스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우리의 첫 공공 프로젝트는 서울시에서 발주했던 한 소규모 공공 시설의 지명공모였다. 그 결과물인 청소년누리터 위드(2017)는 단순하고 강력한 해법으로 골목 안에서 작동하는 공공 시설로 기획됐다. 동네에 이웃한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와 협업한 결과물을 중요한 건축 요소로 제안하여 지역과 연계되는 문화 거점이 될 수 있도록 했다. 근래에 다시 방문했을 때 여전히 잘 쓰이고 있어서 큰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흑석동 까망돌도서관은 일반 공모에서 당선된 첫 프로젝트다. 발주처는 물론 우리도 이례적인 규모와 복잡한 프로그램으로 인해 혹독한 훈련을 거쳤다. 당시 겪은 협의와 설득의 시간 덕분에 지난하고 어려운 공공 프로세스를 실감하게 됐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시도에 대한 용기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계기이기도 했다. 펀그라운드 진접은 제안공모로 진행된 공공 프로젝트였다. 발주처는 미래 인재를 위한 시설 확충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지만 구체적인 기획과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한편으로 우리에게는 기회였고, 서로의 역할을 다하며 혁신적인 시도를 함께 밀고 나갈 수 있었던 프로젝트였다. 당선작은 아니지만 서로아키텍츠와 공동으로 작업했던 해남 오시아노리조트(2019, 계획안)나, 경남 사회적경제혁신타운(2020, 계획안)은 주로 민간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숙박과 공유오피스 시설을 공공에서 제공할 때 어떻게 만들고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지 고민한 결과라 나름의 큰 의미가 있었다.
우리는 과정 속에 있다. 완벽한 답을 내놓을 수도 없고,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 지금도 우리는 실시설계의 마지막 관문을 어렵게 넘기고 있는 춘천 상상어울림센터와 이제 막 설계를 시작한 매송 주민편익시설 등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당선의 기쁨은 잠시고 이내 대면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유연하게 풀어가면서 방향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계획하는 대부분의 공간은 커뮤니티를 위한 편의시설 내지는 문화시설이다. 누구나 오고 가며 편하게 머물 수 있기를, 일상 공간 경험의 가치가 녹아 있기를, 주변에 긍정적인 변화의 흐름을 만드는 곳이 되기를 바라며 작업하고 있다. 작업 여정 속에서 매번 사용자들이 교감을 나누고 상호작용하며 건강한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가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글 신호섭, 신경미 / 진행 방유경 기자)
고양어린이박물관의 상설전 〈아기산책〉(2020) / 자료제공 신아키텍츠
펀그라운드 진접(2022) ⓒ 진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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