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인터뷰 김사라 다이아거날 써츠 공동대표 × 김예람 기자
경의선숲길 옆에서 지내요
김예람: 사무실이 굉장히 깔끔하네요.
김사라: 보통은 모형을 만들거나 이런저런 테스트를 하느라 공간이 어질러져 있는데 인터뷰하러 오신다고 해서 부랴부랴 정리했어요.
김예람: 효창동에서 신수동으로 이사하면서 인테리어를 새로 하셨다고 들었어요.
김사라: 엄청 많은 공사는 아니었어요. 가벽을 털어내고 페인트칠과 배선 작업을 좀 했죠. 공간보다는 가구에 신경을 더 많이 쓴 것 같아요. 이사를 하더라도 가구는 챙길 수 있으니까요. (웃음)
김예람: 사무실 가구가 예뻐서 판매하셔도 될 것 같아요.
김사라: 간혹 클라이언트가 사무실에 오기도 하는데요. 저희가 디자인해서 사용하고 있는 가구를 보여주면서 이런 스타일의 가구를 제작할 거라고 설명해요. 가구에 사무소의 취향과 설득 전략이 반반 담겨 있는 셈이죠.
김예람: 사무실 위치도 너무 좋아요. 몇 발자국만 걸으면 바로 공원이 있잖아요.
김사라: 발품을 팔고 동네를 정하는 데 거의 6개월을 쓴 것 같아요. 작업 현장에 빨리 가기 위해서 용산구 근처로 사무 공간을 찾았어요. 다행히 예전 사무실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되는 거리에 있는 집주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이 공간을 찾았죠.
ⓒKim Yeram
다이아거날 써츠예요
김예람: 소장님은 독립을 일찍 하신 편인가요?
김사라: 실무 경력을 5~6년 정도 쌓다가 독립했는데, 예전 사무소 동료들보다 이른 축에 속하는 것 같아요.
김예람: 혼자서 개소했을 때 두렵진 않으셨어요?
김사라: 두렵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는 힘들었어요. 방패막이 없는데 정면으로 맞바람이 강하게 불더라고요. (웃음)
김예람: 시작하자마자 일이 들어왔나요?
김사라: 제가 딱 2013년 12월 31일까지 회사를 다녔어요. 곧바로 개소하지는 않았고 홍익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어요. 실무를 하면서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운이 좋게 학교로 돌아가서 공부했던 내용을 되돌아볼 수 있었죠. 2014년 가을에는 덴마크 아르후스 건축대학교와 미국 하와이건축대학교에서도 강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요.
김예람: 당시 학생을 가르치면서 설계 작업도 병행하셨나요?
김사라: 마포 석유비축기지 국제현상설계공모에 참가했어요. 비슷한 시기에 독립한 아키후드 건축사사무소의 강우현, 강영진 소장님과 같이 작업했어요.
김예람: 지난 릴레이 인터뷰의 주인공인 이다미 소장님도 서울공예박물관 설계공모(2016)를 계기로 독립하셨어요. 여전히 공모전이 커리어의 새로운 페이지를 여는 건축가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사라: 사실 저는 공모전에 큰 의미를 두기보다는 설계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참가했어요. 지금도 지명초청 방식이 아니면 설계공모에 잘 참여하지 않는 걸요.
김예람: 2015년, ‘지붕 이은 집’을 설계하면서 강소진 소장님이 합류하셨어요. 그때 사무소 이름도 함께 결정하신 건가요?
김사라: 사무소명은 그전에 있었어요. 2014년에 명함을 만들면서 한 동안 이름을 고민했는데, 몇 가지 후보를 추려서 강소장님께 어떤 게 좋은지 물어봤죠.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긴 것 같아요. 합류 시점이 다음 달이 될지, 2년 후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름을 같이 고르다니 말이에요. (웃음)
김예람: 고심해서 이름을 지으셨는데 ‘다이아거날 써츠’를 잘못 표기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제일 황당했던 표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김사라: 건축박람회에 사전등록을 한 적이 있는데 저희가 ‘디지털 다이아몬드’로 적혀 있더라고요. 그게 제일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이름을 듣는 입장에서 재미있는 건 우리를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어디에서 공부했는지 알 수 있어요. ‘디아고날 쏘츠’라고 하면 영국이고, ‘다애그널 써츠’라고 하면 미국이에요. (웃음)
내면을 들여다봐요
김예람: 학생을 가르치면서 옛날 생각이 나진 않던가요?
김사라: 대학원 수업이 종종 떠오르더라고요.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과목이 몇 개 있는데요. 하나는 전공과 상관없이 들을 수 있는 세미나 형식의 수업이에요. 지층을 타공해서 땅 속의 상태를 확인하는 ‘코어 샘플(Core Sample)’처럼 그동안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내면을 탐구하는 시간이었어요. 치유나 마음공부 같은 프로그램이 아닌데 수업 도중에 우는 친구들도 꽤 있었어요. 스스로를 낱낱이 파헤쳐보는 시간을 가진 다음에는 글이나 그림을 그리면서 결과물을 발전시키는 커리큘럼이에요. 그때는 얼토당토않은 수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참 괜찮은 강의였어요.
김예람: 기억에 남는 다른 수업도 궁금해요.
김사라: 하이브리드 컨스트럭션(Hybrid Construction)과 오브라 아키텍츠의 대표인 파블로 카스트로가 진행한 디스리멤버 투 언폴겟(Disremember to Unforget)이에요. ‘잊지 않기 위해서 기억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건축스튜디오였는데, 개념은 추상적이면서도 굉장히 현실적인 내용을 많이 다뤘어요. 대학원을 다니면서 제가 누구인지를 찾고 싶은 몸부림 속에 있었는데, 그 두 수업이 제 내면을 많이 다져줬죠.
ⓒKim Yeram
정의해야 마음이 편한가요
김예람: 지금까지 해온 작업들을 살펴보면 그 범위가 참 넓은 것 같아요.
김사라: 저희의 생각을 가장 적절하게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을 택한 건데, 다른 분들에게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방법론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금 저희에게는 작업의 스펙트럼을 이야기하는 게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김예람: 그럼 스스로를 어떤 건축가라고 생각하나요?
김사라: 당연히 다이아거날 써츠죠. 저희를 건축이든 작품이든 어느 지점에 두어야 생각하기 편해서 그런지, 다이아거날 써츠를 정의하고자 하는 외부의 시도가 있어요.
김예람: 규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이 관성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김사라: 저희도 이런 사고의 틀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참 어려워요. 그럴 때일수록 경계가 무색하게 작업하는 분들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자극을 주고 있어요. 최근에는 ‘아워레이보’라는 팀에 주목하고 있는데요. 그분들의 작업 일부만 봐도 그동안의 흐름이 느껴지더라고요. 그중 이정형 작가는 작품 활동도 하지만, 전시 환경이 보통 열악하기 때문에 스스로 페인트 칠도 하고 조명도 다세요. 상황에 따라 가벽을 세우거나 목공 작업도 하시고요. 그렇게 다양한 경험을 쌓다 보니, 어느새 총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는 거죠.
결과물에 너그러워질 수 있을까요
김예람: 간혹 예전에 했던 작업이 떠오르면 부끄럽기도 하면서 아쉽기도 하잖아요. 그런 순간이 찾아올 때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김사라: 저희는 프로젝트가 끝나는 시점에 가까워질수록 결과물이 싫어져요. (웃음) 일종의 고질병 같은 건데, 박수환 사진작가님이 작품을 촬영하실 때마다 “제발 자기 작품 좀 그만 미워해”라고 말하세요.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었는데, 작업이 끝나고 시간이 흐르면 프로젝트가 점점 좋아져요. 작업으로부터 멀어져야 잘된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는 거죠.
김예람: 좋고 싫음의 간극이 가장 큰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김사라: 건축 프로젝트를 할 때 그 틈이 잘 안 좁혀져요. 예전부터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마 남의 프로젝트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클라이언트가 있는 작업은 자율성이 적으니까 반드시 협의점을 찾아야 하잖아요. 그럴 때 제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순간이 거의 없어서 힘든 것 같아요. 협상의 기술을 더 익혀야 하는 걸까요? (웃음) 그래도 미술관의 초청을 받아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비교적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김예람: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에 영상 작품으로 참여하셨잖아요. 그 작업은 만족하시나요?
김사라: 사실 전시 참여를 제안받았을 때 엄청 망설였어요. 미술관에서는 저희에게 메타적인 시각으로 서울올림픽을 바라봐 달라고 말씀하셨는데 너무 큰 임무를 부여받은 것 같았어요. ‘올림픽이 생산한 자료가 방대한데, 과연 얼마나 많은 관람객이 그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있었거든요.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고민을 하다가, ‘사람들에게 형태 위주의 시각적 정보를 재구성하여 보여주면 무의식 속에 그 시각정보를 바탕으로 맥락을 가지고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예람: 그래서 ‘2 0 2 0 1 9 8 1 : 장면의 뒤편’(2020)에 역재생 효과가 적용된 거군요.
김사라: 유튜브에서는 영상이 역방향으로 흐르면서 끝나는데, 전시장에서는 작품이 반복적으로 재생돼요. 후두엽에 각인된 시각적 정보는 순서가 없기에 영상도 시작과 끝을 뒤섞었어요. 순서가 모호한 영상을 통해 관람객이 시공간을 넘나들기를 바랐어요.
단어를 곱씹어봐요
김예람: 같은 곳에서 진행되는 파빌리온 전시 〈MMCA 과천프로젝트 2020〉에도 참여하셨는데, 작품명이 굉장히 독특하던데요?
김사라: 이 전시는 미술관 앞마당에 파빌리온을 조성하는 설계공모의 최종후보군 출품작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저희가 선보인 ‘워어엉, 탕탕, 뜨드르륵, 스윽, 쓰아악, 따닥’(2020)은 파빌리온의 재료를 가공할 때 나는 소리를 그대로 적은 거예요. 최종발표 당시에 일부러 작품 이름을 읽지 않고 발표를 시작하겠다고 했는데, 아무도 “왜 작품명을 읽지 않느냐” 혹은 “제목의 뜻은 무엇이냐”고 질문하지 않더라고요. 결과는 아시다시피 낙선입니다. (웃음)
김예람: 이름 짓기에 진심이셨네요. (웃음)
김사라: 신경을 많이 기울이죠. 작품명을 지을 때가 제일 신나는 것 같아요. 이름을 붙이는 순간 뭔가 세계관이 생긴 듯한 느낌이잖아요.
김예람: 작업을 하면서 단어는 물론이고, 감각이나 기억을 잘 붙잡아두시는 듯해요.
김사라: 제 작업의 대부분이 텍스트에서 시작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텍스트를 수집하기 위해 책을 자주 읽는데요. 저한테 영감을 주는 부분을 발견하면 바로바로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해놔요. 물결 표시, 대괄호, 소괄호도 사용하고요. 그렇게 해놓고 작업을 할 때 다시 텍스트를 꺼내어 생각을 환기하죠.
김예람: 이다미 소장님이 인스타그램에 간간히 올라온 책 피드 잘 보고 계시대요.
김사라: 조용히라도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저야 고맙죠. 저한테는 그게 중요한 기록이에요. 저는 건축 책을 가장 안 보는 편이고, 휘발성이 강한 동시대 텍스트도 잘 안 읽는 편이에요. (웃음)
김예람: 그럼 최근에 잘 챙겨 보시는 건 없나요?
김사라: 얼마 전에 넷플릭스로 미국 드라마 ‘퀸스 갬빗’(2020)을 재미있게 봤어요. 우연히 한 회를 봤는데 결국 정주행해버렸어요. 저는 한번에 끝을 봐야 하거든요.
나중을 위해 지금 고민해요
김예람: 오랜 시간 앉아서 설계를 하다 보면 생각이 공회전하는 느낌이 들잖아요. 책이나 드라마 말고 다른 리프레시 방법이 있으신가요?
김사라: 예전에는 자전거를 타면서 리프레시 했는데, 사무소를 차리고 나서부터는 거의 못 타고 있어요. 요즘에는 생각이 복잡하거나 정리되지 않으면 어디든 걸어요. 같은 문제를 곱씹더라도 걸으면서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해결책이 떠오르더라고요.
김예람: 요즘은 어떤 고민을 가장 많이 하시나요?
김사라: 지난 6년 동안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조직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사로잡혔었는데요. 이런 걸 부지런히 고민하지 않으면 5년 뒤, 10년 뒤에는 고민할 기회조차 없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거든요.요즘은 “어떻게 하면 건강한 조직을 만들고, 일을 착착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김예람: 5년 후, 다이아거날 써츠가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 있을까요?
김사라: 규모나 경제적으로 조금은 성장하되, 조직이 바뀌더라도 그동안 해왔던 것들을 잘 지킬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대답이 이미 제 안에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막상 질문을 받으니 명쾌하게 대답을 못 하겠네요. 조금 더 고민해야겠어요.
김사라는 3월호에서 권경민, 박천강(합사 공동대표)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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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적으로 정의하고 구축하는지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