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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학생기자] 다시 보는 SPACE '건축가 이용주'

16기 SPACE 학생기자
진행
최은화 기자

16기 SPACE 학생기자단이 ‘다시 보는 「SPACE」’ 시리즈를 선보인다. 이 콘텐츠는 월간 「SPACE(공간)」에 게재된 프로젝트, 이슈, 인물 등을 되짚어보는 인터뷰 시리즈다.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될 예정이다.

 

1. 서재원, 이의행(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오렌지주스맛 단단집

2. 이진오, 박인영(건축사사무소 SAAI): 어쩌다가 건축으로 만난 인연들

3. 정다영(국립현대미술관): 전시, 건축의 일부와 일생

4. 이용주(이용주건축스튜디오): 건축으로 교감하기

5.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 벌거벗은 진솔함​

6. 정수진(에스아이 건축사사무소): 삶과 정서적 공간으로서의 집

7. 윤승현(건축사사무소​인터커드): 비움, 채움, 이음 

8. 임진영(오픈하우스서울): 문화행동이 문화가 되기까지  ​ 

 

 


 월간「SPACE(공간)」 2019년 9월 622호 106~107쪽 

 

 

 

건축으로 교감하기

 

인터뷰 이용주(이용주건축스튜디오) × 심종은, 안서경, 이화연(16기 SPACE 학생기자단) 

 

16기 SPACE 학생기자단: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교수님 이전 작업들을 살펴봤어요. 주로 디지털에 초점을 맞춘 건축, 조경, 예술작품, 조형물 작업이 많던데 ‘회현동 앵커시설’은 조금 결이 달라보여요. 어떻게 작업을 진행했는지, 무엇에 초점을 맞췄는지 궁금해요.

이용주: 월간 「SPACE(공간)」 2019년 9월호에서 정이삭(동양대학교 교수)이 회현동 앵커시설을 크리틱했는데, 주된 내용은 약 85년 된 옛 건물을 재생한 작업의 밀도가 불균질하다는 것이었어요. 어떤 부분은 세심하게 다뤄서 그대로 유지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부분은 부숴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버렸다는 거죠. 오래된 건물을 대하는 태도에 일관성이 없다는 얘기였어요.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저는 이 프로젝트를 도시재생의 의미로 접근하지 않았어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주민회의를 거쳤는데, 절반 이상이 “일식 가옥을 왜 되살리냐”는 의견을 보였어요. 반면 시에서는 되살리길 바랐고, 게다가 관리 단체들까지 있어서, 저는 이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야 하는 입장에 서있던 거죠. 결과적으로, 일관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렸어요. 건물을 봤을 때 어떻게 보면 일식 가옥이 보이고 어떻게 보면 새로운 면이 있구나 정도로 보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16기 SPACE 학생기자단: 이야기를 들으니, 회현동 앵커시설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했던 부분은 '어떻게 보이게 만들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용주: 맞아요. 과거의 모습도, 지금의 모습도 아닌 그 중간의 모습을 형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중요했어요. 회현동 앵커시설은 서울시가 추진한 도시재생 프로젝트 중 하나로, 주변의 여섯 개 건물을 동시에 리노베이션했어요. 회현동 앵커시설 바로 옆에 ‘계단집’도 그 중 하나였는데, 그 건물은 누가 봐도 개화기 때 지어졌다는 걸 알 수 있도록, 기존의 일식 가옥의 모습으로 완성됐어요. 하지만 회현동 앵커시설은 그렇지 않아요. 정이삭 교수가 ‘균질하지 않다’고 표현한 건, 하나의 건물에 새로 추가된 금속 부재가 과거의 상량식 글씨와 공존하는 모습들을 보고 한 것 같아요. 또 전선을 설치하기 위해 건물 일부를 철거하고 있었는데 애자(insulator)가 있더라고요. 지금은 전깃줄이 파이프 안에 다 숨어있는데, 예전에는 자기로 만든 애자를 썼어요. 제가 보기에는 그게 남아있어도 괜찮겠다 싶어서 그대로 두었어요. 그리고 그 옆으로는 H빔이 지나가요. 이 모습도 균질하지 않은 밀도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16기 SPACE 학생기자단: 다른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파사드는 그대로 남기고 내부만 수선하는 경우도 많은데, 회현동 앵커시설은 오히려 그 반대 같아요. 이러한 접근방식을 취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이용주: 사실 이 건물에는 파사드라고 할 게 없었어요. 또 대수선은 인허가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법규를 검토하고 그에 맞춰야 하는데, 기존 건물에는 현재의 법규와는 맞지 않은 부분들이 많이 있었어죠. 그래서 기존 파사드는 제거하고, 박공 지붕을 따라 내려오는 벽을 기존의 파사드라 생각하고 작업했어요. 그리고 기존 건물이 너무 골목 앞까지 나와 있었는데, 최대한 골목 안으로 밀어 넣고 외부에 마당을 뒀어요. 

 

16기 SPACE 학생기자단: 회현동 앵커시설이 주민시설이라는 공공건축이기 때문에 고려해야 될 부분도 분명 있었을 것 같아요.

이용주: 프로그램이 애매한 공공시설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도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는 “앵커 시설이 대체 뭐야?”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열심히 작업을 하긴 했지만, 혹여나 시설이 모호하게 바뀌는 건 아닐까 걱정을 했는데 어른부터 아이까지 잘 사용하더라고요. 공동 육아실이 있는데, 처음에는 공동육아라는 개념 자체가 이해가 안 되었어요. 학부모 몇몇이 그 동네에 있는 많은 애들을 관리를 하는 건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싶었죠. 공동 육아실도 주민 측에서 넣어 달라고 해서 추가한 거에요. 그런데 작동이 되더라고요. 애들이 학교 끝나면 하교하고 바로 1층으로 와서 공간 대부분을 다 사용해요. 위층은 학부모, 동네 주민들을 위한 교육, 체험 프로그램이 이루어지고요. 

 

16기 SPACE 학생기자단: 회현동 앵커시설 외에도 면목119안전센터도 설계했어요. 프로그램이 특수하고 사용자가 분명하다는 점이 회현동 앵커시설과는 다른 지점인 것 같은데, 그때는 어떻게 작업을 진행했나요?

이용주: 대부분의 공공시설이 그렇듯이, 소방서는 건축주와 사용자가 일치하지 않아요. 그게 가장 큰 문제예요. 건축주의 의견만 들으면 그곳을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듣지 못할 수 있는 거죠. 저 또한 공사를 하고 있는 동안 그곳을 사용하는 소방공무원을 만날 일이 없었어요. 공사가 다 끝나고 오픈해서 방문했을 때에서야 소방공무원으로부터 “사무실이 왜 이렇게 좁아요?”, “계단이 왜 이렇게 가파른가요?”라는 말을 들었어요. 또 다른 변수는, 이 프로젝트가 설계공모로 진행됐다는 데에 있어요. 설계공모의 목표는 당선이기 때문에 심사위원을 만족시켜야 해요. 당선 이후에야 공무원을 포함한 담당자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데 어긋나는 지점들이 발생할 수 있는 거죠. 심지어 담당자도 계속 바뀌고요.

 

16기 SPACE 학생기자단: 저희도 아직 직접 경험은 못해봤지만,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프로젝트가 어려운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어려움들을 극복해나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이용주: 건축가인 친구들 중에 개인 건축주 프로젝트를 하다가 공공건축을 하게 된 친구들이 있어요. 저에게 “도대체 우리가 왜 이런 걸 해?”라고 하는데, 저는 그때마다 “사회는 우리가 그 일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해. 그냥 그걸 하는 거야.”하고 대답해요. 예를 들어서, 공공기관에서 기존의 요구사항에는 없던 서류를 제출하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런데 서류라는 게 단순히 글을 쓰는 작업이 아니라, 무언가를 분석하고 도출해야 하는 작업이에요. 그런 걸 왜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래야 일의 진도가 나가니까”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웃음) 

 

16기 SPACE 학생기자단: 공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도시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요. 건축이 도시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이용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데요. (웃음) 그렇게 되면 당연히 좋겠다고는 생각해요. 건축은 건축이 자리하는 도시에 어울리는 무언가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선례를 많이 보진 못한 것 같아요. 서울을 보면, 과연 역사성을 제대로 담고 있는 건물이 얼마나 있는지, 무엇을 재생한다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들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도시’와 ‘재생’이라는 두 단어가 서울과는, 적어도 지금의 서울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이상에 가까운 이야기죠.

 

16기 SPACE 학생기자단: 그렇다면 교수님이 생각하는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요? 

이용주: 서울은 밀도가 균질하지 않아요. 어느 지역은 발전이 과도할 만큼 활발한데 또 어느 지역은 건물과 길이 다 무너져 내리고 있죠. 그 자체가 어떻게 보면 서울의 스타일인 것 같은데, 적어도 이런 상태의 서울을 도시 계획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작게 한 블록 정도를 컨트롤 한다면 모를까. 넓은 범위의 도시 전체는 계획을 하더라도 실제로는 계획대로 작동되지 않는 부분이 많을 거에요. 

 

16기 SPACE 학생기자단: 아쉬운 부분들을 짚어주고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교수님이 공공과 도시에 대해 얼마나 큰 애정을 갖고 있는지가 느껴져요. 교수님이 작업해온 예술작품에도 그런 지점들이 녹아있나요? 예를 들어서, ‘필라멘트 마인드’와 같이 관객 참여형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어요.

이용주: 사람들이 내 작업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길을 걷다가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건축을 만들고자 해요. 그게 공공성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필라멘트 마인드 같은 경우도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아름답다’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설계 개념을 설명했을 때 즉각적으로 이해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머릿속에 있는 개념을 물리적으로 실체화했을 때 그 간극을 메꿔 주는 것은 결국 말이거든요. 물론 다이어그램이나 여러 가지 수단도 있지만요.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결국 건축과 예술의 차이점이라고 봐요. 제가 패턴에 집중하는 이유도 그것이 건축만이 가지는 시스템이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매력적인 어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16기 SPACE 학생기자단: 최근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야외프로젝트 작업에서 참여했어요. 공모로 진행됐는데, 그때 제출한 작업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려요. 

이용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서 이른바 ‘코로나 시대’가 됐는데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숨 쉬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죠. 높이 1.8m 정도의 3D 프린팅 구조체로 된 파빌리온을 제안했어요. 재질은 돌 같고 안쪽에 홈을 파서 이끼를 집어넣도록 계획했어요. 사람이 안에 들어가서 이끼와 숨을 나눴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만들었어요. 여기서 중요했던 건 이끼를 접착제 없이 고정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홈의 깊이와 전체적인 사이즈를 고민해 홈의 형태를 패턴으로 만들고 3D프린팅했죠. 이 작업의 연장 선상으로 파빌리온에 화분을 만들고 거기에 꽃을 심을 수 있게 하는 프로젝트를 요즘 인천에서 진행하려 하고 있어요. 또 아직은 스터디 단계인 프로젝트이지만, 애벌레를 이용한 작업도 계획 중이에요. 저는 데이터, 빛을 이용한 디지털 건축을 가장 최신의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주력했는데요, 최근에는 가장 최신의 것을 생물이라고 생각해요.

 

16기 SPACE 학생기자단: 코로나 시대에 ‘숨’이라니. 위로를 받는 기분이에요. 마지막으로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조언의 말을 구하고 싶어요.

이용주: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한국에 막 들어왔을 때 일이 많지 않았어요. 돈은 없는데 시간은 많았어요. 그때 저는 돈을 적게 버는 대신 기왕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잘 놀아야지 하고 결심했어요. 그때 책, 영화를 많이 봤어요. 학생분들도 그냥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 상태가 평생 지속된다면 힘들겠지만요. 부모님 세대는 발전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이에 발맞춰 빨리 따라가거나 지면 안 된다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경쟁을 하고 있는 거 자체가 조금은 피곤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항상 밤새우지 말라고 해요. 밤을 새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이용주 × 16기 SPACE 학생기자단 인터뷰 현장 

 


이화연, 회현동 앵커시설 드로잉

 


 

안서경, 회현동 앵커시설 드로잉

 


심종은, 회현동 앵커시설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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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주
이용주는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건축가다. 정보가 가진 패턴의 복잡성을 바탕으로 한 건축의 기하학적 표현에 관심을 두고 있다. 연세대학교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뉴욕에서 E/B Office의 공동 대표로 재직했다. 미국 건축사이고 현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하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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