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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에서 모더니즘 건축을 보존하는 방식: 올드 프린터리

오피스 아르히텍티

사진
토마스 그레고리츠(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오피스 아르히텍티
진행
김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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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공간)」 2024년 12월호 (통권 685호) 

 

 

인터뷰 슈펠라 비데치니크 오피스 아르히텍티 공동대표 × 김보경 기자​

 

김보경(김): 이 프로젝트는 슬로베니아의 모더니스트 건축가 사빈 세베르(1927~2003)가 1960년대에 설계한 믈라딘스카 크나이가 인쇄소를 리노베이션 한 프로젝트다. 사빈 세베르는 슬로베니아에서 어떤 위상을 가진 인물인가?

슈펠라 비데치니크(비데치니크): 슬로베니아는 모더니즘 건축의 계보가 굉장히 견고한 나라 중 하나다. 사빈 세베르의 스승인 에드바르트 라우니카르(1907~1993)는 오토 바그너 아래서 공부한 요제 플레치니크(1872~1957)의 가장 중요한 제자 중 한 명이다. 또한 르 코르뷔지에와 함께 건축을 공부했고 르 코르뷔지에 스튜디오에서의 협업을 통해 큰 영향을 받았으며, 전통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현대적인 접근 방식을 더한 독자적인 건축 시학을 발전시켰다. 이 스타일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후기모더니즘 시기의 슬로베니아 건축가들의 특징이 될 정도로 라우니카르는 당대 슬로베니아 건축계, 이른바 ‘류블랴나 건축학파’를 대표하는 주요 인물이다. 당대에는 운이 좋게도 사회주의 정부가 이러한 모더니즘 스타일을 지원했고, 라우니카르와 사빈 세베르를 포함한 그의 학생들은 유고슬라비아와 슬로베니아의 전후 재건에서 주요 과제를 맡을 수 있었다. 이전의 건축과는 전혀 다른 건축이 새로운 정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빈 세베르는 여러 공장이나 산업 건물을 설계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중 일부는 이미 철거됐다.

 

©Janez Martincic 

 

김: 기존 건축물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한 부분은 무엇이었나?

비데치니크: 믈라딘스카 크나이가 인쇄소(1966)는 모듈식으로 사전 제작됐다. 모듈식으로 반복되는 콘크리트 구조는 당시 사빈 세베르의 건축적 사고를 드러내며 또한 전후 모더니즘 시대를 특징짓는 중요한 건축 요소다. 또 거대한 콘크리트 보를 사용해 기둥 간격을 늘려 인쇄에 사용되는 중장비를 넣을 수 있는 대공간을 만들었다. 이러한 깔끔한 모듈 시스템과 추가 보강 없이 유연한 배치가 가능해 다양한 현대적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 구조 덕분에 믈라딘스카 크나이가 인쇄소는 지역의 문화적 기념물로 인정받았다. 개인적으로는 공장으로 자연광을 들여보내던 채광창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다. 파사드는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이 건축물의 결정적인 요소는 그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콘크리트 구조 사이에 배치된 삼각형의 유리 천창은 건물 전체에 자연광을 들여 공간감을 극대화하고, 필요할 때에는 창을 열어 환기를 시킬 수도 있었다.

 

 

김: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건축가의 작품을 대상으로 한 작업이라 그런지, 새로운 무언가를 덧붙이기보다 당시의 계획안을 복원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를 어떻게 보존했는가?

비데치니크: 그렇다. 우선 프로젝트의 대상이 사빈 세베르의 아주 상징적인 건축 작품이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작업만 진행하고자 했다. 아무것도 망치거나 바꾸고 싶지 않았다. 다만 기존 건물은 단지 벽돌뿐이었고 단열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겨울에는 0도에서 영하 10도까지 온도가 내려가는 슬로베니아에서 이 건물을 인쇄소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단열을 해결해야 했다. 기본적으로 노출콘크리트를 단열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콘크리트 기둥과 보가 열교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존 공간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단열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난방이 가능한 공간을 내부에 만들면서, 외부에 이를 보이지 않게 하는 방향을 생각했다. 그러던 와중 사빈 세베르의 믈라딘스카 크나이가 인쇄소의 설계도를 발견했다. 기존 설계도를 보고 사빈 세베르가 콘크리트 패널을 외장재로 계획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사실을 발견하고 아주 기뻤다. 벽돌 위에 단열재를 설치하고, 콘크리트 패널을 덧붙여 건물을 단열한다는 선택지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디자인을 복원하면서도 단열을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방법이었다. 건물에 내단열을 추가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외단열을 보강하며, 외부에 노출할 구조와 내부에 노출할 구조를 선택해야 했다. 예를 들어, 콘크리트 보는 내부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지붕에서 외단열 처리를 했기 때문에 구조를 확인할 수 없다. 

삼각형의 채광창을 포함한 기존 창문의 프레임도 모두 금속으로 되어 있어서 전혀 단열 기능이 없는 상태였다. 단열을 위해 모든 창문을 신중하게 설계했다. 잊혀진 산업 유산의 창작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산업 건축물의 맥락에 현대적 콘텐츠를 담아낼 수 있는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Janez Martincic

김: 인쇄소라는 용도로 설계된 건축물을 상업 건축물로 혹은 오피스로 변경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공간을 어떻게 구획하고 변경했는가?

비데치니크: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남쪽에 새로운 입구를 낸 것이다. 기존에는 인쇄소 노동자들이 사무동의 탈의실을 통해 건물로 들어가는 동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IT 사무실과 헬스장이라는 건물의 새로운 용도에는 그러한 동선이 적합하지 않아 남쪽에 입구를 냈다. 새로운 건물의 용도에도 불구하고, 기존 인쇄소 건축물의 중요한 특징은 유지하고 싶었다. 거대한 콘크리트 보와 넓은 기둥 간격을 통해 만들어진 대공간 말이다. 이러한 특징을 유지해 남쪽의 새로운 입구 부분의 건물 내부에 도심 광장과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비공식적인 대화, 프레젠테이션, 이벤트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또 로비에는 원래 인쇄소에서 사용되던 기계 일부가 배치돼 건물의 과거를 기억하고 보존한다. 작은 오피스들은 큰 공간 안에 배치된 작은 박스들처럼 보이도록 설계했다. 오피스들은 두 층으로 나뉘어 배치되어 있지만, 실내에서는 한 층처럼 보인다. 

 

리노베이션 이전

 

김: 공공이 아닌 민간이 이렇게 큰 규모의 건축물을 보존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 놀랍다. 이러한 시도는 어떻게 가능했나?

비데치니크: 사실 슬로베니아에서 건축 유산을 보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건축물은 오랫동안 대중이나 정부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슬로베니아는 유고슬라비아의 일부였고, 오랫동안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했다. 1990년대 후반 체제가 바뀌었을 때 사람들은 사회주의 체제와 관련되었던 모더니즘 건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나의 부모님 세대까지만 해도 그랬다. 물론 건축가나 예술가들은 모더니즘 건축 유산에 관심을 가졌지만, 정작 건물이 잘 보존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점차 나아지는 추세다. 다양한 미디어가 이러한 건물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오래된 건축물의 문화적 가치를 이해하고 이를 보존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클라이언트가 없다면 건축 유산의 보존은 여전히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슬로베니아 문화유산 보호 연구소가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리노베이션을 진행했던 사빈 세베르의 또 다른 작품인 바자토 갤러리조차도 공공 소유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클라이언트는 거의 없다.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단순히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고층 건물을 세우고 싶어 한다. 특히 도시 산업 구역에 위치해 있는 이 인쇄소의 주변으로 이미 많은 고층 주거 건축물들이 들어선 상태다. 이런 상황에 유산을 보존하는 정부 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 기관이 건물을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하면 아무리 민간 소유자라도 이를 철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쇄소의 이전 건축주들은 이 건축물을 복원하거나 관리하지 않은 채 방치해놓고 저예산 프로그램들을 운영했다. 스케이트장이나 창고로 쓰이기도 했고, 일부는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주 임시적인 공간 같았다. 지금의 클라이언트는 이 건축물과 함께 주변의 토지도 매입했는데, 당시에 이 건축물이 유산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부 기관과의 협상에서 주변의 토지에 주거단지를 짓는 것은 허가받았지만, 이 건물 자체는 보존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이 건물을 보존하면서 IT 회사를 위한 현대식 사무실과 피트니스 공간으로 개조하고자 했다. 이것이 이 인쇄소가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다.

 

 

©Janez Martincic 

 

김: 앞으로도 건축 유산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이어갈 예정인가?

비데치니크: 그렇다. 오피스 아르히텍티에서 진행하는 작업의 50% 이상이 건물 보존 또는 재활용, 개조와 관련된 작업이다. 많은 건물을 보존하고 개조하며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고, 우리만의 건축 언어를 반영하기도 한다. 슬로베니아에는 로마 건축, 중세 건축, 바로크 건축, 그리고 모더니즘 건축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이 존재한다. 이렇게 다양한 시기의 건물들에서 현재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과 통합할 수 있는 많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꼭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건축 유산만이 아니라 다른 오래된 건축물을 대상으로도 이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구조만 튼튼하다면 건물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건축 분야에서 건물을 짓거나 철거할 때의 탄소 발자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건물이 오래되었다고 철거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나. ​

 

월간 「SPACE(공간)」 685호(2024년 12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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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펠라 비데치니크
슈펠라 비데치니크는 1997년 류블랴나 건축학교를 졸업하고 3년 후 런던 AA 스쿨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비데치니크는 로크 오만과 함께 오피스 아르히텍티를 설립했다. 비데치니크와 오만은 30개 이상의 국내외 건축상을 수상했고, 하버드 대학교 디자인대학원을 비롯한 전 세계의 건축학부 및 콘퍼런스에서 건축을 가르쳤다. 대표작으로는 류블랴나 시립박물관 리노베이션(2003), 허니콤 아파트(2005), 마리보르 축구 경기장(2008), 페어웰 채플(2009), 스페이스 해비터블 휠 (2011), 파리 학생 기숙사-배스킷 아파트먼트(2013), 윈터 캐빈 온 마운트 카닌(2016), 음악과 발레를 위한 음악원(201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