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파사드
파사드라는 말은 기원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 문명의 격자 그리드는 끝없이 팽창하며 자연을 무한하게 개간했다. 농경에서 중요한 개념이었던 동서남북은 사라지고 도시를 이루는 광장과 도로, 건물이 남았다. 이때 도로와 건물의 관계로 인해 건물의 정면, 즉 ‘파사드’가 생겨났다. 도시가 파사드를 정의한 것이다.
수천년이 지난 현대의 서울도 다르지 않다. 용도지역지구의 조닝 제한을 받는 빽빽한 강남도시 이면도로변에서 건물들은 도로를 바라보는 ‘정면’만이 노출된다. 동일한 법적 제한 속에 모두의 욕망이 더해지면, 비슷한 층수와 볼륨의 건물들이 옴싹달싹 서로를 구속하고 매스를 테스트하고 비율을 실험할 여유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대상지의 경우 4m 일차선 도로에 면하여 건물은 겨우 살짝 입면을 드러낼 수 있다. 서울의 도시계획이 사이트의 파사드를 정의했다.
욕망의 파사드
하지만 사이트의 맥락과 건축주의 욕망은 크게 충돌한다. 건축주는 강력한 아이덴티티를 통해 주목을 받는 건물을 짓고 싶어했다. 어느 회사의 눈에 들어 그들의 사옥으로 통임대를 받고 싶은, 순전한 자본가적 열망이다. 이 때문에 좁은 도로에 살짝 노출된 입면으로 아이덴티티를 드러내야 하는 도전적인 미션이 주어졌다. 도시가 정의한 파사드의 특성에 정면으로 반하는 반항적인 파사드를 만들어야 했다.
좁은 이면도로변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물은 무미건조하게 복제된 주변의 빌라-도시 맥락에 새로운 생동감을 부여할 기회로 작용한다. 주변의 맥락을 통해 결론 내려 디자인된 무한히 복제 증식하는 어바니즘의 일부가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를 정의하기위해 애쓰는 디자인을 목표로 한다. P.V. Aureli 가 The possibility of an Absolute architecture (2011)에서 언급한 가능성처럼, 주변의 맥락에서 벗어나 스스로 완전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건축물을 통해 도시의 다양성에 새로운 동력으로 기여할 수 있는 디자인을 진행했다.
극한의 볼륨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을 대출받고, 매달 나가는 이자비용에 스트레스 받는 건축주에게는 모든 면적이 곧 돈이다. ‘수익형 건물’에 가능한 한 최대치의 개발은 당연하며, 이에 더해 실제 사용가능한 면적을 극대화하는 전용률 게임이 필수다. 2016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다룬 ‘The FAR Game’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는 치열한 싸움이 강남역 이면도로변에서는 일상적으로 펼쳐진다.
법규가 허락하는 한, 터지기 일보직전의 팽팽한 크기를 가진 극한의 볼륨을 품는 건축이 당연한 목표가 된다. 공용면적을 극한으로 줄이기 위해 외부계단을 사용하고,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 여기에 주차가능한 대수의 최대값까지 지하 면적을 확보하고 인허가 절차에 무리가 없는 최대의 지하 깊이를 확보한다. 일조선이 허락하는 끝까지 건물의 크기를 키운다.
곡면의 역동성
최대의 면적과 전용률을 필요로 한다는 강력한 제약은 새로운 창의성을 촉발한다. 최대화된 볼륨에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기 위해 외부공간과 발코니 및 기둥을 활용해 곡선적 디자인을 계획했다. 곡면의 건축물은 주변의 직선적인 건축물과 구분되어 쉽게 눈에 띄며, 동시에 절제된 어휘로 적재적소에만 곡면을 사용하면서 예산의 효율화를 달성할 수 있다. 파사드의 성질을 곡면으로 인지할 만큼의 곡면이면서도 비정형 건물로 분류되지 않을 수 있는, 최적의 지점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였다.
곡면을 통한 아이덴티티를 효율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디자인 포인트들을 적용했다. 입면에는 벽돌타일을 세로로 부착하여 섬세한 곡면을 구현해 마치 말려들어간 벽돌면이 개구부를 만들어내는 형상을 의도했다. 전면의 기둥은 곡면 철판거푸집을 사용하여 곡선적 양감을 표현하였다. 또한 곡면 기둥을 필로티 천장면과 자연스럽게 잇기 위해 부분적으로 역슬래브를 적용하여 하부 노출콘크리트의 덩어리감을 강조했다. 마치 건물 전체를 곡선의 기둥이 들어올리는 모습을 의도해 상-하부 디자인의 밸런스를 맞추었다.
건축과 도시
결론적으로 이 건물의 파사드는 기하학적 욕망과 자본의 욕망의 역설적 융화가 만든 역동성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역동성으로 도시의 보편성과 미니멀리즘 일변도의 미감에 처절히 저항하며 스스로를 정의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도시라는 건물 생태계에 얼마 간의 다양성을 부여하고 건축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자본주의와 줄다리기를 한, 도시의 건축이 이런 것 아닐까. 도시는 건축을, 건축은 도시를 끊임없이 정의한다.
평면도(지하 1층, 1층, 2층, 3층)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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