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1월호 (통권 674호)
근린생활시설만큼 건축가의 의지를 드러내기 어려운 건물이 있을까. 자본을 쫓는 우리 도시에서 경제 논리와 법적인 조건을 만족시키다 보면 건축가에게 남는 여지는 거의 없다. 동시에 현재 우리의 일상을 채우고 가로경관을 만드는 지배적인 건물이라는 점에서 건축가에게는 피할 수 없는 유형이다. 김동진+로디자인은 전작 행당 거꾸로 된 파테마(「SPACE(공간)」 626호 참고), 동탄 야누스(「SPACE」 651호 참고) 등에서 도시의 다양한 콘텍스트에 대응하는 근린생활시설을 탐구해왔다. 이번에는 ‘트리플릿 코드’라는 건축적 적층 코드 조합 방식을 활용한 이문, 신사, 상수 연작을 소개한다. 임동우(홍익대학교 교수)가 이 세 작업을 분석하며 근린생활시설 논리의 새로운 건축적 가능성을 찾는다.
트리플릿 코드 이문
트리플릿 코드 신사
근생의 풍경
한때 거의 ‘복붙’(복사 후 붙여 넣기)에 가까운 다세대ㆍ다가구 주택이 무작위로 지어질 때, 한국 건축계에서는 ‘집장사 집’이라는 표현을 쓰며 조금은 멸시하는 시각으로 한국의 도시 풍경을 만들어내는 건축 유형을 바라본 적이 있다. 이제는 이 유형의 건축들을 하나라도 지켜내려고 하는 건축계의 노력이 아이러니하다. 이러한 시각은 1990년대 2000년대 들어와서는 ‘근린생활시설’(이하 근생)로 옮겨간다. 언뜻 들으면 근생이라는 「건축법」상의 용도를 바탕으로 설계하는 건축을 깔볼 아무런 이유가 없지만, 그 내막에는 여전히 건축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어야 하는데 자본과 부동산의 논리가 건축 논리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건축가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 것이다. 물론 모든 근생 프로젝트가 그러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근생 설계를 의뢰하는 건축주들은 최대한의 임대면적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건축해 최대의 임대수익을 얻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근생이라는 용도 자체가 갖고 있는 이 태생적인 논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최근 들어서는 근생 설계를 하지 않는 건축가가 거의 없을 정도로 근생은 이제 건축 시장을 지배하는 하나의 유형이고, 시장을 지배한다는 것은 이 도시의 풍경을 지배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지배적 현상에 대응해 건축가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이에 대응한다. 누구는 입면의 형태에 고전의 언어를 입히고, 누구는 법규가 만들어내는 형태 자체를 언어로 사용한다. 또 누구는 입면의 재료로 차별점을 두고자 하고, 누구는 구조의 단순화를 통해 근생의 논리에 대응한다.
모든 도시들은 각 지역의 DNA 성질에 따른 나름의 코드, 즉 속성을 가진 일관된 경향을 가지고 생성·쇠퇴·소멸이라는 일련의 순환 과정을 거친다.
트리플릿 코드 혹은 근생 코드
김동진(홍익대학교 교수)의 대응은 매우 건축적이면서도 매우 도시적이다. DNA가 세 개의 염기로 이루어졌고, 이 염기의 조합에 따라 거의 무한에 가까운 새로운 생명체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로서 트리플릿 코드를 그 대응의 언어로 사용한다. 우리의 생명체가 조직되듯, 우리의 도시도 이 세 개의 염기로 무수히 많은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논리다. 하지만 사실 김동진의 근생 3연작을 보면, 염색체나 염기 같은 비건축적인 언어로 건축을 설명할 이유를 잊는다. 오히려 신사, 이문, 상수라는 서로 다른 콘텍스트에서 하나의 코드를 적용해 접근한다는 것이 의아하다. 이들 세 연작은 얼핏 보면 매우 비슷한 결과물처럼 보이기 때문에 과연 이 코드가 상이한 콘텍스트의 프로젝트에 유연하게 적용된 것인지 아니면 건축가가 최종적인 이미지를 어느 정도 결정해 놓고 코드를 만들어낸 것인지 의문이다. 사진으로 전달되는 세 개의 프로젝트는 삼단으로 분절된 입면에서 수직 리듬을 입힌 검은 상부와 그와 대비되는 흰 혹은 불투명한 중간, 그리고 투명한 하부로 정의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축가 스스로 이들 프로젝트에서 트리플릿 코드 이상의 건축을 지배하는 논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자유롭게 다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 작업은 근생의 논리를 매우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담아내고 있으며, 풍부한 도시적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고, 또 건축적으로 매우 합리적이면서도 건축적인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근생의 태생적인 논리를 굳이 건축화된 언어로 포장할 이유가 없다. 이들 세 연작은 근생 논리의 솔직함과 근생이 지배하고 있는 이 사회의 현상을 존중하고 있다.
이 세 작업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열려 있는 저층부다. 문화시설이나 공공시설에서 열려 있다고 얘기하는 그 열림이 아니라, 상업 용도가 들어가는 1층을 최대한 노출하기 위한 열림이다. 특히 이문과 신사의 경우에는 건축가가 적극적으로 제안해 저층 공간을 복층으로 구성했다. 아름다운 건축적 비율을 가진 저층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2층의 임대료가 1층에 비해 확연히 떨어지는 현상에 대응해, 1층의 임차인이 (원한다면) 2층까지 함께 쓸 수 있는 가변적인 저층부를 제안했다. 이는 도로 레벨에서 만들어지는 가로풍경(streescape)을 지배한다. 일반적인 단층짜리 스토어프런트가 아닌 2개 층의 스케일은 도시 건축적으로는 가로에서 휴먼스케일을 압도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근생 논리로서는 주변의 근생건물과 확연히 구분되는 차별성을 주어 임차인들에게 플러스 요인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상층부는 일조사선이라는 매우 강력한 법규에 의해 다시 한 번 나뉠 수밖에 없다. 지상 기준 레벨에서 9m까지는 사선제한을 받지 않지만, 9m부터는 대상지의 북측에 필지가 접한 경우 바로 사선제한이 적용된다는 기준은 일반주거지에 발생하는 근생의 형태와 높이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법규다. 지구단위계획이 적용되어 허용 용적률 360%와 최고 높이 40m가 적용된 이문의 경우를 제외하고, 상수와 신사의 경우에서는 동일하게 일조사선제한을 받게 되었고, 이는 최상층부의 언어와 중간층의 언어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 당연히 이 둘 사이의 건축면적의 차이 때문에 테라스가 생겨나고, 이는 근생에 들어오는 임차인의 업종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로 작동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법규 때문에’라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니다. 신사의 경우 중층부를 셋백(setback)하는 방식으로 상층과 저층 사이를 구분했는데, 이는 전면에 있는 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테라스를 제공하며, 인접한 근생들의 분석을 통해 3층에도 카페가 들어간다고 파악한 건축가의 세밀한 제안이었다. 근생 설계의 매력은 여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건축적인 셋백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예상되는 근생의 업종과 사용 방식이 건축 언어와 결합되었을 때 비로소 퍼즐이 맞게 되는 것이다.
트리플릿 코드 상수
사옥 같다
서로 다른 지역의 서로 다른 콘텍스트에 있지만 누가 봐도 이 세 개의 프로젝트는 같은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건축 재료 때문이다. 투명하게 처리된 저층부, 어두운 검정 계열의 상층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저층과 상층과 구분될 수 있도록, 혹은 이들을 강조하기 위해 처리되는 중층부의 불투명한 흰색 계열의 재료 선정은 마치 리처드 로저스의 노란색이나 리처드 마이어의 흰색마냥 건축가의 독창적인 언어다. 특히 흰색의 하부와 대비되는 검은 상층부는 마치 상층부 볼륨이 떠 있는 듯 보이게 하는 효과를 가져오며, 특히 상층부 입면의 수직 분절은 투시도 효과가 생겨 상층부를 더욱 길어 보이게 한다. 팔라초의 삼단구성에서 나타나는 입면의 논리처럼 명확하게 규정된 이 트리플릿 코드의 삼단구성은 재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근생 건축의 설계 과정을 단순화시켜준다.
결과적으로 이런 치밀하고 세밀한 건축적 언어는 근생의 논리를 조작한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임대면적’이 주된 논리인 근생 건축에서, 건축적 언어를 고집하기 위한 디자인이 아닌, 근생의 논리에 반응하고 이를 활용한 디자인 해법은 근생 논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역제안한다. 저층부에 들어올 수 있는 근생의 업종을 예상해 (혹은 유도하기 위해) 도시로 열어주는 방식, 저층과 상층을 분절해 테라스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업종을 유도하는 방식, 그리고 근생으로서 가장 인지성이 좋은 상층부에 집중한 건축의 리듬과 라임의 언어는 트리플릿 코드 세 개의 근생 연작이 과연 ‘근생’으로만 끝날 존재인가 질문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좋은 곳에 가면 ‘외국 같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사실 한국에도 좋은 곳이 많고, 외국이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니, 이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관례적으로 많이 쓰는 표현이다. 비슷한 의미로 ‘사옥 같다’는 표현이 있겠다. 김동진의 근생 연작은 한마디로 사옥 같다. 사실 근생을 사옥처럼만 설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건축주의 여력과 건축가의 노력만 있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근생의 논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때로는 그 논리를 더욱 증폭시키면서도, 도시적 문맥과 건축적 언어를 반영한 사옥 같은 근생을 설계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그의 프로젝트가 사옥으로 통임대되거나 매매되기도 했다는 사실은 근생의 논리에 안주하지 않은 건축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근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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