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3년 7월호(통권 668호)
도시 목조건축을 향한 실험
야스하라 모토키 살하우스 공동대표 × 김지아 기자
김지아(김): 도쿄 시부야구 에비스역 인근에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새로운 형태의 목조 오피스 빌딩을 계획했다. 친환경 목조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규모 있는 오피스 빌딩의 경우 철근콘크리트조나 철골조로 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오피스 빌딩에 목조를 접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야스하라 모토키(야스하라): 에비스에 거점을 둔 부동산 개발자인 클라이언트는 오랜 시간 주변 지역 활성화를 위해 힘써왔다. 클라이언트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오피스 빌딩을 계획하고자 했다. 초기에는 예산을 고려해 철골조로 하려 했지만, 기존의 획일적인 사무 공간이 아닌 거주성이 높은 오피스를 실현할 방법을 모색한 끝에 목구조를 떠올렸다. 목조건축에 대한 실험을 지속해온 우리는 그간 쌓아온 경험을 도심 고층 건물로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에 철골과 목재를 결합한 오피스 빌딩을 짓게 됐다.
김: 철골조에 내진 프레임을 목조로 중첩하는 하이브리드 구조를 적용했다. 이러한 구조를 고안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야스하라: 일본에서 내화 중고층 목조건물을 설계하려면 대형 건설사의 특수 공법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철근콘크리트조나 철골조에 비해 상당히 많은 비용이 든다. 이러한 공법은 주로 대기업의 ESG 전략이나 건설 기술을 홍보하기 위해 쓰인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보급 가능한 형태는 아니다. 또한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기둥과 보를 단순히 목재로 대체한 것에 불과해 목조 특유의 매력을 느끼기가 어렵다. 이에 민간 개발자가 짓는 평범한 소규모 임대 건물에도 적용할 수 있고, 사용자가 공간적 가치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도시 목조건축의 새로운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철골 기둥과 보에 격자형 목재 셸을 결합해 내진 요소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내진 목조 래티스 셸(이하 래티스 셸)’이라 이름 붙인 이 구조는 지진력만 부담한다. 일본 법규에서는 단기 응력을 견디는 부재에는 내화 성능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이 래티스 셸은 내화 피복 없이 노출이 가능하다. 즉 구조와 인테리어를 겸할 수 있는 것이 이 공법의 가장 큰 장점이다.
김: 래티스 셸에 내화 성능이 요구되지 않는다면, 화재 등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야스하라: 화재 발생 시 일정 시간 동안 무너지지 않고 계속 서 있는 것이 내화 건축물의 조건이기 때문에 수직력을 부담하지 않는 부재에는 내화 성능이 요구되지 않는다. 물론 건물에는 소화전 설비나 자동 화재 경보기 시스템 등 필요한 방재설비가 마련되어 있다. 또한 만일 화재가 발생해 래티스 셸에 불이 붙었을 경우에 대한 검증도 이미 마쳤다. 철골 기둥과 보는 내화 피복으로 보호되어 있어 화재 발생 시 저층은 두 시간, 고층은 한 시간가량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됐다. 래티스 셸은 열전도성을 가진 철골 거싯 플레이트로 기둥과 보에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내화 시간을 초과해 래티스 셸에 불이 붙더라도 거싯 플레이트을 통해 기둥과 보로 유해한 열이 전도되지 않는 것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김: 지진력이 다르게 작용하는 저층부와 고층부에 각기 다른 종류의 셸을 구현했다. 두 타입의 셸에 대해 설명해 달라.
야스하라: 저층부의 래티스 셸은 낙엽송 집성재를 사용한 아치와 편백나무 버팀목으로 구성됐다. 저층부는 비교적 더 큰 지진력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내진 성능이 우수한 형태의 구조를 고안했다. 반면 고층부의 래티스 셸은 모두 직선형 부재를 사용해 보다 단순한 형태로 디자인했다. 각 부재에 요구되는 강도에 따라 적합한 수종을 선택했다.
김: 단순히 기둥과 보를 목재로 대체하는 것이 아닌, 공간을 감싸는 형태의 구조를 구현해 위요된 공간감을 형성했다.
야스하라: 래티스 셸은 휴먼 스케일에 맞춰 사용자를 감싸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주로 내장재로 사용되는 목재 루버와 달리, 충분한 볼륨을 가진 목재로 이루어져 철골조 건물 안에 들어선 또 하나의 목조건축물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철근콘크리트조나 철골조와 달리 목재 부재는 서로 다른 결과 마디를 지닌다. 다양한 표정을 지닌 재료는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고, 사용자에게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결과적으로 오피스 공간의 딱딱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쾌적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업무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자 했다.
김: 비슷한 규모의 오피스 빌딩에서는 대개 엘리베이터로 층과 층을 이동한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옥외 계단을 일상적인 이동 수단으로 삼았다.
야스하라: 일반적인 오피스 빌딩에서 사용자의 동선은 로비 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 공간 층으로 이동하는 것에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서로 다른 층에서 일하는 사람들 간의 교류가 발생하지 않는다.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계단을 일상적인 동선으로 삼고, 동선을 따라 넓은 야외 공간을 조성했다.
김: 계단은 1층부터 5층까지 남쪽을 향해 있다가 6층부터 9층까지는 북쪽으로 방향과 형태를 달리 배치했다. 이 같은 변주가 흥미롭다.
야스하라: 건물 저층부는 삼면이 인접한 건물에 둘러싸여 있지만, 6층부터는 북쪽으로 시선이 열리면서 시부야 부도심의 고층 건물을 조망할 수 있는 근사한 경관이 펼쳐진다. 계단을 주요 이동 수단으로 삼은 만큼 계단을 오르내리는 경험 자체를 강조하고 싶었다. 저층부에서는 남쪽의 고마자와 거리의 활기를, 고층부에서는 북쪽의 풍요로운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김: 현재 도쿄 도심은 사무실 공급이 과잉 상황이라고 들었다. 더불어 팬데믹을 계기로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물리적 공간의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어떤 지점에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야스하라: 우선 재택근무가 지금보다 더 일상화되더라도 물리적 공간의 가치는 유효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일본의 경제 성장은 이미 정점을 지났고, 도쿄의 오피스 건물들은 나날이 비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간이 가치를 유지하려면 건축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공간’을 제시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종래의 건물들보다 훨씬 더 쾌적하고,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모여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건축이 요구될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목재를 사용해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계단이나 야외 공용 공간을 활용한 커뮤니티를 제시한 이 프로젝트는 당면한 과제에 대한 우리의 해답이다.
김: 그간 목구조에 대한 실험을 이어왔다. 주로 저층 건물에 목조를 적용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어떤 도전이었나? 또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야스하라: 지금까지 작업한 대부분의 목조건물은 지방 도시에 있는 공공건물이었다. 온전히 목구조로 구현한 프로젝트도 있고, 목재와 콘크리트 또는 철골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구조를 적용한 경우도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공 공간이라는 점이다. 현지의 목재를 활용해 지역사회의 상징이 되는 건축을 만들고자 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이 프로젝트는 작은 공간의 집합을 적층해 도시적인 형태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프로젝트와는 접근 방식이 달랐다. 또한 공공 건축이 아닌 민간 개발자가 의뢰한 상업 프로젝트였기에 목조건물의 공간적 가치를 일반 사용자가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도시 목조건축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오피스 빌딩뿐 아니라 주택, 상업, 공공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유형의 목구조 실험이 지속되어야 한다. 다채로운 목조건물을 설계하는 일은 우리를 포함한 건축가들이 앞으로 지속해야 할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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