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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지만 오래된: 집 & 레스토랑

준야.이시가미+어소시에이츠

사진
준야.이시가미+어소시에이츠(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준야.이시가미+어소시에이츠
진행
한가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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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공간)」2022년 11월호 (통권 660호)

 

 

새롭지만 오래된


이시가미 준야 준야.이시가미+어소시에이츠 대표 × 한가람 기자

한가람(한): 일본 야마구치의 한적한 마을에 지하 동굴을 연상시키는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축주는 프랑스 요리사로 주거 겸 식당 공간을 의뢰하며 “최대한 묵직한 건물을 설계할 것”을 요청했다. ‘묵직한 건물’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하다.

이시가미 준야(이시가미): 건축주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무게감이 짙어지는 건물을 원했다. 매끈하고 반들반들한 건물이 아니라 자연의 거친 면모를 담은 건물. 진정한 요리에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전부터 줄곧 여기에 있었던 듯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여기에 있을 것 같은 건물” 말이다. 건축에 있어서 ‘묵직함’이란 오랜 세월 동안 계속해서 존재하리란 신뢰감과 비슷하다. ‘가벼움’을 통해 표현되는 임시성과 정반대로 영속성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건축물 대부분은 무게감을 가진다. 한편, 근현대건축은 가벼운 존재감을 지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현대건축의 묵직함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했다. 오랜 시간이 빚어낸 복잡성, 다양성, 우발성을 어떻게 구현하면 좋을지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처음에는 그러한 상태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바위처럼 묵직하고 견고하며 수많은 표정을 지닌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한: 프로젝트는 2013년에 시작해 올해 완공하기까지 설계와 시공을 몇 차례 반복했다. 첫 단계는 전체 매스와 공간구성에 관한 계획이었다. 어떻게 유기적 형태를 고안했고 주거 및 상업과 같은 상반된 성격의 프로그램을 배치했나?

이시가미: 다양한 가능성이 담긴 환경 자체에 중심을 두고 3D 모델링으로 스터디를 거듭해 볼륨을 디자인했다. 평면은 기능적 구성을 취한다. 집과 레스토랑은 세 개의 안뜰로 분리했다. 집은 거실을 중심으로 개인 공간이 배치된다. 주거 공간을 생활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하도록 시원시원하게 나눴다. 부엌이나 거실에 있는 소파 주변은 깊이 파내 의도적으로 시점을 낮춰서 공간이 크게 보이게 한다. 레스토랑은 가구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지만 석순 같은 기둥을 통해 홀과 주방 등의 공간이 자잘하게 구획된다. 

 

한: 그 후 이어진 공사 과정에서는 자연스레 발생한 듯한 공간을 구현하고자 치밀함과 느슨함 사이를 넘나드는 태도를 보였다.

이시가미: 시공 순서는 지면을 뚫고 구멍에 콘크리트를 주입한 뒤 골조가 굳으면 흙을 파내 골조를 드러낸다. 그다음 골조에 묻은 흙을 제거하고 바닥 슬래브를 타설해서 구조를 안정화한다. 마지막에는 개구부에 유리를 끼워 내부를 구분하고 설비를 마무리 짓는다. 첫 과정인 굴착은 3D 모델링의 데이터를 토털 스테이션(TS) 측량기에 입력하고 현장에서 말뚝박기의 좌표를 찍고 동시에 여러 전문가가 아이패드로 위치와 형태를 확인하면서 손으로 직접 세밀하게 구멍을 판다. 도중에 풀이 자라거나 흙이 무너지거나 수작업 특성상 어긋남이 발생하는 등 계획을 벗어난 일도 가능한 한 허용했다.

 

 

 

 

 

 

 

 

 

Images courtesy of maison owl

 

한: 콘크리트를 경화하고 주변 흙을 걷어냈을 때 예상하지 못한 모습을 마주했다. 기존 의도와 무엇이 달랐고 어떻게 수용해 발전됐나?

이시가미: 원래 디자인은 회색 바위 같은 이미지였다. 차츰 골조가 드러나면서 예상보다 더 많은 흙이 콘크리트 구조물에 달라붙어 있었다. 이는 땅에서 독립된 구조보다는 지면을 파내고 남아있는 상태로 보였다. 그리하여 바위 같은 개체 사이에 공간이 있는 것보다 흙이 달라붙어 있는 골조를 부지 주변의 지면과 일체화해서 땅을 파낸 동굴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내부 또한 설계도와 실제로 파낸 공간에 차이가 있었다. 설계안과 실제 공간을 3D로 시각화해 겹쳐보니 미세한 차이로 인해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공간을 발견했다. 우리는 그 공간에 맞춰 쓰임을 새롭게 고쳐나갔다. 유리 개구부의 위치와 수량, 가구의 배치와 크기, 설비 자리나 수납공간 등도 새 형태에 맞춰 다시 설계하는 식으로 건축 과정에 역전이 일어났다. 

 

한: 두 번째 설계 및 시공에서는 이곳이 실제로 쓰이기 위해 더욱 정교한 일들을 수행했다. 형태가 각기 다른 개구부를 막고, 각종 설비를 들이고, 꾸준한 강수를 고려해 배수 시스템 등을 갖추는 데 어떤 전략을 취했는지 설명해 달라.

이시가미: 개구부는 모양이 다 제각각이라 3D 스캔을 통해 데이터를 얻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유리를 끼우는 위치를 조정하고 유리를 여닫을 때 유리가 골조에 닿지 않는지를 검증하며 힌지 위치를 조정했다. 주방이나 화장실처럼 배관시설이 들어가는 공간에는 배관 경로를 간략히 했다. 수전이나 배수관, 환기 덕트 등은 세 개의 중정에서 실내로 일직선으로 통과한다. 빗물 및 오수는 도로 배수관이나 하수관과 연결된다. 부지가 전면 도로에 묻힌 배수관보다 한 단 높은 곳에 있어서 바닥 높이를 배관 높이와 가깝게 맞춰 배수가 어렵지 않게 이뤄진다.

 

 

©YASHIRO PHOTO OFFICE

 

한: 9년이라는 기간이 프로젝트의 난이도를 대변하는 듯하다. 지난한 과정에서 실험적 태도를 지켜낸 결과, 건축주와 손님들은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느끼고 있나?

이시가미: 긴 시간 동안 큰 개념을 지켜내고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이 작업에 대한 건축주와 엔지니어링 회사, 그리고 설계 팀의 애정과 애착 덕분이다. 이용자들은 이곳이 안정감 있고 차분한 공간이라고 말한다. 이는 오래됨을 장식으로만 쓰지 않고 시공까지 통합해 고려한 덕분이고, 또한 휴먼 스케일을 기준으로 치수를 정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한: 개인적으로 이 지하 건축을 처음 봤을 때 에티오피아에 있는 랄리벨라 암굴 교회군이 떠올랐다. 13세기에 지어진 랄리벨라 암굴 교회군은 땅을 파서 기하 형태를 만들었지만, 21세기 건축은 오히려 땅을 파서 원시 형태를 구현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집 & 레스토랑에서 선보인 건축 방식이 오늘날에 주는 유용함과 의의는 무엇이라 여기는가?

이시가미: 건축 문명에서 진보야말로 가장 큰 목표였다. 그러나 진보는 현대사회에 환경문제를 야기한 가장 큰 요인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래됨’이라는 개념을 재고하여 앞으로의 시대에 필요한 건축 가치를 끌어내고 싶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오래됨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새로운 건축은 인공물이지만, 그것이 풍화되고 열화되는 과정에서 무너지고 폐허가 되어 결국 풍경(landscape)으로 자연의 일부가 된다.” 그렇다면 건축에서 오래됨이란 인공과 자연 중간에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이를 실현하기 위해 건축을 땅과 하나가 된 자연과 인공 사이의 중간 존재로 만들어냄으로써 새롭게 지어진 동시에 처음부터 오래됨이 담겨 있도록 완성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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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가미 준야
이시가미 준야는 도쿄예술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SANAA에서 경력을 쌓은 후, 2004년에 준야.이시가미+어소시에이츠를 설립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가나자와 공과대학교 KAIT 워크숍, 아트 비오톱 워터 가든, 2019 서펜타인 파빌리온 등이 있다. 그는 일본건축학회상(2009), 2010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오벨상(2019)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