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이 주관하고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는 매년 1명의 작가를 선정하여 작품 활동을 지원하고 국내외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이불, 안규철, 김수자, 임흥순, 최정화에 이어 올해는 박찬경을 선정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인전 <모임>을 개최한다.
박찬경은 분단과 냉전, 민간신앙, 동아시아의 근대성 등을 주제로 영상, 설치, 사진, 글 등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작품을 선보여왔다. 이런 이유로 그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도 영화감독, 미술가, 작가 등으로 여러 가지다. 영화감독 박찬욱과 파킹찬스로 영상 작업을 선보이는 중이기도 하다. 이런 그가 이번에는 ‘모임’이라는 주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세월호 참사, 후쿠시마 원전 폭발 같은 재난이 일상화되고 넷플릭스가 도래하는 현실 붕괴의 시대에 모임, 연대, 공동체는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예술, 미술가, 미술관은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전시는 낮은 담장을 따라 펼쳐진 ‘작은 미술관’(2019)으로 시작한다. 객관적 사실처럼 여겨지는 서구 중심의 미술사를 향해 의문을 던지며, 한국 미술의 자생적 성장을 살펴보는 작품으로, 박찬경이 주목한 이미지, 유화작품, 병풍, 동영상이 글과 함께 구성된다. 한국에 미술관이 생기기 전 미술을 체험할 수 있었던 공간인 절과 산신당의 모습, 조선시대의 전람회 풍경, 국립현대미술관 건립 장면 등이 나열된다.
전시장 중앙에는 파도치는 모습을 담은 콘크리트 조각 16개가 바닥에 놓여있다. 이 작품 ‘해인’(2019)은 ‘바다에 도장을 찍는다’는 뜻의 불교 용어 ‘해인’과 같은 제목을 가진다. 오늘날 계속해서 흐르며 온 세상을 반영하는 것은 무형의 데이터이지만, 작가는 가볍고 빠른 스트리밍 대신 육중하고 단단한 덩어리를 선보이며 데이터 만능주의에 위트있게 답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유일한 구작인 ‘세트’(2000)는 ‘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2019)와 같은 공간에 놓인다. 텅 빈 영화 세트장과 방사능 피폭 후쿠시마의 풍경을 나란히 제시해 적막감을 준다. 국내 사찰을 다니며 부처의 열반을 슬퍼하는 동물 그림들을 클로즈업해 촬영한 ‘모임’(2019), 파편적 줄거리를 나열하는 영상 작업으로 개연성을 잃어버린 사회를 묘사하는 ‘늦게 온 보살’(2019) 등이 전시장에 모여있다. 총 9개의 작품은 개별 주제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모두 모임과 유대로 귀결된다. 은유적이고 중의적인 작품을 통해 모이는 것에 대한 의미를 성찰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2020년 2월 23일까지. <최은화 기자>
<모임> 전시 전경 / Images courtesy of MM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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