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3월호 (통권 676호)
국제 세미나 ‘상징 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시선’ Image courtesy of Architecture & Urban Research Institute
2월 1일, 국가건축정책위원회와 건축공간연구원이 ‘상징 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시선’을 주제로 주최한 국제 세미나가 커뮤니티하우스 마실 라이브홀에서 진행됐다. 상징 공간은 국가 정체성과 상징성을 담아내는 장소이자 역사, 문화, 시민이 소통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지난해 9월 서울시와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청와대, 현충원, 용산공원 등을 비롯한 서울의 주요 역사문화 공간을 대상으로 국가상징 공간을 조성하고자 협약을 맺은 바 있다. 이번 국제 세미나는 한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국내외 학자를 초청해 다양한 역사와 문화 안에서 상징 공간이 갖는 의미를 인문학적 관점으로 살피고 현시대 서울이 추구할 상징 공간의 가치를 고찰하고자 마련됐다.
김성도(고려대학교 교수)는 ‘상징 공간의 인간학 서설’을 주제로 공간과 기억, 그리고 상징성의 불가분성을 설명했다. 공간은 인간의 기억과 가장 긴밀히 결합돼 있다. 즉 공간은 사회적 관계의 결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언제나 상징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집단기억에서 가장 첨예한 곳이 바로 도시라는 점을 짚으며 사회 및 정치 공동체에게 상징 공간이 미치는 힘을 역설했다. 그러나 “20세기 서울은 도시의 시간적 깊이를 소홀히 한 나머지 심각한 집단기억상실에 빠졌다”라며 손실된 기억을 되찾고 공간의 상징성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미국의 도시 이론가 케빈 린치가 주장한 ‘시간적 콜라주(temporal collage)’ 개념을 제안했다. 풍부한 역사적 자산을 보유한 서울은 시간적 콜라주를 적용할 수 있는 최적의 도시이며, 과거와 현재를 병치해 시간의 흐름을 드러냄으로써 역사적 깊이가 드러나는 도시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다음으로 마시모 레오네(토리노대학교 교수)가 ‘아고라에서 포럼을 거쳐 피아자(piazza)까지: 상징적 장소로서의 로마의 광장들’을 주제로 발제를 했다. 그는 로마의 광장들과 함께 서울의 광화문광장, 서울광장 등을 예로 들며 상징 공간을 만드는 데 중요한 것은 각 사회의 역사, 문화적 측면을 조화롭게 반영하는 일임을 강조했다. 나아가 현대와 전통의 조화, 도시와 자연의 통합 등 로마 광장의 조성 개념을 서울의 독특한 경관과 문화에 맞춰 도입한다면 서울만의 새로운 상징 공간을 조성할 수 있으리라고 말했다. 한편 파스칼 라르들리에(부르고뉴 대학교 교수)는 상징 공간을 의례의 관점에서 바라봤다. 역사적으로 도시는 집단적 정체성과 소속감을 형성하는 세러머니, 즉 의례를 위한 장소에서 기원했으며 내부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 이동성의 증가, 소속감의 붕괴 등으로 도시의 의례적 특성이 약화됐고, 도시 모델은 ‘커뮤니언(communion)’에서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으로 점차 이동했다. 그는 현대도시가 폐쇄보다는 개방에, 의례보다는 이벤트에 초점을 맞추고 지역의 고유한 스토리텔링을 담아내는 상징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진 토론에서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인 김종헌(배제대학교 교수)은 우리나라만이 가진 중요한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역사의 절정기만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역사를 어떻게 극복해왔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또한 그는 현재의 한반도를 ‘용광로’라 가리키며 전통문화와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면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시기에 있다고 봤는데, 이러한 동력을 바탕으로 우리만의 상징을 만들어가기 위한 가능성을 인문학적 시선에서 찾아볼 수 있길 바란다는 말로 자리를 끝맺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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