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현재에 대한 묵시론적 선언
『정크스페이스 | 미래 도시』
렘 콜하스, 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 임경규 옮김 | 문학과지성사 펴냄
건축가 렘 콜하스의 아방가르드적 에세이 「정크스페이스」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프레드릭 제임슨의 「미래 도시」를 함께 묶었다. 문고본의 113쪽 분량의 작은 책으로, 정치·사회·예술 분야의 논쟁적 주장이 담긴 에세이와 작가가 남긴 편지·메모·일기를 소개하는 ‘채석장’ 시리즈의 하나이다. 「정크스페이스」는 렘 콜하스가 이끌었던 하버드 대학 디자인스쿨 세미나 ‘도시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쇼핑 안내서』(2001)에 수록되었던 글이다. “스페이스정크space-junk가 우주에 버린 인간의 쓰레기라면 정크스페이스junk-space는 지구에 남겨둔 인류의 찌꺼기”라며 콜하스는 “20세기에 건축은 실종되었다”고 선언한다.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예견하는 이 묵시론적 선언은 건축이 후기자본주의의 유동성과 결합했음을 의미한다. 한때 역사와 유토피아적 꿈을 담아내고자 했던 건축가의 소명은 이제 옛것의 파괴와 끝없는 재활용, 공간의 끊임없는 유희와 재배치로 축소된다. 쇼핑이 도시계획과 건축의 궁극적인 원리가 되고 이제 우리는 쇼핑을 통해서만 도시를 경험한다. 쇼핑을 위해 펼쳐진 공간이 바로 정크스페이스며 정크스페이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의 방향감각의 앗아간다.
프레드릭 제임슨의 「미래 도시」는 렘 콜하스의 비전과 「정크스페이스」가 등장한 맥락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텍스트이다. 제임슨이 “혐오감과 희열감의 어울림은 ... 포스트모더니즘의 교본”으로 삼을 수 있을 정도라고 평한 콜하스의 파편적 글에서 정크스페이스가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하게 포착하기는 쉽지 않다. 제임슨은 현대도시와 건축,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쇼핑과 상품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광범위하게 수행하면서 「정크스페이스」가 갖는 의미와 잠재력을 포착해낸다. 그는 「정크스페이스」가 우리가 붙들려있는 악몽 같은 세계의 모습을 증언하는 동시에, 이러한 현재에서 탈출하여 시간과 역사 속으로 그리고 단단한 미래 속으로 다시 한 번 돌진할 수 있음을 예언한다.<이영주 기자>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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